정 대 철
< 한양대 교수·신문방송학 >
☞ 한국경제신문 4월22일 A35면
지난해 인터넷을 달궜던 '미네르바'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을 계기로 사이버 공간에서 표현의 한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대표적인 인터넷 정화 방안의 하나로 추진 중인 '사이버 모욕죄'를 둘러싼 논쟁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러한 논란의 기저에는 공통적으로 인터넷이란 새로운 미디어가 자리잡고 있다.
IT강국을 자랑하는 한국이 인터넷이란 하드웨어는 막강하게 구축해 놓았지만 그 안에 담을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여전히 후진국이라는 오명은 어제 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만들어내고 있는 미디어 지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상에서 활동 중인 유사언론 매체가 무려 1000여개에 이를 정도다.
다양한 미디어의 등장은 각각의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유사환경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조명되고 해석될 때 생산적인 '공론의 장'을 펼치는 게 가능해진다.
하지만 미디어가 많아야 한다는 이유와 많아진 미디어가 가져다 주는 효과가 일치하는지는 의문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 때문인지 각기 다른 유사환경은 혼란과 불신을 초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기대한 만큼의 다양한 가치를 보여주지 못할 뿐더러 진정성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등 부작용이 커지는 것이다.
'미네르바'가 낳은 후유증의 핵심은 바로 우리 사회의 '신뢰 상실'에 있다.
법원의 판단은 그것대로 존중돼야 하겠지만,미디어 본연의 자세라는 큰 틀에서 보면 신뢰 상실은 심각한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디어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변하는 시대에 언론의 본질적 가치를 어떻게 유지하고 고양시킬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찾는데 우리 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무수한 온 · 오프라인 미디어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미디어의 규범적 가치도 전과는 달리 해석하게 만든다.
새로운 판도에서 미디어의 사회적 좌표가 어딘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필요하다.
정부에서 입법기관으로,또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로 넘어가 의견을 수렴 중인 미디어법이 시험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나 여론을 내세우기보다 시장적 관점이나 사업자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고,또 미디어계의 전체적 기반에서 재편되거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미디어계는 이미 지반이 바뀌었다.
바뀐 지반에서 미디어의 재편과정은 불가피하다.
중국의 양계초는 변화에는 자변(自變)과 타변(他變)이 있는데,스스로 변화를 준비하고 이뤄내는 것,즉 자변이 타변보다 좋다고 했다.
신문방송 겸영이나 대기업 참여 제한 등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대학 신입생의 85% 이상이 온라인 미디어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다.
미디어 이용행태가 변하는 이유는 이용자 측면에서 보면 사회적 관심보다 개인적 관심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미디어가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는 지금같은 상황을 방치해선 안된다.
언론에 부여된 사회적 사명감,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중요성을 약화시키고 온라인 매개체의 필요성만 키운 결과 익명에 숨은 또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는 무책임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미네르바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오프라인 매체들도 '언론'이라는 사회적 사명감보다는 미디어로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대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변수들을 방치하면 미디어의 사회화,계도적 기능 등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마저 둔감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지 않는 미디어의 하드웨어적 팽창은 불감증만을 초래할 뿐이다.
과도기적 불감증에서 해방될 수 있는 시기를 당겨야 한다.
유사언론보다 진정한 언론이 더 커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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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인터넷 언론의 무책임 바로 잡지못하는 현행법 고쳐야
우리나라에 다시 외환위기가 온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구속됐던 미네르바(필명) 박대성씨가 1심 판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박대성씨는 원 · 달러 환율이 급등했던 올해 초 정부가 금융기관에 달러 매수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글을 올려 전기통신공사법을 위반한 혐의(허위사실 유포)로 구속기소됐다.
하지만 1심에서 법원은 그가 올린 글을 허위라고 볼 수 없고, 공익을 해칠 목적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미네르바 사건의 1심 판결이 무혐의로 나오자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존중했다는 환영의 글도 있고 인터넷 언론의 부작용을 제지하지 못했다면서 현행법의 허점을 지적하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법원 판결과는 별도로 언론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1000개가 넘는 인터넷 매체가 활동하는 상황에서,익명에 숨은 또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지고 그 곳에서는 무책임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오프라인 매체들도 '언론'이라는 사회적 사명감보다는 미디어로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대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불신감을 높이는 변수들을 방치하면 사회 계도적 기능 등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마저 둔감해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한다.
법원 판결 후 법규정의 미비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법원이 미네르바 사건에 적용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의 글을 유포할 경우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1983년에 제정된 이래 20여년간 바뀌지 않았다.
김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라는 1980년대식의 가중 구성 요건이 현행 인터넷 언론 환경에 얼마나 적합한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데 꼭 필요한 기본권이다.
민주주의를 일찍 정착시킨 선진국의 법원들도 한결같이 표현의 자유에 무게를 두며 판결을 해왔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회 공익을 저해할 때는 제한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을 유포해 사회에 불안을 조성하는 행위는 당연히 규제되어야 한다.
남북 분단의 특수한 상황에서 자칫 북한의 전략에 악용될 수 있다.
물론 인터넷 언론도 허위 사실이 유포되지 않도록 스스로 자정활동에 나서야 한다.
