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강력한 산업화 드라이브 속에 일찌감치 개발 바람을 탄 곳은 여의도였다.
1963년 김포공항이 문을 열면서 박정희 정부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일제 때부터 군사비행장으로 쓰이던,그러나 그밖에 별다른 시설 없이 방치되다시피 하던 여의도 땅을 주목했다.
이곳을 대규모 상업지구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홍수 때마다 강물에 휩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섬 둘레를 따라 제방을 쌓아야만 했다.
1968년 드디어 여의도에 물막이 공사가 끝나 둘레 7km에 이르는 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이 둑을 부르는 말이 있어야 할 차례다.
누구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당시 서울시에서는 그 명칭을 '윤중제(輪中堤)'로 붙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말에 '윤중'이란 단어가 없기 때문이었다.
윤회(輪廻)니 윤화(輪禍)니 하는 말은 있어도 '윤중'이란 단어는 생소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정체불명의 단어는 일본에서 들여온 말이었던 것이다.
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쌓고,그 둑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일본에서 '와주(輪中)'라 하고 그 둑을 '와주테이(輪中堤)'라고 부르는 것을 빌려다 우리 한자음으로 읽어 '윤중제'라 한 것이다.
윤중제란 이 고약한 말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중제와 함께 그 사촌쯤 되는 '윤중로'란 말도 쓰이기 시작했다.
윤중로는 지금의 서강대교 남단에서 국회의사당 뒤쪽을 지나 여의2교 북단까지 이어지는 길을 말한다.
공식명칭은 여의서로이지만 아직도 윤중로란 말로 많이 불린다.
윤중로가 유명해진 것은 해마다 4월이 되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 때문이다.
여의도 신시가지를 개발하던 당시 여의도를 돌아가며 쌓은 둑 위 도로가에 벚나무 수천여 그루를 심었다.
그 중에서도 여의서로의 벚꽃길이 가장 좋아 해마다 벚꽃축제가 열려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어쨌거나 여의도 개발이 가져온 이 낯선 말 '윤중'의 침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0년엔 윤중초등학교가,1982년에는 윤중중학교가 개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꿈을 키울 학교 이름을 하필이면 일본말을 빌려다 붙였으니 아쉬움이 컸다.
그 아쉬움은 단순히 그 말이 일본에서 온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뜻도 잘 통하고 낯익은 우리말 '방죽'이란 게 있었는데,이를 무시한 채 무슨 뜻인지도 모를 일본말을 들여다 쓴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윤중'은 우리 한자로 풀면 '바퀴 속'이라는 뜻이니 마을을 가리키는 말로 일본 문화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우리에게 그런 쓰임새는 없는 까닭이다.
우리는 그것을 '방죽골'이라 불렀다.
그런 의미에서 '윤중로' 역시 기왕이면 우리말 '방죽길'이라 했으면 더욱 살갑고 정겨운 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방죽'은 본래 한자어 방축(防築)에서 온 말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한자개념이 사라져 '방축'이란 말은 사어가 되다시피 하고 형태도 '방죽'으로 변해 고유어화한 것이다.
'둑'도 거의 비슷한 말이다.
이를 자칫 된소리로 '뚝'이라 하기 십상이지만 바른 말은 아니다.
흔히 '둑방'이나 '뚝방'이란 말을 쓰기도 하지만 이는 둑과 방죽을 함께 섞어 쓴,겹말 같은 것으로 이 역시 표준어는 아니다.
사전에서는 '윤중제'를 '섬둑' '둘레 둑'으로 순화했지만 그리 잘 쓰이지는 않고 그보다는 '방죽'이 가장 자연스럽다.
서울의 개발이 가져온,생기지 말았어야 할 또 하나의 말이 '고수부지(高水敷地)'다.
1980년대 한강 기슭을 정리하면서 강가에 턱진 땅이 생겼다.
그러자 이를 가리키는 말로 등장한 게 '고수부지'다.
글자 그대로 풀면 '강물이 불어 고수위에 이르면 잠기는 부지'라는 일본식 조어이다.
'부지'라는 말은 일상에서도 흔히 쓰이지만 이 역시 일본에서 쓰는 한자말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말은 '터'이다.
서울시나 언론에서도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고수부지를 썼지만 곧이어 우리말 연구단체나 운동가들 사이에 일본어투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대체어로 제시된 게 '둔치'이다.
이 둔치가 그동안 그런대로 많이 알려져 제법 쓰이곤 있지만 실은 둔치 역시 딱 맞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둔치는 '강,호수 따위의 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 또는 '물가의 언덕'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맞춤한 단어는 '강턱'이다.
'강턱'은 '큰물이 들거나 수위가 높을 때에만 잠기는 강변의 턱진 땅'을 두루 나타내는 말이다.
