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에 안 나오는 창의성 알아볼 매직아이 돼야”

[기획] '글로벌 인재포럼 2008' 입학사정관제 전문가 좌담회
한국경제신문사는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한 '글로벌 인재포럼 2008'을 지난 4일부터 3일간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개최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행사의 하나로 최근 한국의 대학 입시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전문가 좌담이 있었다.

이 좌담회는 박남기 광주교대 총장의 사회로 킴벌리 존스톤 미 입학사정관협의회 전 회장,김경범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존 잭 맥과이어 리액션스&오피니언 부회장(전 보스턴대 입학처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좌담회에는 국내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 70여명 등 130여명이 몰려 행사장이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참석자들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쏟아져 입학사정관 제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 박남기 광주교대 총장(사회)=한국에선 입학사정관 제도가 막 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선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사실 외국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질문하면 현실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이상적인 상황만 얘기한다.

이 자리에선 허심탄회하게 토론해보자.

우선 시스템이 중요할 것 같다.

△ 킴벌리 존스톤 미 입학사정관협의회 전 회장=우선 학생에 대한 기준치를 설정하기 전에 해당 학교에 대해 스스로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우리 대학이 어떤 곳이고 어떤 틈새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지,어떤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지,정체성은 무엇인지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

그 다음 어떤 학생이 우리 학교와 어울릴 수 있는지 생각해도 늦지 않다.

△ 존 잭 맥과이어 리액션스&오피니언 부회장=나는 원래 보스턴대의 물리학 교수였다.

그러나 학교에서 입학처장을 물색하던 중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얼떨결에 그 자리를 맡게 됐다.

내가 입학처장이 되고 나서 학생 선발시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전형 과정에서 과학적인 요소를 접목시켜 적절성 연구를 해본 거다.

근처 대학과 공동으로 자료조사도 했다.

학생과 학교의 관계,학생 유치방법,등록금 책정방식까지 다양하게 연구했다.

이 시스템을 미국 수백개 대학과 해외 대학에 적용해봤다.

△ 김경범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입학사정관이 갖춰야 할 것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의식과 윤리의식,그리고 대학에 대한 애정이다.

이 일을 하다보면 주변에서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의식이 있어야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또 우리 직업이 단순히 학생을 선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외부에 대학을 대표하는 얼굴 역할도 크다.

특히 대학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 박 총장=학교와 학생의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는 얘기 같다.

입학사정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나.

△ 킴벌리 전 회장=입학사정관이라면 꼭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미국 입학사정관협의회에선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선을 긋는다.

투명성을 갖고 학생을 공정하게 대하라는 거다.

학생의 권한과 책임도 명시하고 있다.

△ 맥과이어 부회장=한 가지 덧붙이자면,입학사정관은 '유지(retention)'에도 신경써야 한다.

학생들의 이탈을 막자는 얘기다.

많은 학생들이 끝까지 학교에 남는 것이 입학사정관의 성공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해당 학교에 잘 맞는 학생을 골라 뽑아야 한다.

△ 박 총장=한국의 입학사정관제도는 학교성적에만 의존하는 게 한계라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맥과이어 부회장=우리의 경우 한 고교에서 5명 이상 본교에 입학시키면 그 고교에 가중치를 주고,또 그 학생이 높은 성적을 유지해 졸업 후 좋은 직장을 구했는지 추적한다.

이런 식으로 각 고교별로 데이터를 구축해 측정하는 등 과학적 방법으로 고교 서열을 정했다.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려고 노력했다.

△ 킴벌리 전 회장=기본적으로 최소한의 학업성취도는 갖춰야 한다.

그래야 대학 입학 후에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 성적은 필요조건이다.

△ 김 교수=동의한다.

모든 대학은 공부를 잘하고,또 계속 잘할 수 있는 학생을 뽑고싶어 한다.

정말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면 지금보다 성적이 더 향상될 수 있는 발전 가능성을 가진 학생을 골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성적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표를 여러 각도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다.

△ 박 총장=좋은 학생을 잘 고르려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 킴벌리 전 회장=뛰어난 학생을 골라내기 위해 여러 가지를,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입학사정관의 역할은 '과학'이 아닌 '예술'이다"고 늘 얘기한다.

△ 김 교수=좋은 학생을 뽑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학생을 고르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 자체를 좋게 만드는 길이다.

이를 위해선 전형에서 선발하려고 하는 목표와 타깃을 정확히 잡은 뒤 직접 고교에 가서 학생들을 될 수 있는한 많이 만나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좋은 인재 풀(pool)을 만드는 첩경이다.

△ 박 총장=입학사정관의 업무 중 주관적 평가가 들어갈 수 있을 법도 하다.

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 킴벌리 전 회장=학부모를 만족시키기란 어렵다. 항의 전화도 빗발친다.

합격생의 객관적인 프로필을 공개해 불만을 잠재우는 방법도 있다.

△ 김 교수=절차적인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도입단계에 있어 결정시스템을 다단계로 만들어 체크하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발한 학생이 우리와 잘 맞는지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김주영 인턴(한국외대 3학년) cocomon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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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입학사정관으로 뽑은 학생이 학점 더 좋아"

서류·면접평가 등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뽑은 학생들이 성적 위주로 선발한 학생들에 비해 대학 학업성적이 더 뛰어나다는 조사결과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는 서울대가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서울대는 특히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성적보다는 창의성이 뛰어난 학생을 선발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김경범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교수는 지난 6일 '글로벌인재포럼' 특별좌담회에 참석해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 학생들의 성적이 우수하다는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서울대에 따르면 해외동포 자녀 등을 뽑는 재외국민전형에서 2006년까지 성적으로 선발한 학생들은 대학 1학년의 학점 평균이 지난 7년간 2.56~2.78점(만점 4.3점)에 그쳤다.

반면 지난해 시범 실시한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합격한 학생들은 학점이 평균 3.4점으로 1점 가까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재외국민전형에 지원하는 지원자 풀은 똑같지만 달라진 것은 성적이 아니라 서류평가로 뽑은 것뿐"이라며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동일하게 확인되는 것은 수능으로 뽑으면 서류 평가를 통해 뽑은 학생보다 대학에서의 학점이 낮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계속 수능으로 뽑는다면 우리 대학에서 공부를 못할 그룹의 학생을 뽑는 행위"라고 밝혀 서울대가 입학사정관 전형을 더욱 확대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김 교수는 입학사정관 전형의 선발기준에 대해 "서울대는 대학에 와서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선발할 계획"이라며 '창의성'을 강조했다.

그는 "수능과 내신이라는 요소는 창의적 사고 육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어른들에 의해 획일화된 가치관을 가진 학생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학이 원하는 것은 이제 대학에 와서 공부할 것을 해보고 싶은 아이들"이라며 "고교에서 너무나 열심히 지속적으로 동일한 학습을 반복해서 대학에 와서는 공부할 생각이 싹 사라진 상태가 되는 상황을 대학은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자기소개서에 '고교 3년은 자신에게 없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다'고 적는 학생은 대학에 와서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 판단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가 2002년부터 입학사정관제를 연구해왔다며 그동안 쌓인 경험에 의한 '직관'이 선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성선화 한국경제신문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