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7월 7일은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날이다.
국토의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잇는 길이 428㎞의 대역사였다.
이로 인해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산업화시대의 막을 올렸다.
경제 대동맥이랄 수 있는 이 경부고속도로를 서울에서 빠져 나가면서 처음 만나는 분기점이 판교 나들목이다.
행정관할이 성남시 분당구인 판교는 지금 판교~구리 고속도로,서울외곽순환도로와 만나고 판교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교통요충지로 변했지만 당시만 해도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에 속해 있던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판교IC는 경부고속도로의 탄생과 더불어 그렇게 '판교'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말 연구자들 사이에선 이 판교란 이름을 두고 오래 전부터 논란이 있어 왔다.
본래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잘못 바꾼 것이라는 게 요지이다.
이곳은 원래 조상 대대로 '널다리' '너더리'로 부르던 곳이었다.
그러던 것을 일제 때 행정구역 정비를 하면서 '널빤지 판(板),다리 교(橋)'를 취해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널다리' 또는 '너더리'의 '다리'나 '더리'는 다리(橋)와는 전혀 상관없는,'들(野)'이 변형된 말이라는 점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말과 땅이름에 관심을 두고 전국 각지의 지명을 연구해온 배우리 선생은 "널다리나 너더리의 '다리' '더리'는 원래 '들'을 뜻하며 '다리(橋)'는 아니었다. '널다리'에서의 '널'도 널빤지를 뜻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넓음(廣)'의 뜻을 담는 말이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다만 성남시 분당구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와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는데,판교 지명의 유래를 마을 앞을 지나는 개울(운중천)에 판자로 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판교는 본래 '넓은 들'을 뜻하는 '널다리',또는 그것이 변해 '너더리' 마을로 불리던 곳이라는 점이다.
우리 고유의 감칠맛 나는 땅이름을 한자 지명에 밀려 잃어버린 꼴이 되고 만 셈이다.
우리가 본래 갖고 있던 살갑고 정겨운 지명이 한자 이름의 그늘 속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곳으로는 서울의 여의도(汝矣島)도 대표적이다.
우리가 너무도 흔히,아무 의심 없이 불러온 '여의도'이지만 사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말은 조선시대에 나의주(羅衣洲) 또는 잉화도(仍火島)란 또 다른 이름과 함께 비교적 일찍부터 한자어로 불리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이런 한자말이 모두 본래 고유의 땅이름을 소리나 뜻을 빌려 옮겨 적으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곳은 예부터 한강 가운데에 '너른 벌이 있는 섬'이란 뜻에서 '너벌섬'으로 불렸다.
너벌섬은 더 줄어 '너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배우리 선생이나 국립지리원의 <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여기서 '너'와 비슷한 소리를 빌려 나(羅)를 취하고,'벌'이란 소리를 살리기 위해 옷의 옛말인 '벌'을 뜻하는 한자 '의(衣)'를 취해 '나의주'라 했다고 한다.
여의동 주민센터 홈페이지에서는 특히 '-주(洲)' 표기에 관해 이곳이 본래 고립된 섬이 아닌 현재의 영등포동에 이어진 삼각주였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한다.
지금의 '여의도(汝矣島)'라는 이름도 '너벌섬'에서 '너의섬'으로 바뀌고,다시 '너'의 뜻을 빌린 여(汝)와 소리를 빌려 표기한 의(矣)에 섬 도(島) 자를 붙여 만든 것이다.
'잉화도'의 잉(仍)은 우리말의 '너,나'를 적기 위한 한자 표기이고,'화(火)'는 곧 '불'이므로 비슷한 소리인 '벌'을 나타내기 위한 표기로 풀이된다.
어쨌거나 한자가 득세하던 시절에 우리 고유어를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소리와 뜻을 빌려 옮긴 희한한 말이 '여의도'인 것이다.
여의도나 판교란 지명을 지금 와서 새삼스레 바꿀 수도,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겠지만, 적어도 뜻도 모를 한자말보다는 우리 본래 말인 '너벌섬'이나 '너섬' '너더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더 이상 잊혀져가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국토의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잇는 길이 428㎞의 대역사였다.