인터넷의 자정활동과 자유의 남용을 제한하는 법 제도가 함께 시행될 때 자유 민주주의는 한층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
< 한양대 교수·신문방송학 >
☞ 한국경제신문 4월22일 A35면
지난해 인터넷을 달궜던 '미네르바'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을 계기로 사이버 공간에서 표현의 한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대표적인 인터넷 정화 방안의 하나로 추진 중인 '사이버 모욕죄'를 둘러싼 논쟁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러한 논란의 기저에는 공통적으로 인터넷이란 새로운 미디어가 자리잡고 있다.
IT강국을 자랑하는 한국이 인터넷이란 하드웨어는 막강하게 구축해 놓았지만 그 안에 담을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여전히 후진국이라는 오명은 어제 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만들어내고 있는 미디어 지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상에서 활동 중인 유사언론 매체가 무려 1000여개에 이를 정도다.
다양한 미디어의 등장은 각각의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유사환경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조명되고 해석될 때 생산적인 '공론의 장'을 펼치는 게 가능해진다.
하지만 미디어가 많아야 한다는 이유와 많아진 미디어가 가져다 주는 효과가 일치하는지는 의문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 때문인지 각기 다른 유사환경은 혼란과 불신을 초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기대한 만큼의 다양한 가치를 보여주지 못할 뿐더러 진정성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등 부작용이 커지는 것이다.
'미네르바'가 낳은 후유증의 핵심은 바로 우리 사회의 '신뢰 상실'에 있다.
법원의 판단은 그것대로 존중돼야 하겠지만,미디어 본연의 자세라는 큰 틀에서 보면 신뢰 상실은 심각한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디어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변하는 시대에 언론의 본질적 가치를 어떻게 유지하고 고양시킬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찾는데 우리 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무수한 온 · 오프라인 미디어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미디어의 규범적 가치도 전과는 달리 해석하게 만든다.
새로운 판도에서 미디어의 사회적 좌표가 어딘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필요하다.
정부에서 입법기관으로,또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로 넘어가 의견을 수렴 중인 미디어법이 시험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나 여론을 내세우기보다 시장적 관점이나 사업자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고,또 미디어계의 전체적 기반에서 재편되거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미디어계는 이미 지반이 바뀌었다.
바뀐 지반에서 미디어의 재편과정은 불가피하다.
중국의 양계초는 변화에는 자변(自變)과 타변(他變)이 있는데,스스로 변화를 준비하고 이뤄내는 것,즉 자변이 타변보다 좋다고 했다.
신문방송 겸영이나 대기업 참여 제한 등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대학 신입생의 85% 이상이 온라인 미디어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다.
미디어 이용행태가 변하는 이유는 이용자 측면에서 보면 사회적 관심보다 개인적 관심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미디어가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는 지금같은 상황을 방치해선 안된다.
언론에 부여된 사회적 사명감,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중요성을 약화시키고 온라인 매개체의 필요성만 키운 결과 익명에 숨은 또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는 무책임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미네르바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오프라인 매체들도 '언론'이라는 사회적 사명감보다는 미디어로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대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변수들을 방치하면 미디어의 사회화,계도적 기능 등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마저 둔감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지 않는 미디어의 하드웨어적 팽창은 불감증만을 초래할 뿐이다.
과도기적 불감증에서 해방될 수 있는 시기를 당겨야 한다.
유사언론보다 진정한 언론이 더 커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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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인터넷 언론의 무책임 바로 잡지못하는 현행법 고쳐야
우리나라에 다시 외환위기가 온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구속됐던 미네르바(필명) 박대성씨가 1심 판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박대성씨는 원 · 달러 환율이 급등했던 올해 초 정부가 금융기관에 달러 매수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글을 올려 전기통신공사법을 위반한 혐의(허위사실 유포)로 구속기소됐다.
하지만 1심에서 법원은 그가 올린 글을 허위라고 볼 수 없고, 공익을 해칠 목적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미네르바 사건의 1심 판결이 무혐의로 나오자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존중했다는 환영의 글도 있고 인터넷 언론의 부작용을 제지하지 못했다면서 현행법의 허점을 지적하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법원 판결과는 별도로 언론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1000개가 넘는 인터넷 매체가 활동하는 상황에서,익명에 숨은 또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지고 그 곳에서는 무책임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오프라인 매체들도 '언론'이라는 사회적 사명감보다는 미디어로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대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불신감을 높이는 변수들을 방치하면 사회 계도적 기능 등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마저 둔감해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한다.
법원 판결 후 법규정의 미비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법원이 미네르바 사건에 적용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의 글을 유포할 경우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1983년에 제정된 이래 20여년간 바뀌지 않았다.
김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라는 1980년대식의 가중 구성 요건이 현행 인터넷 언론 환경에 얼마나 적합한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데 꼭 필요한 기본권이다.
민주주의를 일찍 정착시킨 선진국의 법원들도 한결같이 표현의 자유에 무게를 두며 판결을 해왔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회 공익을 저해할 때는 제한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을 유포해 사회에 불안을 조성하는 행위는 당연히 규제되어야 한다.
남북 분단의 특수한 상황에서 자칫 북한의 전략에 악용될 수 있다.
물론 인터넷 언론도 허위 사실이 유포되지 않도록 스스로 자정활동에 나서야 한다.
인터넷의 자정활동과 자유의 남용을 제한하는 법 제도가 함께 시행될 때 자유 민주주의는 한층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