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일상을 스케치하다

⊙ 1930년대 경성,근대의 르네상스

[강영준 선생님의 소설이야기] 4. 박태원「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요즘 복고가 유행이다.

그것도 1930년대 식이다.

올 여름 스크린을 달구었던 '좋은 놈,나쁜 놈,이상한 놈'이나 최근에 개봉한 '모던 보이'는 그 배경이 모두 1930년대다.

물론 영화적 외연을 넓히기 위한 시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시도가 소통되고 유행하는 것은 당대의 시대상과 지금의 현실이 아주 이질적이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1930년대 식민지 경성.분명 정치 사회적으로는 억압과 위기의 징후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겠지만 이와는 별도로 식민지 수도 경성은 사회 문화적으로는 빠르게 근대적인 면모를 갖춰 나가고 있었다.

근대적인 역사(驛舍)가 생기고 전차가 시내 곳곳을 누빌 수 있게 되었으며,각종 관공서는 물론이고 근대적인 교육기관과 병원,영화관,심지어 이발소와 공중목욕탕,카페,댄스 홀에 이르기까지 근대적인 문물과 제도가 빠르게 정착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거의 모든 근대 문화의 기원은 1930년대 경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작가들이 이러한 경성의 변화상을 놓쳤을 리는 만무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로 '구인회'의 멤버였던 김기림,정지용,이상,이태준 등 소위 1930년대 모더니스트들은 급속하게 변모해 가는 근대 도시의 일상을 작품으로 꾸준히 형상화했던 것이다.

이들 중에서 우리가 이번에 살펴볼 작가는 바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박태원이다.

박태원은 일련의 작품을 통해 근대적인 일상을 마치 카메라로 촬영하듯 서술하고 있는 점에서 그 누구보다도 근대를 자세히 묘사한 작가이다.

그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1930년대 경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근대를 경험하며 자기 감정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 구보의 고독한 산책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여섯 살의 '구보'는 정오에 집을 나와 광교와 종로를 걸으며 자신의 몸에 병이 들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는 무작정 동대문행 전차를 타기도 하고 혼자 다방에 앉아 차를 마시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주위를 관찰한다.

그러나 엄습하는 고독과 불안.그는 고독을 피하려고 경성역 삼등 대합실로 가지만,오히려 온정을 찾을 수 없는 냉정한 눈길들에 쓸쓸함은 더해만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중학 시절 열등생이 예쁜 여자와 동행하는 것을 보며 여자의 헛된 허영심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어서 그는 다방에서 사회부 기자인 친구가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건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하다가는 종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하루를 온종일 떠돌다 이제는 새벽 두 시의 종로 네거리,'구보'는 어머니가 권하는 대로 결혼도 하고 생활도 갖고 창작도 하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향하게 된다.

이것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간략한 내용이다.

여느 소설처럼 특별한 갈등이나 줄거리도 없이 '구보'가 그저 도시를 산책하거나 전차를 타다가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근대적인 문물을 관찰하고,거기서 느끼는 자기 감정을 쓴 것이 소설의 전부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박태원이 당시의 경성을 번화하고 활기 찬 곳이 아니라 퇴폐적이고 병적인 곳으로 그렸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구보,곧 작가 박태원에게 근대는 편리와 안락이 아니라 불편과 소통 부재,그리고 병적 공간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 근대-주체와 타자의 이분법

다음은 구보가 도시에서 느낀 고독을 달래기 위해 일부러 찾았던 경성역 안에서의 장면이다.

'그러나 오히려 고독은 그 곳에 있었다.

구보가 한옆에 끼여 앉을 수도 없게스리 사람들은 그 곳에 빽빽하게 모여 있어도,그들의 누구에게서도 인간 본래의 온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네들은 거의 옆엣 사람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네는 일도 없이,오직 자기네들 사무에 바빴고,그리고 간혹 말을 건네도,그것은 자기네가 타고 갈 열차의 시각이나 그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네들의 동료가 아닌 사람에게 그네들은 변소에 다녀올 동안의 그네들 짐을 부탁하는 일조차 없었다. (중략)

구보는 자기 자신의 만성 위 확장을 새삼스러이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구보가 매점 옆에까지 갔었을 때,그는 그 곳에서도 역시 병자를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십여 세의 노동자.

전경부(前頸部)의 광범한 팽륭(澎隆).

돌출한 안구(眼球) 또,손의 경미한 진동.

분명한 바제도 씨 병.

그것은 누구에게든 결코 깨끗한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의 좌우에는 좌석이 비어 있어도 사람들은 그 곳에 앉으려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그에게서 두 간통 떨어진 곳에 있던,아이 업은 젊은 아낙네가 그의 바스켓 속에서 꺼내다 잘못하여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린 한 개의 복숭아가 굴러 병자의 발 앞에까지 왔을 때,여인은 그것을 쫓아와 집기를 단념하기조차 하였다.

-박태원,「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인용된 부분에서 느껴지듯이 구보는 오히려 경성역 안에서 더욱 심한 고독을 느낀다.

분명 경성역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그러나 구보는 그곳에서 '인간 본래의 온정'을 찾지 못한다.

한마디로 근대인들은 소통 부재와 불신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구보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보가 관찰한 사람들은 구보를 포함하여 대체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이다.

작품에서 보듯이 경성역 안의 사람들은 지저분하고 병적인 이들에게는 접근조차 꺼려 한다.

한마디로 정상인과 병자를 나누는 이분법이 작동하는 것이다.

물론 병자를 꺼려 하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 정서일 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이를 부각시켜 표현한 것은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가 인간 사회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음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주체와 타자를 나누고,타자를 주변화하려는 근대의 뒤틀린 면모가 고스란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 근대도시의 일상

근대는 온갖 물질 문명의 세례 속에서 마치 축복처럼 다가왔었다.

그러나 근대의 메커니즘이 언제나 밝은 면을 지녔던 것만은 아니다.

합리적이고 잘 구획된 인공적인 공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불행히도 근대인은 철저히 분할된 공간 속에,그리고 꽉 짜여진 시간표 속에 종속된 채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 까닭에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었고 결국 불신과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근대의 기획은 분명히 신화와 미신이 지배하는 봉건사회로부터 인류를 한 차원 진보하게 만들었다.

무질서하고 지저분하며 음험한 자연세계를 규칙과 질서를 통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근대 도시로 만들어 낸 것이다.

문제는 합리와 효율을 높이고,보편성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 새 각자가 지닌 본래의 고유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다.

공간이나 시간도 모두 그 고유한 특수성을 잃고 보편적인 단위로 환산되고 만다.

근대의 보편적 기획은 자칫 획일화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고,그 지점에서 주체와 타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타자를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앞서 인용된 부분에서 병자를 철저히 소외시키는 심리는 이런 맥락 안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나'와 차이를 지닌 사람과는 소통하지 않으려는 편견은 결과적으로 현대인들을 소통 부재의 삶으로 내몰리게 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태원은 1930년대 이제 막 근대화가 시작된 식민지 도시 경성에서 그 누구보다도 먼저 근대가 지닌 병적 징후를 파악한 작가이다.

또 그의 작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어쩌면 근대적 일상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인 동시에 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 할 수 있겠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