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중등교육의 힘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50) 빗살무늬토기가 뭔데? <끝>
사진1은 100여년 전 외국인의 카메라에 담긴 조선시대 보부상의 모습이다.

학생들에게 사진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당시 사회의 특징에 대해 무엇이든 써보라고 해본다.

학생들은 책상 위의 원고지가 아니라 강사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앉아 있다.

'조선후기 상업의 발달로 지방마다 장시가 번성했고 특산물의 생산과 유통이 활발해졌다.'

이런 거창한 첫줄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 첫줄도 제 것이 아니다.

보부상과 관련된 국사교과서의 내용이다.

사진2를 보여주고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학생들은 '빗살무늬 토기'라고 바로 대답한다.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물어도 다들 아신다.

전공과목과 상관이 없다.

아마 종로나 명동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사진을 보여줘도 정답을 쉽게 들을 수 있을 테다.

정답을 맞혔다고 의기양양해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묻는다.

"빗살무늬토기가 뭐야?"

학생들은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대답한다.

"저거요."

학생들은 키득거리며 웃지만 강사는 정색을 하며 다시 묻는다.

"그럼 이 사진은 뭐야?"

"빗살무늬 토기요…."

사용은 커녕 한 번도 실물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다는 이유로 이름을 알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지 수십년이 지났는 데도 말이다.

필자는 이를 '대한민국 중등교육의 힘'이라고 부른다.

⊙ 학자들의 사고 습관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50) 빗살무늬토기가 뭔데? <끝>
그림3과 그림4는 학자들이 발견한 공룡의 송곳니와 이를 토대로 그린 공룡의 모습이다.

어려서부터 공룡딱지를 모으고 이름을 외우는 아이들은 공룡의 습성과 분포지역, 그리고 생긴 모습에 대한 지식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학자들이 자신있게 제시하는 초라한 증거를 눈으로 확인하면 놀랄 수밖에 없다.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근사한 공룡의 골격은 뭐냐고?

이빨 하나로 학자들이 추론한 상상의 산물이다.

블랙홀은 빛조차도 외부로 내보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의 내부 모습을 추론한다.

이때 스티븐 호킹 박사가 사용하는 지적능력은 일종의 상상력이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블랙홀 내부를 상상해서 글로 썼다고 해보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그것이나 이문열씨의 그것이나 상상력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스티븐 호킹 박사가 작성한 글은 사이언스나 네이처지 같은 명망있는 과학저널에 실리지만 이문열씨의 상상은 그런 과학 학술지에 실릴 수 없다.

학술지에도 실리고 동료 과학자들에 의해 지지되거나 논박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상상임에도 불구하고 진위여부가 가려지는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특별히 시스템적 상상력이라고 부른다.

시스템적 상상력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증거로부터 추론된다.

추론의 단계마다 과학적 법칙의 도움을 받는다.

추론된 가설은 또 다른 증거에 의해 논박될 수 있는 구조로 표현된다.

가상의 사례를 들어보자.

공룡학자가 공룡서식지에서 송곳니를 발견한다.

송곳니를 발견했다면 육식공룡으로 추론하는 게 자연스럽다.

육식공룡이라면 크기가 어느 정도 제한된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도 육식인 사자는 초식동물인 기린이나 코끼리보다 작다.

심지어는 먹잇감인 얼룩말이나 물소보다도 작다.

동물들 역시 물리학의 기본법칙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F=MA라는 유명한 힘의 공식은 (가)속도와 질량이 반비례 관계임을 말해준다.

육식공룡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빨라야 하기 때문에 커서는 곤란하다.

학자는 증거와 과학적 법칙을 이용해 공룡의 생김새와 크기에 대해 사실에 가깝게 추론할 수 있고 이런 추론은 더 나은 설명이 없는 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다른 학자에 의해 그 공룡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는데 크기가 매우 컸다면 앞서 세운 가설은 무너진다.

그렇다면 육식공룡이 아닐까?

송곳니와 큰 몸집은 언뜻 모순된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런 모순을 이용해 더 나은 가설로 나아간다.

이 공룡은 빨리 달릴 수 없는 피식자를 먹었다.

즉 시체나 썩은 고기를 주로 먹는 공룡이었다는 새로운 이론이 제시된다.

⊙ 사진 한 장의 힘

송곳니 하나로 공룡의 모습과 습성까지 추론해야 하는 공룡학자들에게는 보부상 사진 한 장을 들고 있는 역사학자들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이 한 장은 조선사회를 기록영화처럼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등짐장수의 짐이 항아리와 같은 생필품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당시 생필품의 가격을 알 수 있다.

무거운 생필품을 사람이 들고 팔러 다녔다는 것은 노동 가치에 비해 생필품의 가격이 비쌌다는 뜻이다.

