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한국경제신문 12월 12일자 A38면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아시아 경제위기를 예측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정말 아시아 경제위기를 예언했는지는 조금 따져보아야 한다.

얘기는 이렇다.

당시 앨린 영이라는 학자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연구한 논문을 썼고 크루그먼 교수는 1995년 포린 어페어스라는 잡지에 실린 글에서 앨린 영 교수의 논문을 인용해 아시아 경제의 정체 가능성을 지적했다.

동아시아 경제의 성장이 자본과 노동의 축적에 기인한 바 크고 기술 발전의 역할은 미미했는데 요소 축적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결국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이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는 1998년 홍콩에서 행한 강연에서 자신이 10%쯤 옳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150% 틀렸기 때문에 자기가 부각되는 것이라며 다소 농담 섞인 발언을 했다.

위기 예측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경제예측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문제는 예측이 맞느냐 하는 것이 예측을 대하는 경제주체들의 태도와 행동에 좌우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안 좋아진다고 예측을 하니까 경제주체들이 그러면 안 되지 하며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 경제의 침체폭이 상당 부분 줄어들거나 회복의 기미까지 보인다면 이 예측은 틀리게 된다.

경제예측의 자기부정적 속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A은행이 곧 파산할 것 같다는 예측이 제시되면 A은행의 예금주들은 은행으로 뛰어가서 예금을 인출한다.

한꺼번에 예금을 다 지급할 수 있는 은행이 없다 보니 고객이 한꺼번에 몰리면 A은행은 문을 닫는다.

예측은 옳았던 것으로 밝혀지고 이를 얘기한 사람은 예언자가 된다.

그런데 이 예측이 맞은 것은 경제주체들이 예측이 맞도록 움직였기 때문이다.

경제예측의 자기실현적 속성이 작동한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에도 두 가지 힘이 작동하고 있다.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각종 지원책과 대규모 재정 집행 대책을 내놓고 있다.

경제가 안 좋아진다는 예측이 틀리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는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 침체의 자기실현적 속성 또한 작동하고 있다.

경제가 나빠질 것 같고 실제로 나빠지고 있는 와중에서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은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이고 주식을 팔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게 된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제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제된 위기설이 유포되고 있다는 점이다.

9월 위기설이 돌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3월 위기설이 돌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러한 위기설은 적절치 못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경제가 힘들어지는 경우 경제주체들은 부정적 예측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뉴스는 별로라고 생각하며 거의 반응을 하지 않다가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면 바로 저거다라며 반응하는 '뉴스 선택의 비대칭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새가슴'이 되어버린 경제주체들의 반응 때문에 근거가 부족하더라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제시되면 예측의 자기실현적 속성이 극대화하면서 취약한 경제는 더욱 엉망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名醫))인 화타의 맏형은 사람들의 모습만 보아도 무슨 병이 걸릴지를 알고 미리 예방을 하도록 해주었고 이 말을 지킨 사람들은 아예 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중병 걸린 사람을 잘 고쳐준 동생 화타처럼 유명해지지는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위기가 영웅을 만들지 모르지만 화타의 맏형처럼 적절한 처방을 통해 예측의 자기부정적 속성이 더욱 강조되도록 하는 사려 깊음이 아쉬운 시점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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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는 마음먹기에 따라 극복 가능해

해설

예측(豫測·Forecasting)은 미래에 대해 미루어 짐작하는 것을 말한다.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추측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물론 합당한 근거나 논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에서 점(占)과도 차이가 난다.

날씨를 미리 짐작하는 것도 예측이고 스포츠 경기에서 누가 이길지를 알아보는 것도 예측이다.

예측에는 물론 감이라는 것이 뒤따라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맞히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경제 예측이란 극히 광범위한 개념의 용어로서 경제에 관한 여러 예측을 포함하지만 이 중 대표적인 것으로 경기 예측과 수요 예측을 들 수 있다.

경기에 대한 예측은 현재의 경기가 어떤지를 밝혀낸 다음 경기의 전환점이 언제일지 예측하는 일이다.

수요 예측은 주로 개개의 상품,예를 들면 컬러 텔레비전이 장차 얼마만큼의 수요가 있을 것인지 예측하는 것이다.

필자에 따르면 경제 예측에는 자기 부정적 속성과 자기 실현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자기 부정적 속성은 경제 예측이 틀릴 경우를 말하고 자기 실현적 속성은 경제 주체들이 예측이 맞도록 움직여 결과적으로 예측이 맞은 경우를 이른다.

그는 한국 경제에도 이 두 가지 힘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고, 특히 3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는 등 경제 주체들의 부정적 예측이 횡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긍정적인 뉴스는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부정적인 뉴스에 동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학자들은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게 된다.

부정적인 뉴스가 더욱 더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제를 악화시킬 수있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물론 이번 위기를 사전에 경고하지 못하고 파국으로 몰고간 데에는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다.

경제학자들은 항상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해왔다.

그 장밋빛 청사진으로 인해 경제는 느슨해지고 일반인들은 오히려 불안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더라도 자기 부정적 속성에 의해 부정적인 측면이 걷어지고 오히려 순기능적으로 경제가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 주체 서로간에 신뢰가 있어야 하고 경제를 역동적으로 바꿀 수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의 합리적인 경제적 사고와 경제 리터러시가 강조된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