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앗 이런 말이 사전에 없네? ‘운때’
"실력이 90%이고 운이 10%란 말은 틀렸습니다. 운이 90%이고 나머지 10%는 실력이 아니라,운이 올 때까지 버티는 능력이지요."

1998년 인터넷 '딴지일보'를 창간해 풍자와 패러디로 돌풍을 일으킨 김어준씨가 오랜만에 공식석상에서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다.

지난달 연세대에서 열린 특강자리에서다.

그가 말한 것처럼 운에도 때가 있는 것 같다.

운이 좋을 때가 있듯이 운이 나쁠 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운때가 좋다'느니,'운때가 맞는다'란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이 '운때'는 사전에서 볼 수 없는 말이다.

정식 단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때'라는 단어는 예전부터 써오던 말이다.

이는 '아침저녁으로 밀물과 썰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때'를 말하는 것으로 사전에 올라 있다.

그러니 '운을 맞는 때'를 뜻하는 말로 '운때'라고 해도 괜찮을 듯싶다.

하지만 우리 사전들은 '물때'와 달리 아직 이 말을 단어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굳이 이 말을 쓴다면 아쉽지만 '운 때' 식으로 띄어 적어야 한다.

'운때'라는 말이 나오기 전엔 흔히 '운수'를 썼다.

'운수가 좋은 날' '운수가 대통하다/불길하다/나쁘다/사납다' '운수에 맡기다' '운수가 터져서 많은 돈을 벌었다' 식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운수' 자리에 '운때'를 넣으면 여전히 자연스러운 게 있는 반면 어색한 표현도 있다.

그것은 '운때'가 '운수'와는 달리 좀더 좁은,특정한 의미로 쓰인다는 뜻이다.

'운때'는 '운'에 타이밍(timing), 즉 적기(適期:알맞은 시기)란 개념이 덧씌워진 말이다.

아직은 단어가 아니지만 단어로서의 자격은 충분한 것 같다.

'운수'는 줄여서 그냥 '운'이라고도 하고 '수'라고도 한다.

모두 같은 말이다.

이때의 '수(數)'는 '올해는 수가 나쁘니 조심해라' '그는 수가 사나워 사고를 당했다'처럼 쓰인다.

우리가 흔히 '수(數)'라 하면 떠올리는 숫자(셀 수 있는 사물의 크기를 나타내는 값)로서의 '수'와는 한자는 같지만 뜻이 다른 말이다.

'운수'로 쓰이는 '수'는 또 구설수,요행수,재수,손재수,실물수 따위에 쓰인 '수'와 같은 것이다.

이 가운데 구설수의 용법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구설수(口舌數)'는 '남에게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신수'라는 뜻이다.

이 '구설수'란 말은 가령 '운수가 있다/없다'처럼 '구설수가 있다/없다' '구설수를 조심하거라'라고 하는 게 본래의 자연스러운 쓰임새다.

이에 비해 '구설'이란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이다.

이 말은 '남의 구설에 오르다'처럼 쓰인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구설에 오르다/구설수에 오르다'를 똑같이 용례로 보이고 있다.

둘 다 인정한다는 뜻이다.

용례로만 보면 '구설'과 '구설수'를 같은 말로 처리한 듯하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구설수에 오르다'란 표현을 잘못 쓴 말로 보고 그냥 '구설에 오르다/구설에 휘말리다'라고 해야 옳다고 주장해 왔는데 <표준>에서는 두 표현을 다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구설'과 '구설수'는 분명히 다른 말이란 점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구설에 오르다/구설에 휘말리다/구설을 듣다'라고 하고 '구설수가 있다/구설수를 조심해라' 식으로 쓸 때 가장 자연스럽고 정확한 표현이다.

'재수가 있다/없다'라고 할 때의 '재수'는 '재물수(財物數)'가 준 말이다.

손재수(損財數:재물을 잃을 운수. '이달에 손재수가 있으니 도둑맞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실물수(失物數:물건을 잃어버릴 운수. '올해는 실물수가 있는지 자주 물건을 잃어버렸다.') 요행수(僥倖數:뜻밖에 얻는 좋은 운수. '요행수를 바라다.') 이들은 모두 사전에 오른 정식 단어이다.

단어로 오른 말은 아니지만 횡액수(뜻밖에 닥치는 모진 일을 겪을 운수),횡재수(뜻밖에 재물을 얻을 운수) 여난수(女難數:여자로 인해 수난을 당할 운수) 같은 말도 많이 쓰인다.

횡액은 '횡래지액(橫來之厄)'이 줄어진 말이다.

앙급지어(殃及池魚:재앙이 못의 물고기에 미친다는 뜻으로,제삼자가 엉뚱하게 재난을 당함을 이르는 말. 성문(城門)에 난 불을 끄려고 못의 물을 전부 퍼 온 탓으로 그 못의 물고기가 말라 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나 지어지앙(池魚之殃)도 같은 뜻의 말이다.

마찬가지로 '뜻밖에 재물을 얻음. 또는 그 재물'은 횡재(橫財)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