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정보는 오히려 毒이 된다
[실전 고전읽기] ⑫ 데이비드 쉔크「데이터 스모그」
요즘 디톡스 요법이 한창 인기다.

체내의 노폐물과 독소를 빼내어 활력을 되찾는다는 건강 요법이다.

신장이 몸 안의 노폐물을 걸러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단다.

그래서 디톡스 요법이 권하는 대로 몸을 정화(淨化)하려면 특정한 음식을 먹어야 하고 무언가를 몸에 바르거나 때로는 부항이나 뜸을 뜨기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제독(除毒)에 성공할 수 있다.

1997년 출간된 '데이터 스모그(Data Smog)'의 저자 데이비드 쉔크(David Shenk)는 이러한 디톡스 요법에 관해서 적극 찬성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제독이 시급한 곳이 따로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서 말이다.

쉔크에 의하면 현대사회에서 정보는 오염원(汚染源)으로써 기능한다.

불필요한 정보들이 지나치게 많이 유포되는 통에 마치 대기오염의 주범인 스모그처럼 정보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머리 속을 어지럽힌다.

우리는 사방팔방에서 침투해 오는 정보에 속수무책으로 오염당하고 있다.

정보의 과잉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자극의 과부하로 인해 각종 스트레스 증상을 겪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가 과연 의미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가치 없는 정보에 오죽 시달렸으면 혹자는 인터넷의 바다는 쓰레기의 바다라는 일갈까지 남겼겠는가.

그래서 데이비드 쉔크는 정보에 '소모' 당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정보 단식(data-fasts)으로 개인 시스템을 정화하고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날뛰는 정보를 모두 받아들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정보만을 선별하고 나머지는 차단하는 여과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보 디톡스 요법을 실시해야 현대인들은 정보과다에서 비롯된 정보피로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문맹(文盲)의 정의가 '책을 읽지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발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말에 경악하는 사람이라면 쉔크의 정보 디톡스 요법에 관심이 갈 것이고,나날이 가중되는 막중한 업무를 어떻게 처리할지 근심하는 도서관 사서를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쉔크의 말에 또한 동의할 것이며,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내세우려면 일단 책을 쓰고 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누구의 말에 불쾌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면 역시 쉔크의 주장에 찬성할 것이다.

'과유불급'은 정보에도 해당되는 명언이다.

지나친 정보는 독이므로 반드시 제독이 필요하다.

"과잉 정보는 독(毒)이다"라는 쉔크의 말을 저승의 프랜시스 베이컨이 들었다면 펄쩍 뛰었을지도 모른다.

"지식은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는 유명한 말을 앞세우며 지식의 복음을 전파하던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지식은 이성의 산 증인으로서 추앙받아야 마땅했으며,활발한 의사소통(communication)은 문명화의 활력소로 존중될 일이었다.

하지만 정보에 '접근'한다고 해서 지성이 '창조'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와 가치는 별개다.

정보가 깊이 있는 혜안과 예리한 비판력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안다'는 것은 좋지만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데이터 스모그' 안에서 쉔크는 정보(information)와 이해(understanding)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많은 정보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Midas) 왕은 손에 닿는 모든 것이 전부 황금으로 변하기를 소망하였다.

그런데 신이 그 소망을 실현시켜 주자 이제는 손에 닿는 것마다 죄다 황금으로 변하는 통에 식사도 할 수 없고 가족과 포옹할 수도 없는 우스운 모습이 되어 버린다.

'지식은 힘'이라는 신념 속에서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갈구했던 선대의 기원에 따라 현대인들은 정보의 풍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모양새를 살피면 정보화 시대의 미다스(Information Midas)처럼 손에 닿는 것이 모두 정보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정보의 가치는 증발해 버리는지도 모른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현대인들에게 정작 부족한 것은 '의미'이다.

책상 위의 블랙 홀이라는 악평을 듣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삶의 의미를 부여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의미로의 회귀를 위해서는 데이터 스모그를 탈출해 선명한 시야를 확보하고 인생과 사회를 바라보아야 한다.

엘리 노암이 말한 대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정보를 더할 수 있다. 지금의 어려운 문제는 정보를 어떻게 하면 '감소'시키느냐이다."

