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선 '표시', 북에선 '표식'

"종로에서 길 위의 노란 동그라미를 보면 지적측량 기준점으로 생각하면 된다.

서울 종로구는 30일까지 측량 기준이 되는 지적삼각점 등에 '시각화 보호표식'을 설치해 지적측량에 활용키로 했다."

최근 일부 신문에 보도된 기사의 한 대목이다.

평범한 문장으로 보이지만 유심히 보면 좀 이상한 단어가 눈에 띈다.

바로 '표식'이다.

한자로 쓰면 '標識'인데,한자를 알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도 이를 '표식'으로 읽는 경우가 꽤 있다.

하지만 우리말에서 어떠한 용도로라도 이 단어를 '표식'이라 읽는 경우는 없다.

오로지 '표지'의 잘못일 뿐이다.

'표지'란 '(무엇을) 알리거나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눈에 잘 띄도록 해 놓은 표시'이다.

'무언가를 나타내기 위해 표시해 놓은 것, 즉 대상물(object)'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교통표지, 공중전화표지, 표지등(야간에 운항하는 선박 비행기 등이 그 위치를 표시하는 등), 도로표지판, 안내표지판' 따위로 쓰인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를 '표식'으로 읽는다.

북에서는 오히려 이 단어는 언제나 '표식'이지, '표지'라고 하지 않는다.

한자 識은 '적다, 표하다'를 뜻할 땐 '지'로 읽고 '알다'의 뜻으로 쓸 때는 '식'으로 구별해 읽는 것인데, 같은 한자말을 남과 북이 표지와 표식으로 달리 읽고 적는 게 특이하다.

'표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로 '표시'가 있는데 두 말의 차이를 헷갈려 하는 이들도 많다.

'표시(標示)'는 '(어떤 사실이나 내용을) 문자나 기호, 도형 등으로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행위'개념에 가깝다.

'경계 표시, 원산지 표시'처럼 쓰인다.

실제로 표시와 표지는 의미상 거의 비슷하게 쓰이기도 한다.

'가격 표시'란 말이 있듯이 '가격 표시판'이란 말도 자연스럽게 쓰인다.

더구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전통적으로 쓰이던 '표지판'이란 말 외에도 '표시판'이란 말도 올려놓아, 이를 '표지판'과 비슷한 말로 처리했다.

또 용례로는 '방향 표시판,도로 교통 안내표시판' 따위를 들어, '방향표지판, 도로교통 안내표지판'과 섞바꿔 쓸 수 있게끔 해 놨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의 풀이는 두 말을 좀더 쉽게 구별하게 한다.

북에서는 '표지'(실제로는 '표식'이란 올림말로 돼 있지만)를 '어떤 대상을 딴 대상과 구별하기 위해 그것에 표를 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마크'와 같은 말로 본다.

이에 비해 '표시'는 '표지로써 나타내 보이는 것'을 말한다.

가령 "밑줄을 그어 표시를 해뒀다"라고 할 때 그 행위는 '표시'하는 것이고 그은 밑줄 자체는 '표지'가 된다.

즉 '표시마크가 곧 표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