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 한국경제신문 7월17일자 A38면

사람이 홀로 있을 땐 똑똑하고 이성적이지만, 군중에 휩쓸리면 분별력을 잃기 일쑤다.

그 집단최면의 결과는 비극이다.

중세(中世) 유럽의 마녀사냥 같은 수많은 실증적 사례를 들어 그런 터무니없는 일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설명한 것이 찰스 맥케이가 쓴 '대중의 미망과 광기'다.

이미 160여년 전에 쓰여진 이 고전은 사람들의 무지(無知)를 이용한 기만과 선동을 경계한다.

그럼에도 집단적 광기는 동서고금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표출된다.

문명과 지식,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오히려 더 하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모은 신(神)적 존재이지만 '아주 멍청한 신'(움베르토 에코)인 인터넷의 지배력에 모두가 사로잡힌 까닭이다.

인터넷의 익명성 신속성 광역성은 한마디의 말을 수천 수만가지 소문으로 확대재생산시킨다.

무서운 것은, 도무지 참과 거짓을 분별할 생각과 판단의 시간적 여유마저도 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인터넷의 바로 그 멍청함이다

어떤 현상이 '참'이라는 정의(定義)가 성립되려면 증거들로 입증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가설(假說)일 뿐이다.

그 증명의 학문이 과학이다.

과학은 존재하는 현상을 동원 가능한 방법으로 검증해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고, 그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미래를 보편적인 지식으로 삼는 도구다.

물론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과학이 진리 탐구의 학문으로 가장 유용한 것은 실재(實在)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없다면 가설로서의 가치조차도 없는 아예 거짓이다.

그래서 PD수첩이 제기한 '미국 소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설정은 어이없게도 처음부터 날조된 거짓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현상(現象)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없는 현상까지 억지로 만들어 냈다.

온 국민에 수도 없이 보여진 충격적 장면부터가 그렇다.

주저앉는 다우너(downer) 소는 동물 학대를 고발하는 동영상이었지 광우병에 걸린 소와 아예 관련성이 없었다.

인간광우병(vCJV)의 피해자인 것처럼 설명됐던 아레사 빈슨의 사인(死因)은 vCJV가 아니었음이 판명됐다.

그간 미국에서 보고된 인간광우병 발병 사례 3명 또한 미국 소가 아닌 영국 소의 문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PD수첩은 '다우너 소는 광우병 소다.

아레사 빈슨은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

그래서 위험한 미국 소를 먹으면 안된다'고 전개했다.

하지만 그런 설정을 어느 하나라도 설명하고 입증해줄 증거(fact)는 어디에도 없었다.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만 나열해 인간광우병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공포만 조장했던 것이다.

이게 온 나라가 뒤집힌 광우병 소동의 실체적 진실이다.

한마디로 '미국 소=미친 소'의 설정은 거짓이었다는 얘기다.

진실이 이러한데, 엊그제 'PD수첩 왜곡논란, 그 진실을 말한다'는 거짓에 대한 고백(告白)은커녕, 또다시 번역 잘못, 말 실수, 단순 착오라고 발뺌했다.

진실의 언저리에도 가지 못한 참으로 비겁한 변명이다.

그 거짓을 숨겨 놓고는 이제 논란의 핵심에서 비켜간 언론 탄압을 얘기하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아무리 그럴싸한 얘기라도 사실관계조차 없는 날조와 왜곡, 억측(臆測)까지 언론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 몇달 동안 온 국민이 그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거짓말과 사기극에 놀아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게다가 그 기만적 거짓에는 애써 눈감은 채 끝없이 촛불을 흔들라고 부추기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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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항상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보도해야

해설

언론은 항상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보도해야 한다.

객관적인 사실이냐 아니냐는 그 사실이 실제 발생했느냐의 여부로 판단한다.

오로지 실제 발생한 사실만을 근거로 보도하는 것이 보도의 ABC다.

언론에게 객관 보도 기준이 요구되는 것은 사회 현상에 대한 언론인의 자의적 해석을 막기 위한 것이다.

또 객관적 사실은 진리 탐구의 학문인 과학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로 간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추창근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은 PD수첩이 제기한 '미국 소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객관적 사실을 전제로 하지 않아 거짓으로 밖에 볼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현상(現象)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날조라는 것이다.

PD수첩은 예를 들어 고 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이 인간광우병일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까운데도 마치 인간광우병에 걸린 것처럼 보도했다.

거기다가 그의 어머니가 슬퍼하는 장면까지 내 보내 많은 시청자들은 광우병에 걸리면 우리 아이도 저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MBC PD수첩은 한국 PD 저널리즘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PD 저널리즘은 기자들이 출입처 위주로 취재하는 관행상 여러 부문에서 걸쳐 일어나는 현상을 종합 심층 취재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나아가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객관적인 사실을 중시하는 기존 기자 저널리즘과 달리 어떤 주제를 미리 설정하고 그 주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 나가는 게 특징이다.

PD 저널리즘은 사회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고 사람들의 정의감을 자극하면서 인기를 누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사실을 소홀히 해 공정보도 기준을 위반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이런 사정으로 PD 저널리즘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객관 보도 기준에 따른다면 어떻게 보도해야 할까.

우선 객관적인 사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즉 1997년 이후 미국에서 인간 광우병 환자가 한명도 발병하지 않았으므로 고 아레사 빈슨은 사망 원인이 인간 광우병인지 확인한 후에 방송해야 옳다.

만일 빈슨의 어머니가 딸의 병명이 인간 광우병(VCJD)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인간 광우병 환자가 미국에서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감안해 전문가의 코멘트를 넣어 시청자들이 공포감에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슨이 인간 광우병에 걸렸을지 모른다고 자막에 내보내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미리 정해 놓은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영상물을 조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