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콩깍지는 깐 콩깍지? 안깐 콩깍지?

"묘옥이 떨어져 앉아 콩깍지를 까고 있었는데,길산은 얼결에 말을 붙였다."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에 나오는 문장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잘못 쓰인 단어가 하나 있다.

얼핏 읽으면 흘려보내기 쉽지만 시인이자 우리말 지킴이인 권오운 선생의 눈길은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저서 《우리말 지르잡기》에서 "콩깍지는 콩을 까고 남은 껍질"이라고 지적한 뒤 "그 콩깍지를 다시 깔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니 '콩을 깐다'라든가 '콩 꼬투리를 깐다'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콩깍지는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지만, 콩 꼬투리는 의외로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콩 꼬투리를 써야 할 자리에 두루 콩깍지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

콩깍지는 '콩을 털어 내고 남은 껍질'이다.

'깍지'는 콩 따위의 꼬투리에서 알맹이를 까 낸 껍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 '안 깐 콩깍지'란 표현은 사실 성립하지 않는 말이다.

요즘은 쇠죽보다는 사료를 많이 쓰지만 옛날에 이 콩깍지는 여물과 함께 쇠죽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중요한 재료였다.

우리 속담에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라고 하는 말은 '앞이 가리어 사물을 정확하게 보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것이다.

특히 사랑에 빠진 남자나 여자에게 이 말을 쓰면,이는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넘쳐 상대방의 단점은 보지 못하고 뭐든지 좋게 보는 것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이에 비해 콩을 털어 내기 전, 즉 콩알이 들어 있는 상태의 것은 '콩 꼬투리'라고 한다.

꼬투리는 몇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대표적인 게 '남을 해코지하거나 헐뜯을 만한 거리'이다.

'꼬투리를 잡다'처럼 쓰인다.

물론 '콩과 식물의 열매를 싸고 있는 껍질'을 뜻하기도 해 콩과 결합해 '콩 꼬투리'란 합성어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