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학>

☞ 한국경제신문 9월30일자 A39면

최근 노사분규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

파업 건수는 줄고 있지만 파업 지속일수와 근로손실일수가 늘어나고 장기파업이 증가하고 있다.

1989년 최고점을 기록하던 파업건수는 지속적으로 줄어 1997년 최저점을 기록했고,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의 와중에 파업이 증가했으나 2005년부터는 다시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파업건수와는 달리 파업지속일수와 근로손실일수가 계속 길어지는 기현상을 보인다.

1989년에는 평균 파업지속일수가 5~6일 정도에 불과했으나,이후 매년 늘어나 지난해에는 55일에 이르렀다.

최근 장기파업 사업장도 증가하고 있다.

234일을 끌고 타결된 알리안츠생명,434일 만에 노사가 합의한 뉴코아,몇 년째 분규가 지속되는 기륭전자,KTX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파업의 장기화 현상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1989년에는 전체 파업의 70~80%가 임금이 원인으로 단기파업이 많았지만,외환위기 이후 고용문제,구조조정 등 단체협상이 전체 파업 원인의 절반을 넘기면서 파업의 장기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의 장기파업은 대부분 그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파업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알리안츠생명의 파업은 관리직에 해당하는 지점장이 주축이 됐고 뉴코아와 기륭전자,KTX 승무원의 파업은 모두 비정규직 고용문제가 도화선이 된 사례다.

정규직 생산사원을 중심으로 한 파업이 지난 수십년간 파업의 주된 양상이었으므로 비정규직과 관리직의 파업에는 노ㆍ사ㆍ정 모두 대응이 미숙하고 해결모델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타결도 더디다.

장기파업은 노사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

기업 간 경쟁이 극한상황에 이르면서 기업은 노사분규에 더욱 취약해졌다.

장기파업이 끝나기 전에 소비자들은 경쟁기업으로 옮겨간다.

자동차산업에선 부품공장 한 곳의 파업이 수십개 조립공장 라인을 중단시킨다.

근로자들에게도 장기파업은 치명적이다.

파업이 몇 달을 넘기면 당장 생계가 급한 근로자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나서서 파업대오는 쉽게 무너지고 협상력은 약해진다.

234일을 끌고 타결된 알리안츠생명,434일 만에 타결된 뉴코아 노사분규 모두 장기간을 끌었지만 근로자의 의견이 거의 관철되지 않은 것은 장기파업의 결과가 근로자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파업의 악성화와 장기화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먼저 자율해결의 원칙이 중요하다.

장기파업에 대해 정치인이나 시민단체가 중재를 한답시고 해결방안을 몇 마디 거들게 되면 파업근로자들의 기대수준만을 높여서 타결이 더욱 어려워진다.

파업은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노사 간 자율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효과적이다.

또한 법과 원칙의 철저한 준수가 필요하다.

노사가 모두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있어야 자율타결을 할 동기가 생기는 것이다.

사용자가 파업 중 임금을 지급하는 관행은 목전의 파업을 빨리 끝내는 효과는 있겠지만 노동자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없으므로 향후 파업의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2000년 이후 대기업 정규직의 파업은 감소하고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파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 노사관계의 최전선은 대기업ㆍ정규직에서 중소기업ㆍ비정규직으로 옮겨가고 있다.

사무관리직 사원들도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을 느껴 노동조합에 관심을 보이고 노사분규도 일어난다.

2010년부터 사업장 단위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비정규직과 사무관리직의 노조활동 증가가 예상된다.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사무관리직의 노사관계를 제도권 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방안이 시급하다.

기업은 새로운 유형의 노사관계를 미리 예측하고 대응방안을 일찍 수립하는 예방형 노사관계 관리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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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노동권 행사는 기업 경쟁력 약화시켜

해설

노동관계법은 근로자들이 스스로 단결하고 교섭하며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경영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로자들의 협상 위치를 감안한 특별한 권한이다.

그런데 국내 일부 기업의 노동조합은 노동권을 과도하게 행사해 사회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권을 지나치게 행사할 경우 기업은 이윤을 다시 투자할 수 없어 성장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결국 근로자의 일자리를 줄어들게 만든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의 노사분규가 장기화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과도한 노동 행동을 경계하고 있다.

"기업 간 경쟁이 극한 상황에 이르면서 기업은 노사분규에 더욱 취약해졌다. 장기 파업이 끝나기 전에 소비자들은 경쟁기업으로 옮겨간다.

자동차 산업에선 부품 공장 한 곳의 파업이 수십개 조립공장 라인을 중단시킨다."

노사 분규가 이처럼 장기화되는 데 대해 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등으로 노사협상의 대상이 변화했기 때문이라면서 노사협상 과정에서 제3자가 이런 저런 훈수를 두어 근로자들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분규를 장기화시키는 한 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는 노사협상은 설사 분규로 인해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독자적으로 타결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강조한다.

노사협상에서 근로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 회사가 부담을 못이겨 몰락의 길로 접어든 사례는 적지 않다.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이었던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는 과도한 종업원 복지로 올 들어 침몰하고 있다.

연초 세계 1위 자리를 일본 도요타에 내준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일부 공장을 팔고 인원을 크게 줄이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GM은 2000년대 초반 만해도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흑자가 누적되자 노동조합은 이미 퇴직한 직원들에게까지 의료혜택을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이를 경영진이 받아들여 복지후생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자동차 1대의 판매액에서 직원 복지후생비가 차지하는 금액이 평균 1500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GM은 2005년 이후 누적 손실규모가 790억달러에 달하자 전 세계 10억 인구가 시청하는 에미상과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방송 광고 후원을 포기하기도 했다.

노사가 화합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경영자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노동자와 경영자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회사라는 조직을 함께 키워나가는 동반자 관계이다.

소유가 분산되고 말단 직원이 사장까지 올라가는 현대 기업에서 노사를 갈등이나 계급론적인 시각에서 설명할 여지는 거의 없다.

오히려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경영자와 노동자가 야합하는 것을 주주들은 경계해야 한다.

김 교수가 경영자들에게 회사 구성원들이 공감하는 조직의 장기 비전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박주병 한국경제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