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향' 가득한 인도네시아…한국의 냄새는 어디로?
적도의 열대나라 인도네시아는 가히 냄새의 향연지다.
매연 냄새와 노동자의 땀 냄새,쓰레기 냄새,향신료 냄새,야자수 진액과 건물들의 녹아내린 시멘트 냄새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그 달콤하면서 기름지고 또 후텁지근하면서도 신비로운 아라비아의 향은 귀기가 느껴질 정도로 독특하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 첫발을 디디면 어지럽다.
수만가지 향이 뒤섞인 야릇한 냄새는 근원이 어디인지 알 수 없기에 미혹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16년을 살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에는 자연의 향이 짙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야자수와 온갖 기묘한 화초의 냄새는 느릿느릿 팔자로 걸어도 시간이 남을 것 같은 여유를 준다.
이 향내는 쉴 곳이 있을 것 같은 기대로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숲과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고 먼 곳으로 떠나게 만든다.
새로운 곳에서 색다른 사람과 만나면서 나는 천가지 이야기가 있는 아라비안나이트를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하였다.
이렇게 타국의 향에 익숙해진 나에게 언제부턴가 아련히 떠오르는 냄새가 있다.
그 냄새는 아주 친숙하고 원초적이어서 인도네시아의 향에 묻혀 잊혀질 때쯤 되면 다시 떠오른다.
젖먹이는 시력이 0.1도 되지 않아서 육안으로 엄마를 식별할 수 없다고 한다.
대신 젖냄새를 통해 엄마를 기억하고 애타게 찾으며 보챈다.
아기라도 자신의 삶의 근원이 되는 냄새를 기억한다.
나에게 한국의 냄새는 그런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동질감.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필연성을 제시해 주며 끝없이 나를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문득문득 인도네시아의 거리를 지나갈 때 한국에서 잠깐 맡아본 것 같은 냄새가 나면 나도 모르게 "야 지금 한국 냄새 나지 않냐?"라는 물음을 친구에게 던진다.
비행기로도 7시간 이상 떨어진 이곳에서 한국의 냄새가 날 리가 없는데도 젖먹이가 엄마 젖을 기억하듯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그 냄새를 찾기 위해 본능적으로 코를 움직인다. 나는 한국의 냄새를 할아버지 산소에서 처음 맡았다.
어린 나이에 뭐가 뭔지도 모른 채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우울한 마음보다는 처음 가보는 시골 나들이에 마냥 들떴다.
그 시절 놀러가듯이 따라간 할아버지 산소에서 나는 은은한 풀 내음에 취해 버렸다.
곧고 푸른 소나무의 냄새와 돌에서 나오는 단단한 냄새.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땅의 냄새와 무성한 푸성귀 냄새,단정하고 예의바른 양반의 냄새가 풍겼다.
그 냄새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는 것 같고 우리 조상들의 냄새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조상들이 자연 속에서 청렴결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최고의 낙으로 삼은 것도 그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2002 한·일 월드컵,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 열기와 함성,그리고 응원나온 시민들의 짙은 땀냄새를 맡으며 '한민족의 근성이 이런 것이구나' 실감하게 되었다.
나의 눈과 귀는 뜨겁게 타오르는 한민족의 붉은 색과 함성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유독 코만은 월드컵 분위기에 동요되지 않았다.
두 번째 방문한 한국에서 풀잎 향기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래의 한국 냄새는 오랫동안 가동시켜놓은 기계처럼 매스꺼워졌다.
한국 사회가 기계,공업화가 이뤄지면서 냄새 또한 그렇게 변해 버린 것이다.
냄새는 과열된 승부 근성과 빨리빨리 문화에 이미 녹아버려 한국인 생활패턴에 장단 맞추듯이 빠르게 섞이고 흩어지고 또 뭉쳐진다.
변화무쌍한 서양의 냄새는 본래 한국의 은은한 향내를 소멸시키고 있다.
왜 우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한국의 냄새를 방관하고 있는가!
할아버지 산소에서 맡았던 한국의 냄새는 이미 원시의 시금털털한 냄새로 취급되면서 사라져 버린거 같다.
진보와 발전을 위해 한국 땅에서 한국 냄새를 몰아내야 하는가?
한국의 냄새를 다시 되살리기에는 너무 늦었나?
산속에 홀로 핀 매화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고 그 향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의 냄새는 한순간에 서양의 냄새에 의해 쉽게 사라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은근하고도 따뜻한 정의 향기는 아직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다.
어느 고즈넉한 저녁, 주막에 앉아 하루의 고단함을 웃음과 막걸리로 채우며 달을 보고 시를 읊는 여유로운 향기.
그것이야말로 한국 사람이라면 가장 친숙해야 할 향기가 아닌가 싶다.
비록 지금은 잡힐 듯 말 듯 아련한 향기지만 우리의 노력이 보태진다면 한국의 향기는 다시 진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를 지속시킬 수 있다면 한국의 향기는 세계가 매혹되는 최고의 향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향수에 젖어 코를 벌름거린다.
그리고 코언저리에 남아 있는 일말의 한국냄새에 안심하고 미소 짓는다.
