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 민

<연세대 교수·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1월12일자 A38면

최근 미국의 한 저명한 경제학자가 오바마 정부는 '반기업' 정책을 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 학자는 열렬한 오바마 지지자다.

이 학자뿐 아니라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앞으로 오바마 정부가 '반기업',그리고 같은 선상에서 '반세계화' 정책을 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반기업'의 내용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월마트 같은 것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예다.

저임금에다 의료보험도 안 들어주고 노동조합도 허용하지 않는 월마트의 행태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반세계화'의 내용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중국 같은 나라로부터의 값싼 수입품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반기업 반세계화 정서의 바탕에는 1980년대 이후 친기업 정책과 세계화가 불평등을 확대해 왔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중국 등으로부터의 수입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다.

현 위기가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의 실업률은 5% 정도로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반면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불평등이 심각하게 확대돼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친기업정책이나 세계화의 결과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작년에 크리스천 브로다와 존 로말리스라는 경제학자가 쓴 '불평등과 가격 : 중국이 미국의 빈곤층에게 이익이 되는가?'라는 논문이 그렇다.

이들은 지난 10여년간 명목소득의 변동으로는 미국의 불평등이 크게 확대됐지만,실제로 소비하는 내용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빈곤층과 부유층이 소비하는 품목이 다른데,빈곤층이 소비하는 품목의 가격 상승률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가 나는 주된 이유는 빈곤층의 지출 비중이 높은 의복이나 식품 같은 재화,그 중에서도 중저가품이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면서 그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부유층이 많이 소비하는 서비스는 수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가격이 많이 올랐다.

월마트 같은 슈퍼스토어의 존재도 빈곤층과 부유층이 소비하는 품목 간의 가격상승률 차이를 가져오는 요인이다.

빈곤층이 이런 유의 가게에서 구매하는 의복이나 식품 등 비내구 소비재의 비중은 부유층에 비해 두 배에 달한다.

따라서 월마트가 있음으로 해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빈곤층이다.

브로다와 로말리스는 이런 요소들을 감안하면 1994~2005년간 미국에서 대체로 불평등도에 변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함의는 물론 반기업 반세계화 정책은 빈곤층에게 이익이 아니라 손실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임금에다 의료보험도 안 들어 주고 노동조합도 안 된다고 하는 월마트의 행태가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세계화와 중국 등으로부터의 수입 효과만 믿고 지난 30여년간 엄청나게 확대된 분배의 불평등을 교정하려는 노력을 방기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여느 정부나 마찬가지로 오바마 정부에도 '정책의 우선순위'라는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장 공황과 싸우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그 다음에도 지구 온난화,의료보험,교육,근로장려세제 등의 과제를 우선해야지 '반기업' '반세계화'를 앞세우게 된다면 일을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이것이 현 시점에서 오바마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많은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으로 보인다.

나아가 그것이 바로 오바마 정부가 지난 8년간 부시정부가 저질러 놓은 온갖 '몰상식'을 교정해 주리라고 기대하는 미국 내외의 대다수 식자(識者)들의 생각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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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업·반세계화 정책의 ‘짐’은 서민들이 지게된다

해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확산되는 가운데 세계인들은 미국 대통령 당선인 버락 오바마의 정책 방향에 기대와 함께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제민 연세대 교수가 오바마 정부 정책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은 반기업 반세계화 정책 가능성이다.

필자는 미국 월마트의 사례를 들어 비록 경영 정책이 일반적인 시각에서 비판받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이를 규제할 경우 자칫 서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월마트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있는 것은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이 낮기 때문으로 이를 사회악으로 취급해 규제한다면 상품 가격을 낮출 수 없으므로 결국 저소득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설명이다.

이 기회에 최저임금제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칼럼에서 언급되고 있는 여러 용어 중에서 몇 가지 중요 용어를 정리한다.

⊙ 명목소득(nominal income)과 실질소득(real income)

명목소득은 해당 시점의 물가수준으로 측정한 소득을 말하는 것으로, 물가상승으로 인한 소득변동을 조정하는 실질소득과 구분된다.

예를 들어 10년 동안 물가수준이 두 배가 되었다면 명목소득 역시 두 배로 상승하는 반면 실질소득은 그대로가 된다.

이때 우리가 실제 구매할 수 있는 물품의 총 실질가치는 변화가 없게 된다.

칼럼에서는 지난 10여년간 명목소득을 기준으로 측정한 불평등 확대에 관한 해석을 비판하고 있다.

즉 현실에서 상품의 물가와 임금수준이 동일한 비율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목소득과 명목가치만으로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경우에 왜곡이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한국은행 경제동향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08년 3 · 4분기 명목 국민총소득은 전기 대비 0.4% 감소한 반면 실질 국민총소득은 전기 대비 3.7%나 감소하였다고 한다.

⊙ 불평등도

경제학자들은 소득 불평등 수준을 측정하는 불평등 지수를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불평등도 지수로 십분위분배율과 지니계수가 있다.

십분위분배율은 하위 40%의 점유소득을 상위 20%의 점유소득으로 나누어 구하는 것으로 0에서 2사이의 값을 가진다.

값이 2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낮음을 의미한다.

지니계수는 최저 소득자로부터 최고 소득자 순으로 인구의 비율을 누적으로 표시하는 로렌츠 곡선을 활용해 구한다.

지니계수는 0과 1사이의 값을 갖는데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 불평등도가 낮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0.32 정도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평균 정도 수준이다.

불평등 지수는 소득 분배의 결과이므로 현물 보조 등의 비금전적 분배를 반영하지 않는다.

때문에 측정된 값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참고사항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김영표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인턴(한국외대 4학년) ksix20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