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용 <전남대 교수·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8월27일자 A38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촛불집회,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을 둘러싼 국회 원 구성 지연,KBS 사장 퇴진을 둘러싼 대립 현상은 우리 사회에 깊게 파인 갈등의 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 갈등의 뿌리는 결국 보수와 진보라는 구성원들의 이념적 차이에서 연유하므로,여기에서 이들의 의미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파'를 의미하는 '보수'와 '좌파'를 의미하는 '진보'라는 용어는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사용되고 있지만,정책에 관한 견해를 보면 그 정체성이 잘 드러난다.

보수는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개인 생활에 대한 정부 개입이 증가하면 불가피하게 자유가 억압되기 때문에 정부 개입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각종 정책에 의해 영향받는 불특정한 대다수 사람들을 관심의 대상으로 한다.

대다수의 이익에 관심을 두는 만큼 특정 개인이나 집단은 물론 불특정 대다수의 인기도 얻기 어렵다.

그러나 인류 사회는 보수를 바탕으로 발전했고 풍요해졌다.

반면에 진보는 특정 정책에 의해 이익이나 손해를 보는 식별 가능한 개인과 집단에 관심을 가지며,이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자유 일부를 유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익을 얻는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이유다.

그러나 정부 개입을 중요시하는 만큼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며,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진보가 목표로 하는 특정 계층은 물론 사회 전체를 가난의 질곡(桎梏)으로 몰아넣었다.

진보는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이므로 사회 운행의 기본 틀은 보수에 바탕을 둬야 한다.

홀로 설 수 없다는 말은 진보 그 자체의 논리로는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유지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진보 역시 어느 사회 어느 때나 존재하며 보수에 대한 비판과 견제 세력으로서의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보수는 진보를 포용할 필요가 있다.

법 테두리 안에서 허용 가능한 부분은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정권은 보수를 표방하며 출범했고,따라서 원칙과 포용을 바탕으로 한 품위는 현 정권에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국정 수행을 보면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KBS 사장의 퇴진을 둘러싼 사태를 보면 그렇다.

정권이 바뀐 후 유·무형의 퇴진 압력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던 KBS 사장의 모습도 품위 없기는 마찬가지지만,마구잡이식으로 몰아내려는 정부의 행태에서도 품위는 찾아볼 수 없다.

품위 없기는 정부뿐만 아니다.

촛불집회에 참가해 법 질서를 어지럽힌 일부 야당 의원들이 보여준 행위도 마찬가지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을 빌미로 국회 원 구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여당과 야당 간의 줄다리기에서도 품위는 찾아볼 수 없다.

어느 나라나 이념의 단진자(單振子)가 좌우를 이동하면서 정치·경제·문화의 전반적 수준이 높아진다.

지난 10년간의 진보 정권 아래에서 진보의 정체성과 결과가 잘 드러났고,보수의 정체성도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지금 보수와 진보가 함께 잘 정리돼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러나 그간 정부·여당의 전략과 전술 부재,사회 현안에 대한 무원칙 대응 등으로 퇴출돼야 할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가 살아남으로써 사회가 이념적으로 정리되기는커녕 아수라장이 돼 버렸다.

국정이 삐걱거린 이유다.

정부가 내건 경제 살리기도 사회가 이념적으로 잘 정리돼야 가능하다.

이념은 사회를 떠받치는 교각이기 때문이다.

보수는 진보를 포용하고 품위 있게 행동함으로써 경제 살리기는 물론 사회 전반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여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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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모두를 위하는 정치여야

해설

흔히 보수는 현실 안주를, 진보는 개혁을 지향하는 이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보수와 진보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보는 게 편리하다.

즉 보수는 자유를, 진보는 평등이라는 가치를 존중한다.

자유를 주장하는 보수는 그래서 정부 개입을 반대하며 작은 정부를 주장하고, 평등을 내세우는 진보는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며 큰 정부를 강조한다.

다산칼럼의 김영용 교수는 이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보수는 대대수 사람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고, 진보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얼핏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소득 재분배 철학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근거로 하고 있는 소득 재분배 철학은 공리주의이고,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철학은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의 사상이다.

공리주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가정하면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

한계효용체감이란 소득이 높을수록 추가 소득에서 얻는 만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과를 10개 가진 사람이 하나 더 가질 때의 만족도 증가분보다 100개 가진 사람이 하나 더 가질 때 느끼는 만족도 증가분이 작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리주의는 소득 재분배를 하면 사회 전체의 만족도(효용)가 증가한다고 본다.

그러나 재분배가 지나치면 고소득자의 소득 창출 의욕이 줄어들어 사회 전체의 만족도가 오히려 줄어들게 되므로 소득 재분배 정책을 펼 때는 항상 사회 전체의 만족도가 최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 존 롤스주의자들은 재분배 정책을 펼 때 사회 최빈곤층을 기준으로 삼는다.

즉 사회 최빈곤층이 가장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재분배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재분배 정책의 기준을 사회 총효용 극대화가 아니라 최빈층의 효용 극대화에 두고 있는 것이다.

고소득층의 소득 창출 의욕 감소 효과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김 교수가 언급하는 '보수는 전체를 염두에 두는 반면 진보는 특정 집단을 대변한다는 내용'은 바로 이러한 점을 근거에 두고 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보수를 지향하는 현 정부가 좀 더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 '진보는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이므로 사회 운행의 기본 틀은 보수에 바탕을 둬야 한다.

홀로 설 수 없다는 말은 진보 그 자체의 논리로는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유지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는 주장은 바로 보수가 국민 전체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지적이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