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침체로 기업 도산 줄이어… 경제 경착륙 우려
[Focus] 중국 개혁개방 30년… '성장 엔진'도 피곤하다?
1978년 12월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낙후된 중국의 공업·농업·국방·기술 등 4개 분야를 발전시킨다는 '4개 현대화' 달성을 위해 개혁개방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듬해 1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덩샤오핑은 귀국 성명에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다"라는 뜻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설파했다.

중국 역사의 물줄기를 완전히 바꿔 놓은 개혁개방 정책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꼭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개혁개방을 시작했던 1978년 379위안에 불과하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6년 1만6084위안으로 약 42배 증가했고,올해 말까지 2만1000위안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30년간 무려 55배나 증가한 것이다.

중국인들의 생활상도 크게 달라졌다.

개혁개방 당시 자전거와 손목시계,선풍기,재봉틀 등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동차와 고급 아파트,해외여행 상품을 향유하는 시대가 됐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행하는 '인민생활지'에 따르면 개혁개방 이듬해인 1979년 베이징 주민의 연간 외식비용은 10위안 남짓했으나 2006년에는 1320위안으로 130배 늘었다.

1978년 베이징의 1인당 의류비는 50위안이었으나,2006년에는 1442위안으로 급증했다.

국제 무대에서 중국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지난 8월 열린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의 국제적 지위 향상을 상징하는 단적인 예였다.

지난 9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미국의 4대 투자은행의 하나인 리먼브러더스 파산 보호 신청으로 월스트리트가 공황 상태에 빠져들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의 금융 위기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긴급구조요청 신호(SOS)를 보냈다.

후 주석은 "미 금융시장의 안정이 중·미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면서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30년간 줄곧 성장엔진을 가동해 피로해진 탓일까.

중국 경제는 지금 최대의 시련기를 맞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이 2003년 최고지도자로 올라선 이후 질적 성장을 중시하는 '호묘론'(好猫論ㆍ좋은 고양이만 키운다)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기침체는 중국에 큰 도전을 안기고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 11월25일 중국의 내년도 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9.2%에서 7.5%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중국의 내수 침체와 글로벌 경기불안에 따른 중국 수출 감소 우려 때문이다.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한 자릿수에 그치는 것은 지난 2002년 이후 처음이다.

중국 경제는 2002년 이후 두 자릿수 성장률을 지속했으며 2007년에는 경이적인 11.9%를 기록한 바 있다.

경제 경착륙 적신호가 켜지면서 중국정부는 오는 2010년까지 4조위안(약 800조원)을 투입,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키기로 했다.

도로 항만 철도는 물론 농촌기반시설 건설 등에 자금을 대량으로 쏟아붓는 '차이나판 뉴딜정책'을 본격화하기로 한 것이다.

투자자금은 기간시설 확충과 사회복지시설 건설 등에 주로 쓰이게 된다.

이에 대해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11월22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참석한 자리에서 "전 세계 경기침체가 현실화되면서 수출이 줄고 있는 가운데도 중국은 성장을 계속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 주석은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로 산업생산과 기업실적이 크게 타격을 받고 있어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면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소비 진작과 수출 확대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접근을 시도할 것이며 국내 투자에 초점을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위기 징후는 이미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세계의 공장'에서 최근 '식물 공장'으로 변해버린 중국의 제조 허브 광둥성은 후 주석의 질적 성장론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다.

중국 수출의 28%를 차지하는 중국 최고 수출기지인 광둥성에선 최근 두 달 새 무너진 회사가 7만여개에 이른다고 알려지고 있다.

최근엔 '판샹차오(返鄕潮ㆍ고향으로 회귀)'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강제로 일시 휴직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시의 농민공(농촌출신 도시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향하는 '민궁차오(民工潮)'의 역류현상이다.

중국 3위 수출도시인 광둥성 둥관은 시 전체에서 떨이가 진행 중이다.

올해 초만 해도 공장마다 내걸려 있던 '자오궁'(招工ㆍ직원모집)이란 플래카드는 '창팡자오쭈'(廠房招租ㆍ공장임대)로 바뀌어 있었다.

시 외곽 쪽으로 나갈수록 문을 닫은 공장은 점점 많아졌다.

광저우와 둥관의 경계지역인 쩡흥공업구는 몇 달 전 ㎡당 15위안(3000원) 하던 공장 임대료가 6위안(1200원)으로 떨어졌다.

둥관의 오래된 번화가인 후제 상가를 점령한 것은 세일 간판이다.

상점마다 50%,70%씩 세일한다는 문구가 어지럽게 붙어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30년을 떠받쳐온 기업들의 성공 신화도 속속 무너지고 있다.

중국 가전유통업체 궈메이를 이끌고 있는 황광위 회장은 주가 조작을 비롯 은행 불법 대출,외환관리법 위반,뇌물 수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최대 날염업체인 장룽그룹의 타오서우룽 회장 부부가 광저우에서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한때 '멍뉴 속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중국 최대 우유업체 멍뉴의 뉴건성 회장도 멜라민 파동으로 요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들 기업인의 몰락은 앞만 보고 달려온 개혁·개방의 후유증이라는 지적이 많다.

경제주체들이 모두 앞으로 나가는 '첸진(前進)'에서 더 나가 돈을 좇는 '첸진(錢進)'에만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978년이 중국에 있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시기였다면, 2008년은 그 성장의 열매를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지 가늠하는 중대한 기로의 시기가 됐다.

앞으로 30년 뒤 거대한 대륙이 또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게 될지 기대된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