1960~1970년대에도 무거운 전축이나 TV를 들고 다니며 파는 상인들이 서울에 있었다.

인건비에 비해 가전제품의 가격이 비쌌기에 가능했던 유통구조였다.

인건비가 비싼 오늘날이라면 도무지 수지맞지 않는 일이다.

학생들은 아무생각 없이 보부상을 상업의 발달과 연결시키지만 사진은 오히려 상업이 전반적으로 낙후되었다고 증언한다.

물론 교과서는 전시대와 비교해서 발달하고 있다고 해석하지만 학생들은 '보부상=상업의 발달'로 단순하게 암기하기에 사고가 나아가지 못하고 엉켜버린다.

또 전국을 누빈 상인들이 수레를 이용하지 않고 동물보다 더 많은 짐을 져 날랐다는 건 도로나 다리 같은 사회의 기간설비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걸 암시한다.

역사적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제1의 항구라 할 수 있는 제물포에서 서울까지 오는 길도 좁았고 간혹 끊어져 논두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또 한강을 포함한 주요 하천에 상시적으로 설치된 교각이 거의 없었다.

당시 가장 저렴하면서도 안정적인 운송수단이 사람이었다는 걸 사진이 설명해주고 있다.

보부상들은 매우 조직적으로 활동했다.

조직의 보호가 없다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웠을 것이다.

보부상들의 업무 특성과 이들의 조직력은 초보적인 수준의 금융업을 발달시켰다.

당시 조선의 화폐였던 엽전은 가치에 비해 무거웠다.

웬만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지게로 돈을 날라야 했을 정도다.

힘들게 지고 간 물건을 엽전으로 받으면 물건을 싣고 돌아갈 수가 없다.

이들은 물건을 납입한 증서,즉 어음을 유통시킬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지방관이 중앙에 세금을 올려 보낼 때도 보부상 조직의 금융능력을 이용했다고 한다.

관리가 상인에게 돈을 주면 상인은 그 돈으로 지역 특산물을 구입해 서울에 올라가 되판다.

물건을 팔아 번 돈으로 중앙정부에 납입하고 나면 이익이 남았다.

⊙ 정말로 안다는 거

빗살무늬토기의 사진을 걸어놓은 교실에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한국의 고등학생들을 가둔다.

A4용지 한 장을 주고 앞뒤로 가득 채우고 나가라고 한다면?

미국과 프랑스의 교실에서 벌어질 일은 모르겠지만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결국 굶어죽고 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빗살무늬토기라는 이름밖에는 적어 넣을 말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무언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쓰도록 훈련받은 외국의 우수한 학생들은 비록 빗살무늬토기라는 이름을 맞히지는 못해도 이야기를 쏟아낸다.

저걸 만든 사람들의 의도와 형편, 그리고 물건이 사용되면서 바뀐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의 모습을 상상한다.

또 왜 끝이 뾰족한 그릇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가설을 세워본다.

언제 어디서나 PDA 하나만 있으면 최고 최신의 정보에 접속할 수 있다는 유비쿼터스 시대.

과연 빗살무늬토기라는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정보화 시대는 안다는 것의 전제와 의미를 바꾸어 버렸다.

대학의 논술 문제가 학교 교육에 던지는 과제는 '도대체 네가 안다는 그것이 정말 아는 것인가?'라는 도발에 가깝다.

골든벨의 '명예의 전당'에서 이제 명예를 진기함 혹은 기괴함으로 바꿔 불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 연재를 마치며

연재를 시작하고 1년이 지났다.

간혹 반응을 보이는 학생이나 선생님들이 계셨다.

독자가 아예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봐야 할 책과 쌓아두어야 할 지식이 많은 학생과 선생님들의 부담을 늘리고 싶지는 않았다.

50호 속에 담긴 정보나 지식은 양념일 뿐이다.

마중물은 사안을 꿰뚫는 이야기를 엮어 글로 풀어내는 과정 그 자체에 대한 글이었다.

그러면서도 논제는 이렇게 파악하고 글은 저렇게 써야 한다는 직접적인 설명은 피하려고 했다.

이미 그런 강의가 넘쳐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법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이 정말 생각하고 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는 그런 형식으로는 도저히 재미있는 글을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자로서는 나름대로 귀한 시간인데 조금이라도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독자가 많지 않았다는 말은 의도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리라.

필자의 판단으로는 청소년 잡지를 통틀어 가장 유익한 생글생글에 파격적으로 지면을 허락해주신 정규재 소장님께 감사드린다.

거의 1년 동안 졸고를 바로잡아주시다 승진해 떠나신 오형규 부장님께도 감사드린다.

늘 넉넉한 마음으로 격려해주신 박주병 부장님과 사진과 글을 배치하느라 애써주신 이철민 기자에게도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그간 마중물 연재를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