김성구 생글 통신원(인도네시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12년) ksg329@hanmail.net
매연 냄새와 노동자의 땀 냄새,쓰레기 냄새,향신료 냄새,야자수 진액과 건물들의 녹아내린 시멘트 냄새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그 달콤하면서 기름지고 또 후텁지근하면서도 신비로운 아라비아의 향은 귀기가 느껴질 정도로 독특하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 첫발을 디디면 어지럽다.
수만가지 향이 뒤섞인 야릇한 냄새는 근원이 어디인지 알 수 없기에 미혹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16년을 살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에는 자연의 향이 짙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야자수와 온갖 기묘한 화초의 냄새는 느릿느릿 팔자로 걸어도 시간이 남을 것 같은 여유를 준다.
이 향내는 쉴 곳이 있을 것 같은 기대로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숲과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고 먼 곳으로 떠나게 만든다.
새로운 곳에서 색다른 사람과 만나면서 나는 천가지 이야기가 있는 아라비안나이트를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하였다.
이렇게 타국의 향에 익숙해진 나에게 언제부턴가 아련히 떠오르는 냄새가 있다.
그 냄새는 아주 친숙하고 원초적이어서 인도네시아의 향에 묻혀 잊혀질 때쯤 되면 다시 떠오른다.
젖먹이는 시력이 0.1도 되지 않아서 육안으로 엄마를 식별할 수 없다고 한다.
대신 젖냄새를 통해 엄마를 기억하고 애타게 찾으며 보챈다.
아기라도 자신의 삶의 근원이 되는 냄새를 기억한다.
나에게 한국의 냄새는 그런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동질감.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필연성을 제시해 주며 끝없이 나를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문득문득 인도네시아의 거리를 지나갈 때 한국에서 잠깐 맡아본 것 같은 냄새가 나면 나도 모르게 "야 지금 한국 냄새 나지 않냐?"라는 물음을 친구에게 던진다.
비행기로도 7시간 이상 떨어진 이곳에서 한국의 냄새가 날 리가 없는데도 젖먹이가 엄마 젖을 기억하듯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그 냄새를 찾기 위해 본능적으로 코를 움직인다. 나는 한국의 냄새를 할아버지 산소에서 처음 맡았다.
어린 나이에 뭐가 뭔지도 모른 채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우울한 마음보다는 처음 가보는 시골 나들이에 마냥 들떴다.
그 시절 놀러가듯이 따라간 할아버지 산소에서 나는 은은한 풀 내음에 취해 버렸다.
곧고 푸른 소나무의 냄새와 돌에서 나오는 단단한 냄새.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땅의 냄새와 무성한 푸성귀 냄새,단정하고 예의바른 양반의 냄새가 풍겼다.
그 냄새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는 것 같고 우리 조상들의 냄새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조상들이 자연 속에서 청렴결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최고의 낙으로 삼은 것도 그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2002 한·일 월드컵,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 열기와 함성,그리고 응원나온 시민들의 짙은 땀냄새를 맡으며 '한민족의 근성이 이런 것이구나' 실감하게 되었다.
나의 눈과 귀는 뜨겁게 타오르는 한민족의 붉은 색과 함성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유독 코만은 월드컵 분위기에 동요되지 않았다.
두 번째 방문한 한국에서 풀잎 향기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래의 한국 냄새는 오랫동안 가동시켜놓은 기계처럼 매스꺼워졌다.
한국 사회가 기계,공업화가 이뤄지면서 냄새 또한 그렇게 변해 버린 것이다.
냄새는 과열된 승부 근성과 빨리빨리 문화에 이미 녹아버려 한국인 생활패턴에 장단 맞추듯이 빠르게 섞이고 흩어지고 또 뭉쳐진다.
변화무쌍한 서양의 냄새는 본래 한국의 은은한 향내를 소멸시키고 있다.
왜 우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한국의 냄새를 방관하고 있는가!
할아버지 산소에서 맡았던 한국의 냄새는 이미 원시의 시금털털한 냄새로 취급되면서 사라져 버린거 같다.
진보와 발전을 위해 한국 땅에서 한국 냄새를 몰아내야 하는가?
한국의 냄새를 다시 되살리기에는 너무 늦었나?
산속에 홀로 핀 매화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고 그 향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의 냄새는 한순간에 서양의 냄새에 의해 쉽게 사라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은근하고도 따뜻한 정의 향기는 아직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다.
어느 고즈넉한 저녁, 주막에 앉아 하루의 고단함을 웃음과 막걸리로 채우며 달을 보고 시를 읊는 여유로운 향기.
그것이야말로 한국 사람이라면 가장 친숙해야 할 향기가 아닌가 싶다.
비록 지금은 잡힐 듯 말 듯 아련한 향기지만 우리의 노력이 보태진다면 한국의 향기는 다시 진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를 지속시킬 수 있다면 한국의 향기는 세계가 매혹되는 최고의 향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향수에 젖어 코를 벌름거린다.
그리고 코언저리에 남아 있는 일말의 한국냄새에 안심하고 미소 짓는다.
김성구 생글 통신원(인도네시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12년) ksg32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