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에게서 소년에게'
[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詩語에 담긴 문법코드 ①
"텨-ㄹ썩,텨-ㄹ썩,텨ㄱ,쏴아/따린다,부슨다,문허바린다/태산(泰山) 갓흔 놉흔 뫼,집채 갓흔 바윗돌이나/요것이 무어야,요게 무어야/나의 큰힘 아나냐,모르나냐,호통까지 하면서/따린다,부슨다,문허 바린다/텨-ㄹ썩,텨-ㄹ썩,텨ㄱ,튜르릉,콱"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도입부이다.

최남선이 1908년 <소년>지를 창간하면서 권두에 실은 작품이다.

이를 기념해 올해 현대시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잇따라 열리거나 준비 중에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에 앞서 우리 문학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 '혈의 누'이다.

1906년 이인직이 <만세보>에 연재한 이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된다.

그런데 '해에게서 소년에게'나 '혈의 누'가 널리 알려진 기념비적 작품임에 비해 각각의 제목에 담겨 있는 문법적 '코드'는 그리 잘 알려진 것 같지 않다.

우리말 연구가들 일각에서는 일찍부터 두 작품의 제목에 어법적 결함이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바로 '해에게서…'의 '-에게서' 부분과 '혈의 누'의 조사 '-의'를 지적한 것이다.

물론 시어를 단순히 문법적 잣대로 잴 수는 없는 일이지만,이를테면 그런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풀어 쓰면 '바다에게서 소년에게'이다.

대개는 사람들이 의심 없이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익히고 대해왔기 때문에 간과한 것이겠지만,실은 '해에게서'란 표현은 어색하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다.

이를 풀어 쓴 '바다에게서 소년에게'를 보면 이 지적은 좀 더 쉽게 드러난다.

조사 '-에게서'는 (사람이나 동물 따위의 명사 뒤에 붙어)어떤 행동의 출발점이나 비롯되는 대상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누구에게서 나온 이야기냐?'처럼 쓰인다.

그런데 이 말의 용법에는 전제가 따라 붙는다.

'사람이나 동물 같은 유정체'에 쓰인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무정체에 쓰이는 또 다른 조사는 '-에서'이다.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회사에서 직원에게' 같은 경우가 그것이다.

두 말을 서로 치환해 보면 각각의 문장이 매우 어색해진다는 데서 그 쓰임새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무정체이든 유정체이든 두루 쓸 수 있는 말에는 '-'로부터'가 있다.

용례의 '-에게서'나 '-에서' 자리에 '-로부터'를 대입해 보면 다 같이 무리 없게 쓰인다.

'해에게서 소년에게'에 쓰인 '-에게서' 자리엔 통상적으로 주격 조사 '-가'가 와야 자연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가령 '-에서'의 쓰임인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문구는 '학교가 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할 때 더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때의 '-에서'는 주격으로 쓰인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해에게서 소년에게'도 순수하게 문법적으로만 살피면 '해가 소년에게'라 할 때 가장 자연스러운 우리 말투가 된다는 것이다.

이 시는 비록 '해(海)'를 의인화해 시적 효과를 얻고는 있으나 우리의 언어습관으로는 적어도 '해로부터 소년에게'라든지,'해에서 소년에게'라고 하는 표현이 좀 더 편한 게 사실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