데이비드 쉔크는 '데이터 스모그'의 서문에서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조용한 방에서 책의 첫 부분부터 찬찬히 읽어주기를 독자들에게 바란다고 하였다.

저자가 바란 대로 조용한 방에서 '데이터 스모그'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삶에 대한 분별력과 통제력을 보유하는 길에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 기출 제시문 (연세대학교 2004학년도 자연계 논술)

다음 제시문 (가: 데이터 스모그)에 나타난 사회 현상을 제시문(나: 마르틴 하이데거,'존재와 시간')과 (다: 맹자)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논하시오. (1700자 안팎)

(가) 데이터 스모그(data smog)는 단지 우리의 가정이나 전자 우편함에 날마다 배달되는 쓸데없는 광고지와 정보 쓰레기 더미뿐만이 아니다.

그것에는 우리가 상당한 돈을 지불하는 정보,우리가 꼭 필요로 하는 정보도 포함되어 있다.

현란하게 흥미를 끄는 퀵 컷(quick-cut)의 텔레비전 광고들과 24시간 최신 뉴스 속보들,요청한 것은 물론 요청하지 않은 팩스들,저녁 시간 동안 잘못 걸려온 전화들,애처롭게 호소하는 판촉 전화들,그 시간을 전후하여 우리가 열심히 방문했던 웹 사이트,매달 탐독하는 산더미 같은 잡지들,자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손끝으로 돌려대는 수많은 채널들,이 모든 것들이 데이터 스모그에 속한다.

(…중략…) 대체로 우리가 원했기 때문에 매체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텔레비전,전화,라디오,호출기,그리고 다른 각종 현대적 통신 도구들과 검색 보조 장치들은 이제 도로와 테니스화처럼 흔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이 가는 곳 어디에든지 다양한 형태의 매체들이 뒤따른다.

열차 · 비행기 · 자동차 안에서,호텔 욕실에서,조깅 코스나 등산길에서,자전거나 배에서조차도.

정보와 오락은 이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온다.

거대한 영상 스크린이 경기장을 장식하고,극장 무대에 설치된다.

보통 크기의 텔레비전은 술집의 천장이나 공항 라운지에 걸리고,소형 텔레비전은 최신 여객기의 개인 좌석 앞에 설치된다.

휴대폰 대화는 길거리와 건물 안 복도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호출기와 랩탑 컴퓨터는 집에까지 따라오며,휴가 중에도 우리 곁에 있다. (…중략…)

기사 형식의 광고에서 기사 내용과 상업적 메시지들 간의 경계가 교묘하게 흐려짐으로써 스모그는 더욱 짙어진다.

그래서 종종 누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아니면 단지 무언가를 팔려고 하는 것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점점 더 우리의 비어 있는 공간들 대부분이 임대되고 있다.

도시의 보도,거리,공원,쓰레기차 위에 첨단 기술의 광고 판매를 기획하고 있는 애틀랜타 시의 마케팅 담당 공무원 조엘 배빗(J. Babbitt)은 "이것이 어리석은 짓인가?" 하고 묻는다.

"그렇다. 그러나 대형 원형극장의 소유주뿐만 아니라 벤치에 앉아 나이키 모자를 쓰는 대가로 수백만달러를 버는 마이클 조던(M. Jordan) 또한 광고 판매를 원한다. (…중략…) 만약 그렇게 해서 우리 시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돈이 벌린다면 무엇이 나쁘단 말인가?"

실제로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우리의 감각을 사로잡는 끊임없는 자극의 폭격이 어떤 점에서 해로운가?

이 문제에 대한 완전한 대답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메시지 과밀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이다. (…중략…)

1975년에 밀그램(S. Milgram)은 감각의 과부하가 도시 스트레스의 근원적 원인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중략…)

밀그램의 자극 과부하 이론의 타당성이 확인됨으로써,그의 이론은 1970년대 도시 거주자들뿐만 아니라 1997년의 데이터 스모그 희생자들에게도 적용 가능하게 되었다.

도시 거주자들이 일상적 삶 속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엄청난 자극의 포화에 직면하게 됨에 따라,이 이론은 수십 년 동안 발전해 온 정보화 시대의 특징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