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 1. 한국 경제는 2008년 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미국발 금융 위기와 함께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는 만큼 덩달아 경기 침체를 겪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그 논란의 중심에는 '미네르바'라는 한 인터넷 논객이 있었다.

# 2. 정말 2008년은 투자자에게 수난의 한 해였다.……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에 담겨 있던 모든 악한 것이 풀려 세상을 헤집어 놓아도 마지막 남은 '희망'을 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 3. '이카루스 패러독스.' 세계적 경영전략 학자인 캐나다의 대니 밀러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기업이 성공요인에 안주하다가 그것이 실패요인으로 반전되는 상황을 일컫는 말로……전문가들은 "이런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기업경쟁력을 가지려면 과거의 성공 경험에 매달리지 말라"고 입을 모은다.

연말 연초를 보내면서 언론들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전망하는 기사를 일제히 내보냈다.

예문에 나오는 미네르바를 비롯 판도라니 이카루스니 하는 말은 그리스 · 로마신화에 나오는 이름들이다.

미네르바는 지혜를,판도라는 호기심을,이카루스는 욕망과 자만을 상징한다.

지혜와 호기심,욕망은 인간이 갖고 있는 동전의 앞 · 뒷면과 같은 속성이다.

그러니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본질적 요소인 이들이 지난해 우리 경제에 극명하게 부각돼 경제 전체를 뒤흔든 셈이다.

신화의 언어가 인류 언어문화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특히 그리스 · 로마신화는 영어권의 어휘를 풍부하게 하고 각종 학술용어를 빌려오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글쓰기에서도 그리스 · 로마신화는 설득력과 읽는 맛을 더해주는 수사법의 보고(寶庫)로 자주 인용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난해 인터넷을 달군 대표적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미네르바'일 것이다.

익명이란 베일에 가려 신비감을 더한 그는 8월께 혜성같이 등장해 내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지난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전격 체포돼 '미네르바'란 이름에 먹칠만 한 채 종말을 맞았다.

미네르바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으로,국어사전에도 올라와 있는 단어다.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에 해당한다.

제우스의 딸인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창과 방패로 무장한 채 태어났다.

그래서 아테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지식의 여신이자 전쟁과 평화의 여신으로 여겨졌다.

아테나는 항상 부엉이를 대동하고 다녔는데,그는 이 부엉이를 통해 지혜와 명철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테나의 부엉이'는 여신을 가리키는 새이자 동시에 '지혜'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아테나의 부엉이는 로마신화에 와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됐다.

이 말은 다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란 문구로 더욱 유명해졌는데,이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법철학> 서문에서 한 말이다.

그는 철학을 부엉이에 빗대 '이성적인 철학이나 진리는 시대를 앞서거나 함께 가기보다는 한 시대가 다 끝나갈 무렵에야 드러나게 된다'는 뜻으로 이 말을 썼다.

부엉이가 낮에는 움직이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살펴보다 어둠이 내려서야 비로소 움직이는 것과 같이 지혜나 철학도 곧바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을 살피고 더듬어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지난해 우리 경제를 두고 '미네르바'가 앞서 움직여 몇 가지는 맞히고 더 많은 몇 가지는 틀린 것을 보면 확실히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둠이 깃들고 나서야 비로소 날아오른다'는 명언이 맞는 얘기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지혜를 상징하는 것에 비해 우리 속담에 보이는 부엉이는 재물이나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짐승으로 그려진다.

'부엉이 곳간'이란 '(부엉이가 둥지에 먹을 것을 많이 모아 두는 버릇이 있다는 데서)없는 것 없이 무엇이나 다 갖춰져 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 '부엉이 셈 치기'라 하면 세상물정에 매우 어두운 사람의 셈을 가리키는 것으로,'부엉이가 수를 셀 때 반드시 짝으로 하므로 하나가 없어지는 것은 알아도 짝으로 없어지는 것은 모른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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