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개정판 <표준국어대사전>이 나온다
다시 국감의 계절이 돌아왔다.

다음 달 6일부터 25일까지 올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벌어진다.

10여 년 전부터 국어 관련 실태와 정책 집행의 문제점이 꾸준히 국감 소재로 다뤄져 왔다.

우리 말글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커졌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감에서 거론될 만큼 말글 사용의 실태가 어지러워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2002년 당시 윤철상 민주당 의원이 문화관광부 감사에서 지적한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은 말글 사용의 교본이랄 수 있는 우리 사전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국어학자 500여명이 동원돼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년에 걸쳐 나랏돈 120여억원을 들인 국가 사업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더욱 컸다.

"우리 속담에 '언발에 오줌누기'란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 국어사전에 '언발'이나 '오줌누기'란 올림말은 없고 그것을 한자말로 번역한 '동족(凍足)'이나 '동족방뇨(凍足放尿)'는 올라 있다.

국어사전이 우리말의 자주성을 살리기는커녕 경쟁적으로 없는 한자말까지 만들어 올림말을 늘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 아닌가. "

두께만 해도 7328쪽에 이르는 데다 50만개의 방대한 양의 단어를 자랑하던 국내 최대 국어사전이 조목조목 비판을 받은 것은 국감장을 통해서였지만 그 자료는 기실 민간단체에서 나온 것이다.

원로 언론인이자 한글학회 회원인 정재도 선생이 이끌던 우리말 연구단체 '한말글연구회'는 2002년 7월 연구지 <한말글연구>를 통해 '현 국어사전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우리 사전의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드러난다.

윤 의원의 질타는 이어진다.

"궁창(穹蒼),벽공(碧空),벽락(碧落),벽우(碧宇),벽천(碧天),벽허(碧虛),창공(蒼空),창천(蒼天),청명(靑冥),청천(靑天),청허(晴虛)… 이게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아는가?

이런 단어의 뜻을 이해하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 것이며 통용될 수 있는 단어라고 보는지 사전편찬자에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

다시 한말글연구회의 주장을 인용해 보자.웬만큼 한자에 조예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뜻과 어감의 차이를 구별해 쓰는 사람은 극히 드물 이들 말을 고유어로 하면 '푸른하늘'이다.

예의 한자어 가운데 우리 말글살이에서 실제로 쓰이는 것은 아마 청천과 창공 정도,좀 더 후하게 봐주더라도 벽공,창천에 불과할 것이다.

나머지는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할 말을 늘어놓았는데 이런 게 모두 21개에 달한다.

이에 반해 모두가 알고 쓰는 '푸른하늘'은 우리 사전에 보이지도 않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하는 게 비판의 요지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무리한 '단어 수 부풀리기'는 표제어 '땅크'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탱크'의 북한어인 '땅크'란 올림말 밑으로 땅크고사기관총,땅크기관총,땅크밤조준기구,땅크병,땅크복,땅크부대,땅크사냥군조… 이런 식으로 땅크와 어울려 만들어진 북한의 군사용어를 무려 15개나 나열하고 있다.

'땅크'는 남한의 '탱크'와 표기가 달라 표제어로 보여줄 만하다.

그러나 우리 언어생활과 전혀 관련이 없는,더구나 대부분 단어라기보다 전문 용어에 불과한 말들까지 일일이 올림말로 다룬 것은 제작 과정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이 얼마나 물리적 양 늘리기에 급급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태 전(2006년) 한글날을 기해 더 이상 종이 사전을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신 인터넷사전(웹사전)으로 <표준국어대사전>의 개정판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 작업이 오늘 10월 중순께 발표를 목표로 지금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새로 개정 발표될 인터넷판에서는 이런 문제점들이 개선돼 좀 더 우리 사전다운 모습과 권위를 갖추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