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떼기'와 '밭뙈기'에 농사지어 '밭떼기'로 팔다

'양측이 접선 장소로 택한 곳은 예상 외로 일반인들의 눈에 띄는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이었다.

A사는 150억원의 현금을 2억4000만원짜리 상자 62개와 1억2000만원짜리 상자 1개 등 63개의 상자에 나눠 담았다.

A사는 어둠이 깔린 오후 8시40분쯤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 주차장에 탑차를 주차하고 탑차의 열쇠와 화물칸 키를 B씨에게 넘겼다.

돈을 실은 탑차를 인수한 B씨는 화물차를 몰고 돈을 약속된 장소에 내린 뒤 접선장소에 차를 다시 갖다놓는 수법으로 차를 되돌려 줬다.'

첩보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얘기는 속칭 '차떼기 사건'의 일부이다.

2003년 말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결과로 전모가 밝혀진 이 사건으로 이후 우리말 '차떼기'는 본의 아니게 정치적 오명을 뒤집어쓰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원래 '차떼기'란 '화물차 한 대분의 상품을 한꺼번에 사들이는 일'을 가리키는 장사 용어다.

'그는 배추를 차떼기로 사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팔았다'처럼 쓰인다.

1992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사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단어로 써오던 말이다.

'차떼기' 이전에 '밭떼기'란 말이 있는데,이는 '밭에서 나는 작물을 밭에 나 있는 채로 몽땅 사는 일'을 뜻한다.

하지만 '떼기' 자체는 사전에 오른 말이 아니다.

'어떤 분량 몽땅'의 뜻을 나타내는 '떼기'는 단독으로 한 단어를 이루는 말이라기보다 동사 '떼다'에 명사 구실을 하게 해주는 '-기'가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된다.

'밭떼기'와 비슷한 말로 '밭뙈기'가 있다.

이는 '얼마 되지 않는 조그마한 밭'을 나타낸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에 농사를 짓고 있다' 같은 게 용례다.

이때 '뙈기'는 '한 구획을 이루고 있는 땅'을 나타낸다.

'한 뙈기의 논/밭뙈기나 부쳐 먹는…'처럼 쓰인다.

이 외에도 우리말에서는 '-때기' '-데기' '-뜨기'가 미세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그 쓰임새가 각기 다르다.

이들은 모두 명사 뒤에 붙는 접미사인데,우선 '-때기'는 '비하'의 뜻을 더한다.

'배때기,귀때기,뺨때기,볼때기,잠바때기' 같은 게 있다.

'-데기'는 어떤 말 뒤에 붙어 그와 관련된 일 또는 성질을 가진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부엌데기,새침데기,소박데기,심술데기'처럼 쓰인다.

'-뜨기'는 어떤 성질을 가진 사람을 얕잡아 가리키는 말이다.

'촌뜨기,시골뜨기,사팔뜨기' 같은 게 그 용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