사전에서는 고수부지의 순화어로 강턱,둔치,둔치 마당 등이 제시돼 있지만 한말글연구회나 한글학회 등에선 일찍부터 '강턱'을 가장 가까운 말로 꼽는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1963년 김포공항이 문을 열면서 박정희 정부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일제 때부터 군사비행장으로 쓰이던,그러나 그밖에 별다른 시설 없이 방치되다시피 하던 여의도 땅을 주목했다.
이곳을 대규모 상업지구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홍수 때마다 강물에 휩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섬 둘레를 따라 제방을 쌓아야만 했다.
1968년 드디어 여의도에 물막이 공사가 끝나 둘레 7km에 이르는 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이 둑을 부르는 말이 있어야 할 차례다.
누구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당시 서울시에서는 그 명칭을 '윤중제(輪中堤)'로 붙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말에 '윤중'이란 단어가 없기 때문이었다.
윤회(輪廻)니 윤화(輪禍)니 하는 말은 있어도 '윤중'이란 단어는 생소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정체불명의 단어는 일본에서 들여온 말이었던 것이다.
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쌓고,그 둑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일본에서 '와주(輪中)'라 하고 그 둑을 '와주테이(輪中堤)'라고 부르는 것을 빌려다 우리 한자음으로 읽어 '윤중제'라 한 것이다.
윤중제란 이 고약한 말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중제와 함께 그 사촌쯤 되는 '윤중로'란 말도 쓰이기 시작했다.
윤중로는 지금의 서강대교 남단에서 국회의사당 뒤쪽을 지나 여의2교 북단까지 이어지는 길을 말한다.
공식명칭은 여의서로이지만 아직도 윤중로란 말로 많이 불린다.
윤중로가 유명해진 것은 해마다 4월이 되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 때문이다.
여의도 신시가지를 개발하던 당시 여의도를 돌아가며 쌓은 둑 위 도로가에 벚나무 수천여 그루를 심었다.
그 중에서도 여의서로의 벚꽃길이 가장 좋아 해마다 벚꽃축제가 열려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어쨌거나 여의도 개발이 가져온 이 낯선 말 '윤중'의 침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0년엔 윤중초등학교가,1982년에는 윤중중학교가 개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꿈을 키울 학교 이름을 하필이면 일본말을 빌려다 붙였으니 아쉬움이 컸다.
그 아쉬움은 단순히 그 말이 일본에서 온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뜻도 잘 통하고 낯익은 우리말 '방죽'이란 게 있었는데,이를 무시한 채 무슨 뜻인지도 모를 일본말을 들여다 쓴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윤중'은 우리 한자로 풀면 '바퀴 속'이라는 뜻이니 마을을 가리키는 말로 일본 문화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우리에게 그런 쓰임새는 없는 까닭이다.
우리는 그것을 '방죽골'이라 불렀다.
그런 의미에서 '윤중로' 역시 기왕이면 우리말 '방죽길'이라 했으면 더욱 살갑고 정겨운 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방죽'은 본래 한자어 방축(防築)에서 온 말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한자개념이 사라져 '방축'이란 말은 사어가 되다시피 하고 형태도 '방죽'으로 변해 고유어화한 것이다.
'둑'도 거의 비슷한 말이다.
이를 자칫 된소리로 '뚝'이라 하기 십상이지만 바른 말은 아니다.
흔히 '둑방'이나 '뚝방'이란 말을 쓰기도 하지만 이는 둑과 방죽을 함께 섞어 쓴,겹말 같은 것으로 이 역시 표준어는 아니다.
사전에서는 '윤중제'를 '섬둑' '둘레 둑'으로 순화했지만 그리 잘 쓰이지는 않고 그보다는 '방죽'이 가장 자연스럽다.
서울의 개발이 가져온,생기지 말았어야 할 또 하나의 말이 '고수부지(高水敷地)'다.
1980년대 한강 기슭을 정리하면서 강가에 턱진 땅이 생겼다.
그러자 이를 가리키는 말로 등장한 게 '고수부지'다.
글자 그대로 풀면 '강물이 불어 고수위에 이르면 잠기는 부지'라는 일본식 조어이다.
'부지'라는 말은 일상에서도 흔히 쓰이지만 이 역시 일본에서 쓰는 한자말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말은 '터'이다.
서울시나 언론에서도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고수부지를 썼지만 곧이어 우리말 연구단체나 운동가들 사이에 일본어투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대체어로 제시된 게 '둔치'이다.
이 둔치가 그동안 그런대로 많이 알려져 제법 쓰이곤 있지만 실은 둔치 역시 딱 맞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둔치는 '강,호수 따위의 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 또는 '물가의 언덕'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맞춤한 단어는 '강턱'이다.
'강턱'은 '큰물이 들거나 수위가 높을 때에만 잠기는 강변의 턱진 땅'을 두루 나타내는 말이다.
사전에서는 고수부지의 순화어로 강턱,둔치,둔치 마당 등이 제시돼 있지만 한말글연구회나 한글학회 등에선 일찍부터 '강턱'을 가장 가까운 말로 꼽는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