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령과 방년, 그리고 약관

#20세기 초 그들 사이에는 계약결혼과 자유연애가 공존했다.

그러면서도 평생 해로한 두 사람, 그들은 바로 실존주의 거장인 사르트르와 페미니즘의 대명사인 보부아르 부부다.

세기의 사랑으로도 유명한 그들이 만난 것은 사르트르가 24세, 보부아르가 21세 때였다.

[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우리말에도 性이 있다 ②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못지않은, 아니 그들을 뺨치는 파란만장한 애정행각을 벌인 우리의 성춘향과 이몽룡이 남원에서 만난 것은 훨씬 어린, 두 사람 다 16세 때였다.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이뇨?"

"성은 성(成)가이옵고 연세는 십육 세로소이다."

"허허 그 말 반갑도다. 네 연세 들어보니 나와 동갑 이팔이라."

춘향전의 한 대목이다.

'이팔'은 '이팔청춘(二八靑春)'과 같은 말로 16세를 가리킨다.

보부아르나 소설 속의 춘향이는 모두 '방년'의 나이에 각각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예나 지금이나 20세를 전후한 한창때는 꽃다운 나이다.

그래서 이 나이 때를 '방년(芳年)'이라 한다('芳'은 '꽃다울 방'자).

국어사전에서는 '방년 십팔 세/방년 스물의 꽃다운 나이/방년의 처녀' 따위를 용례로 올려놓아 '방년'이 딱히 특정한 나이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 20세 전후의 한창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다만 '방년'을 꼭 여자에게만 써야 하느냐 하는 점은 다소 생각할 여지가 있다.

'꽃답다'라는 말이 '꽃다운 청춘' '꽃다운 청년'이란 표현에서는 남자에게도 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년'을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만 본다면 이는 남녀 공통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언어관습이 '방년'이란 말을 주로 여자를 가리키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이를 남자의 경우에 쓰면 어색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묘령의 여인'이란 할 때의 '묘령(妙齡)'도 '방년'과 비슷한 말이다.

'묘(妙)'는 '묘하다, 예쁘다, 젊다'는 뜻의 글자다.

그러니 '묘령'은 글자 그대로 '가장 예쁜 나이'이다.

'방년'에서와 마찬가지로 20세 안팎일 때 여자가 가장 예쁠 때라는 점에서 자연스레 '묘령'도 20세 안팎의 나이를 뜻하는 말이 됐다.

이를 간혹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여자' 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여자'란 의미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 뜻을 잘못 알고 쓰는 것이다.

'방년'이나 '묘령'이 주로 여자에게 해당하는 것이라면 이에 대응하는 말로 남자에게 쓰는 말은 '약관'이다.

'약관(弱冠)'은 '예기(禮記)'에서 나온 말로, 사람이 태어나서 20세가 되면 약(弱)이라 하며 비로소 갓(冠)을 쓴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 말 역시 본래 20세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최근엔 '20대 혹은 그 전후의 젊은 나이'란 의미로 확대돼 폭넓게 쓰인다.

하지만 한자 의식이 흐려진 요즘 일부 사람들이 이 말을 남녀 공용으로 쓰기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직 어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여자가 갓을 쓰는 것은 무당밖에 없듯이 '약관'의 유래가 된 '갓을 쓰는' 의식은 남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