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생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

근대 민주정치의 모델이 된 영국 의회(parliament)는 그 어원이 프랑스어의 '말하다(parler)'라는 동사에서 파생됐듯 본래부터 소통의 장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귀족들만의 회의체로 존재하다가 영화 '브레이브하트'에서 사악한 권력욕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에드워드 1세 때에 이르러 지방의 평민대표들까지 참여하게 됐다.

왕이 평민들을 불러들인 것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그리고 프랑스와 전면전을 벌이면서 엄청난 군비가 필요했고 그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돈을 거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국왕의 징세를 돕기 위해 존재하던 중세 영국의 의회는 근대에 접어들어 경제,사회 등 국민의 모든 생활에 걸친 입법과 정책 토론 기능을 갖게 되면서 국정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됐다.

의회의 역할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은 수백만,수천만을 헤아리는 국민 모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탄생하면서 간접민주정치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의회는 국정을 담당하는 행정부의 정책 의지와 다양한 국민의 뜻이 만나는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공식적인 접점(point of contact)으로 기능하게 됐다.

요즈음 새삼스레 '소통'이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쇠고기 문제로 연일 촛불집회가 열리고 정부의 졸속협상이 국민의 안전을 외면했다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비롯된 일이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타결이 '경제 살리기'를 위해 아무리 긴요했다 하더라도 국민의 뜻을 묻는 일이 우선해야 했다.

전면 재협상이 자칫 미국과의 관계뿐 아니라 국제 사회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고 이는 곧 무역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협상에서 무엇을 얻을 때에는 다른 무언가를 대가로 주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모르는 바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국민과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소통이 마비된 가장 큰 이유는 정작 그 기능을 담당해야 할 국회가 오늘의 비상 정국에서 완전히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대신 촛불집회라는 대중집회의 정치적 역할이 급부상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고 또한 거리 집회에 직접 참여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인터넷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

의회라는 공식적 소통장치의 부재 상태에서 촛불집회가 수행하고 있는 긍정적 역할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터넷 세대의 의견이 국민 전체의 의견을 반영한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으며 그보다도 자칫 우발적인 폭력사태라도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 운영을 지적하며 이것이 그의 오랜 CEO 경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즉 대통령이 소통의 부재를 제공한 당사자라는 주장이다.

설사 그런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정치가 개인의 성격이나 리더십 스타일에 의해 좌우되는 수준이어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성숙한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드러났듯이 우리 정치에는 아직도 시스템의 지배가 확립되지 못했고 모든 문제들은 대통령 개인의 국정 운영 스타일 탓으로 돌려지기 일쑤다.

시스템의 지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국회가 우선 정상화돼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국회는 민주주의의 핵심이고 다양한 의견이 수렴되고 토론되고 반영되는 소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여당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본래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며,야당도 이제 거리의 정치는 국민들에게 맡겨두고 국회 정상화에 앞장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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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간 의원들, 국회에서 의사 소통 노력부터

해설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신해서 정치를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들의 의견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우선 선거권만 하더라도 18세 이상에게만 주어지고 선거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유권자가 원하는 대로 국회의원이 법을 만들지 않은 경우도 많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을 읽더라도 의견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이런 저런 의견을 모두 다 정책에 반영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국민들이 의사를 직접 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불만을 가진 국민들이 거리로 뛰어 나와 직접 행동에 나설 때 국회의원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 것인가?

시위대와 함께 거리로 뛰쳐 나와 구호를 외쳐야 하는가?

다산칼럼의 허구생 서강대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후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촛불 시위의 원인을 국민과 정부간 소통의 부재 때문으로 보고 공식적인 소통 창구인 의회의 활성화를 촉구하고 있다.

국회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시민들이 길거리로 뛰처 나오고 있으므로 거리로 나온 국회의원들은 국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외 집회가 확산될수록 오히려 국회에서 소통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민의를 파악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지금 거리로 나간 국회의원들을 보면 민의를 파악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에 편승해서 정치 기반을 넓히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최근 촛불 집회는 많은 참가자들이 평화를 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때 쇠파이프와 몽둥이가 동원되는 등 폭력이 난무했다.

그럼에도 시위에 나선 의원들이 비폭력을 외치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폭력은 시위의 당위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비열한, 경계해야할 행동이다.

이는 시위 참가 당사자들은 물론 국가의 이미지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대한민국은 외국인들에게 역동적인 나라, 다이나믹 코리아로 해외에 알려져 있다.

역동적이란 정체되지 않고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한다는 뉘앙스를 주지만 자칫 원칙이 없고 무질서하다는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다.

시위 현장의 쇠파이프와 몽둥이는 대한민국을 무질서한 나라로 비쳐지게 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거리로 나서기 전에 국회에서 건전한 시위 문화가 조성될 수 있는 방안부터 논의해야할 것이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