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10일 인천 서해상의 배 위에서는 북녘을 향한 수많은 풍선이 날아올랐다.
풍선들에는 '사랑하는 북녘 동포에게'라는 글이 담긴 전단이 달려 있었다.
서울평화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북한 인권 운동가 수전 솔티 여사가 대북 민간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과 함께 한 행사였다.
그런데 이날 솔티 여사가 날려 보낸 '전단'을 일부 언론에선 다른 말로 전했다.
'삐라'가 그것이다.
# '우리 시대의 연인' 최진실씨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큰 슬픔을 가져왔지만 그 속에 또 다른 주목거리도 있었다.
이른바 '찌라시'다.
그를 자살로 내몬 인터넷 악성 루머의 진원지로 지목된 게 바로 증권가 등에서 떠돈다는 사설 정보지,속칭 '찌라시'였던 것이다.
# "한나라당을 이간시키고 한나라당 의원들을 빼가려는 '삐끼 정치'를 즉각 중단하라."
2007년 말 대통령 선거운동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 소속 당 의원을 빼가려는 상대 당의 시도를 두고 한나라당 대변인이 맹공을 퍼부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삐라'니 '찌라시' '삐끼' 같은 것은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도 오르내리는,비교적 익숙한 말이다.
모두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점,그래서 '일단' 순화 대상에 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공식적인 우리말 체계 안에서의 위치는 각각 다르다.
우선 '삐라'는 '전단(傳單)의 잘못'이다.
사전적으로는 틀린 말,쓰지 못할 말로 대우받고 있는 셈이다.
'찌라시'는 '선전지' 또는 '낱장 광고'로 순화됐다.
못쓸 말은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순화한 말로 쓰라는 뜻이다.
이에 비해 '삐끼'는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당당히 사전에 표제어로 올랐다.
굳이 우리말로 다듬자면 '호객꾼' 정도가 될 수 있을 터인데 따로 순화한 말은 없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이들 세 단어는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것은 같지만 그 연원을 찾아 들어가면 우리말로 넘어오기까지 조금씩 다른 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삐라'는 본래 영어의 'bill'을 일본에서 자기들의 음운체계로는 제대로 발음이 안 되니까 'びら(비라)'로 적고 읽은 것이다.
이 말이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경음화해 '삐라'가 됐다.
1995년 당시 문화체육부는 광복 50돌을 맞아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자료'를 고시하면서 이를 '전단'으로 바꿨다.
특히 태생은 영어이면서 일본색이 덧칠해져 왜곡된 형태로 굳어졌다는 점에서 사전적으로는 아예 '버릴 말'로 처리했다.
하지만 대체어 '전단'도 순화의 예봉을 피해가지 못 했다.
이 말은 다시 '알림 쪽지'로 다듬어졌다.
물론 언중의 선택을 받지 못해 자료집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말이 되긴 했지만.
'찌라시'는 일본에서 주로 신문에 끼여 오는 광고지 또는 선전지를 가리키는 말 '散(ち)らし'(흩뜨림 또는 광고지)를 그대로 읽은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지라시'가 되지만 '찌라시'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니 95년의 '고시자료'에서 이 역시 당연히 순화 대상이 됐는데,이때 다듬은 '선전지' 또는 '낱장 광고'는 전혀 언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찌라시와 삐라가 동의어로 쓰인다.
특이한 것은 '삐라(또는 전단)'와 '찌라시'는 사전적 풀이가 '선전이나 광고를 위해 만든 종이쪽지'로 그 의미가 거의 같으면서도 순화어는 각각 '알림 쪽지'와 '선전지(낱장 광고)'로 달리 제시된 점이다.
순화어가 사뭇 억지스러운 데다 이처럼 두 가지로 제시된 것도 언중의 호응을 얻지 못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
이에 비해 '주로 술집에 고용돼,지나가는 사람을 손님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삐끼'는 사전에 오른 단어로, 속어이지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이는 본래 일본어 '히키(引,ひき)'에서 온 말이다.
이 '히키'는 우리나라로 넘어와 당구 용어로 '시키(시끼)' 등의 발음으로 변해 쓰이기도 하는데,95년의 고시에서 '끌기'로 순화됐다.
'삐끼'는 이 '히키'에서 의미가 획대돼 파생한 말이다.
우리 사전이 이 '삐끼'에 대해 아무런 언급 없이 올림말로 다룬 것은 이 말이 본래 말 '히키'에서 파생해 새로운 단어로 굳어진 것으로 본 까닭인 듯하다.
'전단'과 '삐라'는 지금 언중의 선택을 놓고 세력싸움이 한창이다.
그러나 순화어 '알림 쪽지'는 이미 판정패했다.