이로 인해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산업화시대의 막을 올렸다.
경제 대동맥이랄 수 있는 이 경부고속도로를 서울에서 빠져 나가면서 처음 만나는 분기점이 판교 나들목이다.
행정관할이 성남시 분당구인 판교는 지금 판교~구리 고속도로,서울외곽순환도로와 만나고 판교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교통요충지로 변했지만 당시만 해도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에 속해 있던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판교IC는 경부고속도로의 탄생과 더불어 그렇게 '판교'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말 연구자들 사이에선 이 판교란 이름을 두고 오래 전부터 논란이 있어 왔다.
본래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잘못 바꾼 것이라는 게 요지이다.
이곳은 원래 조상 대대로 '널다리' '너더리'로 부르던 곳이었다.
그러던 것을 일제 때 행정구역 정비를 하면서 '널빤지 판(板),다리 교(橋)'를 취해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널다리' 또는 '너더리'의 '다리'나 '더리'는 다리(橋)와는 전혀 상관없는,'들(野)'이 변형된 말이라는 점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말과 땅이름에 관심을 두고 전국 각지의 지명을 연구해온 배우리 선생은 "널다리나 너더리의 '다리' '더리'는 원래 '들'을 뜻하며 '다리(橋)'는 아니었다. '널다리'에서의 '널'도 널빤지를 뜻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넓음(廣)'의 뜻을 담는 말이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다만 성남시 분당구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와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는데,판교 지명의 유래를 마을 앞을 지나는 개울(운중천)에 판자로 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판교는 본래 '넓은 들'을 뜻하는 '널다리',또는 그것이 변해 '너더리' 마을로 불리던 곳이라는 점이다.
우리 고유의 감칠맛 나는 땅이름을 한자 지명에 밀려 잃어버린 꼴이 되고 만 셈이다.
우리가 본래 갖고 있던 살갑고 정겨운 지명이 한자 이름의 그늘 속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곳으로는 서울의 여의도(汝矣島)도 대표적이다.
우리가 너무도 흔히,아무 의심 없이 불러온 '여의도'이지만 사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말은 조선시대에 나의주(羅衣洲) 또는 잉화도(仍火島)란 또 다른 이름과 함께 비교적 일찍부터 한자어로 불리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이런 한자말이 모두 본래 고유의 땅이름을 소리나 뜻을 빌려 옮겨 적으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곳은 예부터 한강 가운데에 '너른 벌이 있는 섬'이란 뜻에서 '너벌섬'으로 불렸다.
너벌섬은 더 줄어 '너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배우리 선생이나 국립지리원의 <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여기서 '너'와 비슷한 소리를 빌려 나(羅)를 취하고,'벌'이란 소리를 살리기 위해 옷의 옛말인 '벌'을 뜻하는 한자 '의(衣)'를 취해 '나의주'라 했다고 한다.
여의동 주민센터 홈페이지에서는 특히 '-주(洲)' 표기에 관해 이곳이 본래 고립된 섬이 아닌 현재의 영등포동에 이어진 삼각주였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한다.
지금의 '여의도(汝矣島)'라는 이름도 '너벌섬'에서 '너의섬'으로 바뀌고,다시 '너'의 뜻을 빌린 여(汝)와 소리를 빌려 표기한 의(矣)에 섬 도(島) 자를 붙여 만든 것이다.
'잉화도'의 잉(仍)은 우리말의 '너,나'를 적기 위한 한자 표기이고,'화(火)'는 곧 '불'이므로 비슷한 소리인 '벌'을 나타내기 위한 표기로 풀이된다.
어쨌거나 한자가 득세하던 시절에 우리 고유어를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소리와 뜻을 빌려 옮긴 희한한 말이 '여의도'인 것이다.
여의도나 판교란 지명을 지금 와서 새삼스레 바꿀 수도,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겠지만, 적어도 뜻도 모를 한자말보다는 우리 본래 말인 '너벌섬'이나 '너섬' '너더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더 이상 잊혀져가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