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 한국경제신문 8월27일자 A39면

일본에는 창업 이래 100년을 넘은 장수기업이 5만개가 있다.

200년 이상 기업도 3100여개나 된다.

이러한 일본 장수기업들은 약 580만명에 달하는 고용유지를 통해 일본 경제의 뿌리를 튼튼하게 지탱하고 있다.

또한 이들 장수기업은 오랜 기간 축적된 최첨단 소재ㆍ부품의 경쟁력을 앞세워 1980년대의 엔고 파고와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200년 이상 기업은 없으며, 100년 이상 기업은 동화약품공업 등 두세 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578년 설립돼 세계 최고(最古) 기업으로 알려진 일본 건축회사 곤고구미가 그 옛날 백제인이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민망할 정도다.

장수기업들은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독보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창업되고 지속적인 성장과정을 통해 장수기업으로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가업승계다.

최근 들어 우리 중소기업 현장에도 가업승계에 직면한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단카이세대 은퇴와 유사하게 우리나라도 1960~70년대 경제발전을 선도했던 1세대 창업자의 은퇴 시기 도래로 가업승계가 사회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짧은 산업화의 역사로 그동안 정부정책이 창업과 혁신형 기업의 육성에 치중됐다.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을 통해 이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후대에 물려주는 데에는 정책적 배려가 전혀 없었다.

더욱이 가업승계가 장수기업으로 가는 필연적인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부의 대물림'이란 곱지 않은 시각으로 중소기업인의 경영의욕을 저하시키고 있으며,경영자로 하여금 평생 일궈놓은 가업을 후대에 떳떳이 물려주는 것을 망설이게 만들고 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기업을 열심히 키워 건실한 기업으로 인정받을수록 상속ㆍ증여세가 높고 가업승계가 더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한다.

현행 세법이 경영자들에게 본연의 경영활동에 전념하기보다는 사업 분할,세금 회피 등 비정상적인 경영활동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중소기업인의 고령화에 따른 사업 단절을 우려해 각종 지원시책을 시행 중이다.

2005년부터 사업승계협의회를 설립해 상속세법,회사법 등 사업승계 원활화에 대한 지원제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주요 은행들도 잇따라 가업승계 금융지원을 위해 사업계속펀드를 조성해 나가고 있다.

올 10월부터는 비상장주식에 대한 상속세법을 개정해 상속세의 20%만을 부과하고 5년 이상 사업을 지속하고 고용을 80% 이상 유지하는 경우에 상속세의 80%(종전에는 10%)를 감면해 줄 계획이다.

우리도 일본과 같이 가업승계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글로벌 명문 장수기업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가업을 성공적으로 승계할 수 있는 국가적인 지원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가업승계에 대한 정책적 접근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검토돼야 한다.

우선 창업 지원에 준하는 정책적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가업승계에 대한 상속ㆍ증여세 완화다.

중소기업이 가업승계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각종 애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고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가업승계지원센터의 기능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가업상속 세제혜택 적용요건을 완화하고 가업상속 세율 인하와 공제 확대 등 실질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하며 중ㆍ장기적으로 독일식 제도인 상속세의 연차별 감면제도를 도입해 상속 이후 10년 동안 기업을 성공적으로 영위하는 경우 상속세를 대폭적으로 탕감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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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국부 창출의 원천

해설

잘산다는 것은 결국 소득을 많이 올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국민소득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잘살고자 하는 것이다.

경기를 조절하고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도 펴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소득(국내총생산·GDP)이란 한 나라가 1년 동안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 합계로 정의된다.

우리나라 GDP는 세계 11위이며 이를 전 국민으로 나눈 1인당 GDP는 세계 46위 수준이다.

이러한 국민소득을 높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바로 기업이다.

은행 증권회사 등 금융회사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고 볼 때 소득을 창출하는 곳은 모두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은 우리가 잘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소득 창출의 원천인 것이다.

기업의 역할이 이처럼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기업에 대해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압축 경제성장하는 과정에서 일부 기업이 정치권에 로비를 하면서 특혜를 받거나 TV 드라마에 탈법 불법을 하는 기업인이 나쁜 역할로 나오는 사례 등이 이미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이 같은 반기업 정서를 우려하면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장수기업이 많지 않은 점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일본의 경우 100년 이상된 장수기업이 5만개나 달하며 이들이 일본 경제의 뿌리를 튼튼하게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장수기업이 많은 것은 바로 기업이 높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아버지의 사업을 승계받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정부도 가업(家業) 승계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데 올 10월부터는 5년 이상 사업을 지속하고 고용을 80% 이상 유지하는 비상장기업의 주식에 대해 상속세의 80%(종전에는 10%)를 감면해 줄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주식의 상속세율이 최고 60%에 달하고 있다.

상속세율이 높다보니 사업을 잘해 기업을 키운 사장일수록 상속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생 일궈놓은 가업을 후대에 떳떳하게 물려주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가가 부강해지려면 기업이 잘 되어야 하고 기업이 잘 되려면 기술이 축적되어야 한다.

오래된 기업일수록 축적된 기술로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부가가치도 많이 창출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잘하는 경영자들이 가업을 떳떳하게 물려줄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할 것이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