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소프트웨어) 없는 IT(정보기술)는? 치킨 빠진 호프집은? 고무줄 없는 팬티는? 계란 없는 오믈렛은? 역사의식 없는 인생은? 유머 없는 삶은? 뇌관 없는 폭탄은? 이런 식으로 끝없이 이어갈 수 있는 상황 설명에 들어맞는 표현이 하나 있다.

[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앙꼬 없는 찐빵'을 위한 변명
바로 '팥소 없는 찐빵'이다.

그런데 '팥소 없는 찐빵'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색하기만 한 게 영 편하지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여기 쓰인 '팥소'란 말이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다.

원래 흔히 쓰던 말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문제는 이 '앙꼬'가 제대로 된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말이라는 데 있다.

'앙꼬'는 일본말 'あんこ'를 읽은 것인데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를 '떡이나 빵의 안에 든 팥'이라 풀고,순화어로 '팥소'를 쓸 것을 제시했다.

그러면 '팥소'는 뭘까.

이는 '팥을 삶아서 으깨거나 갈아서 만든 것'을 말한다.

떡이나 빵 따위의 속으로 넣는다.

팥소가 우리에게 어색한 까닭은 대개의 경우 여기 쓰인 '소'를 사람들이 낯설어 하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것이다.

순우리말 '소'는 송편이나 만두 따위를 만들 때,맛을 더하기 위해 속에 넣는 여러 가지 재료를 말한다.

송편을 만들 때는 팥이나 콩,깨,대추,밤 따위를 사용하고,만두에는 고기, 두부, 김치, 숙주나물 따위를 다진 뒤 양념을 쳐서 한데 버무려 만든다.

또 통김치나 오이소박이 따위의 속에 넣는 여러 가지 고명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때 만두나 김치 속에 넣는 소는 '만두소' '김칫소'라 하는데 이는 한 단어가 된 말이다.

실생활에선 이를 '만두속' '김칫속'이라고 더 많이 알고 쓰기도 하지만 이런 단어는 없고,굳이 쓰려면 '만두 속' '김치 속'과 같이 띄어 써야 한다.

요즘은 '고명'이란 말도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다.

고명이란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맛을 더하기 위해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떡국에 고명을 얹다' '잣을 고명으로 뿌리다'처럼 쓰인다.

고명을 한자어인 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순우리말이다.

고명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도 '고명딸'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때 쓰인 고명이 같은 말이다.

음식에 고명이 없으면 아무리 맛이 있어도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진 것 같이 느껴지듯이,집안에 아들이 아무리 많아도 딸이 하나 없으면 허전한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고명딸은 '아들 많은 집의 외딸'을 가리킨다.

특히 이 개념은 정확히 알아두어야 한다.

고명딸을 잘못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누군가가 "무남독녀라 금지옥엽같이 키운 우리 고명딸인데…"라고 한다면 그는 고명딸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고 쓴 것이다.

이 말은 "그 집 막내는 고명딸로 태어나 오빠들 틈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처럼 쓰인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지만,아무튼 앙꼬를 어렵게나마 '팥소'로 순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팥소가 우리 말글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다 보니 '팥소 없는 찐빵'은 여전히 '앙꼬 없는 찐빵'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앙꼬 없는 찐빵'은 하나의 관용구가 되다시피 해 쓰인다는 점도 이 말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게 하는 부분이다.

관용구란 '두 개 이상의 단어로 이뤄져 그 단어들의 의미만으로는 전체의 의미를 알 수 없는,특수한 의미를 나타내는 어구(語句)'를 말한다.

가령 '발이 넓다'라고 하면 '사교적이어서 아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손이 크다'란 말은 '씀씀이가 후하고 크다'란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가 '앙꼬 없는 찐빵'을 말할 때도 글자 그대로의 찐빵을 뜻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이나 생각,현상 등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알짜배기가 빠진 상태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이는 관용구 용법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단순히 일본말이라는 점 때문에 굳이 우리 입에 익은 '앙꼬 없는 찐빵'을 버려야 할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앙꼬 없는 찐빵'을 억지로 '팥소 없는 찐빵'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김빠진 사이다' 같아 영 말맛이 안 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