'선전지'나 '낱장 광고'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찌라시'가 이미 뿌리를 내렸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 다듬기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언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다듬은 말을 굳이 끌고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풍선들에는 '사랑하는 북녘 동포에게'라는 글이 담긴 전단이 달려 있었다.
서울평화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북한 인권 운동가 수전 솔티 여사가 대북 민간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과 함께 한 행사였다.
그런데 이날 솔티 여사가 날려 보낸 '전단'을 일부 언론에선 다른 말로 전했다.
'삐라'가 그것이다.
# '우리 시대의 연인' 최진실씨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큰 슬픔을 가져왔지만 그 속에 또 다른 주목거리도 있었다.
이른바 '찌라시'다.
그를 자살로 내몬 인터넷 악성 루머의 진원지로 지목된 게 바로 증권가 등에서 떠돈다는 사설 정보지,속칭 '찌라시'였던 것이다.
# "한나라당을 이간시키고 한나라당 의원들을 빼가려는 '삐끼 정치'를 즉각 중단하라."
2007년 말 대통령 선거운동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 소속 당 의원을 빼가려는 상대 당의 시도를 두고 한나라당 대변인이 맹공을 퍼부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삐라'니 '찌라시' '삐끼' 같은 것은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도 오르내리는,비교적 익숙한 말이다.
모두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점,그래서 '일단' 순화 대상에 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공식적인 우리말 체계 안에서의 위치는 각각 다르다.
우선 '삐라'는 '전단(傳單)의 잘못'이다.
사전적으로는 틀린 말,쓰지 못할 말로 대우받고 있는 셈이다.
'찌라시'는 '선전지' 또는 '낱장 광고'로 순화됐다.
못쓸 말은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순화한 말로 쓰라는 뜻이다.
이에 비해 '삐끼'는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당당히 사전에 표제어로 올랐다.
굳이 우리말로 다듬자면 '호객꾼' 정도가 될 수 있을 터인데 따로 순화한 말은 없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이들 세 단어는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것은 같지만 그 연원을 찾아 들어가면 우리말로 넘어오기까지 조금씩 다른 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삐라'는 본래 영어의 'bill'을 일본에서 자기들의 음운체계로는 제대로 발음이 안 되니까 'びら(비라)'로 적고 읽은 것이다.
이 말이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경음화해 '삐라'가 됐다.
1995년 당시 문화체육부는 광복 50돌을 맞아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자료'를 고시하면서 이를 '전단'으로 바꿨다.
특히 태생은 영어이면서 일본색이 덧칠해져 왜곡된 형태로 굳어졌다는 점에서 사전적으로는 아예 '버릴 말'로 처리했다.
하지만 대체어 '전단'도 순화의 예봉을 피해가지 못 했다.
이 말은 다시 '알림 쪽지'로 다듬어졌다.
물론 언중의 선택을 받지 못해 자료집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말이 되긴 했지만.
'찌라시'는 일본에서 주로 신문에 끼여 오는 광고지 또는 선전지를 가리키는 말 '散(ち)らし'(흩뜨림 또는 광고지)를 그대로 읽은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지라시'가 되지만 '찌라시'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니 95년의 '고시자료'에서 이 역시 당연히 순화 대상이 됐는데,이때 다듬은 '선전지' 또는 '낱장 광고'는 전혀 언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찌라시와 삐라가 동의어로 쓰인다.
특이한 것은 '삐라(또는 전단)'와 '찌라시'는 사전적 풀이가 '선전이나 광고를 위해 만든 종이쪽지'로 그 의미가 거의 같으면서도 순화어는 각각 '알림 쪽지'와 '선전지(낱장 광고)'로 달리 제시된 점이다.
순화어가 사뭇 억지스러운 데다 이처럼 두 가지로 제시된 것도 언중의 호응을 얻지 못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
이에 비해 '주로 술집에 고용돼,지나가는 사람을 손님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삐끼'는 사전에 오른 단어로, 속어이지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이는 본래 일본어 '히키(引,ひき)'에서 온 말이다.
이 '히키'는 우리나라로 넘어와 당구 용어로 '시키(시끼)' 등의 발음으로 변해 쓰이기도 하는데,95년의 고시에서 '끌기'로 순화됐다.
'삐끼'는 이 '히키'에서 의미가 획대돼 파생한 말이다.
우리 사전이 이 '삐끼'에 대해 아무런 언급 없이 올림말로 다룬 것은 이 말이 본래 말 '히키'에서 파생해 새로운 단어로 굳어진 것으로 본 까닭인 듯하다.
'전단'과 '삐라'는 지금 언중의 선택을 놓고 세력싸움이 한창이다.
그러나 순화어 '알림 쪽지'는 이미 판정패했다.
'선전지'나 '낱장 광고'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찌라시'가 이미 뿌리를 내렸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 다듬기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언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다듬은 말을 굳이 끌고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