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금은 꼽치지 말고 꼬불쳐야

"기록원에 넘기지 않고 꼬불쳐둔 것이 있는지…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모두 확인하라고 했다."

재임 중에도 말로써 말을 많이 듣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불편한 심기를 이렇게 나타냈다.

대통령 기록물 반출사건으로 한창 수사가 진행될 때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는 퇴임 후를 대비해 기업인 측근으로부터 돈을 '꼬불쳐' 둔 게 아니냐는 혐의로 다시 곤경에 처했다.

그가 쓴 '꼬불치다'란 말을 두고 사투리인지 표준어인지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 말은 '돈이나 물건 따위를 몰래 감추다'라는 뜻이다.

"아내 몰래 비상금을 꼬불쳐 두었지"처럼 쓴다.

속된 말이긴 해도 표준어로 인정된 단어다.

비슷한 말로 '꿍치다'라고도 한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꼬불치다'를 '자꾸만 꼬불쳐지는 허리를 겨우 추스르며…' 식으로 쓰기도 하는데,이는 잘 못 쓴 것이다.

이때는 '꼽치다'라고 한다.

'꼽치다'는 '반으로 접어 한데 합치다''곱절을 하거나 곱절로 잡아 셈하다'라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곱치다'의 센 말이다.

말에도 효율성의 원리가 똑같이 적용돼 기왕이면 한 글자라도 짧은 말이 선호된다.

그런 점에서 '꼽치다'는 형태만으로 보면 '꼬불치다'가 줄어져 생긴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령 '이놈아'가 줄어 '인마'로,'조금'이 '좀'으로,'다음'이나 '마음'이 '담''맘'으로,'찰카닥'이 '찰칵'으로,'마구'가 '막'으로,'숟가락'이 '숟갈'로 주는 것과 비슷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준말이 본딧말의 형태 일부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꼬불치다'가 줄어 '꼽치다'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말의 쓰임새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사전은 '꼽치다'를 '꼬불치다'의 준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두 말은 구별해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