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알면 말이 보인다

[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역임'과 '금도' 그 오용의 역사
"1988년 르노그룹에 입사한 장 마리 위르티제 회장은 2006년 2월부터 르노삼성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구린 데가 있으니까 배후설이니 뭐니 하는 것 아니냐. 금도를 넘어서고 있다."

주한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는 얼마 전 연례총회를 열고 위르티제 르노삼성 대표를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다.

누군가 새로운 직위에 오르면 그를 소개하는 말 가운데 '역임'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는 어딘지 어색하다.

'2006년 2월부터 르노삼성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아마도 '역임'이란 '힘써 맡고 있다' 정도를 나타내는 뜻인가?

지난해에는 정치권의 '금도' 공방이 언론에서 화제였다.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에 앞서 후보 검증으로 정치권에서 티격태격할 때 서로 '금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상대방을 공격한 것.

당시 그들은 피차간에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섰다는 뜻으로 이 말을 한 것일까?

아쉽게도 우리말에는 그렇게 쓰이는 '역임'이나 '금도'는 없다.

역임(歷任)은 '지낼 력,맡길 임'이다.

사전에서는 이 말을 '여러 직위를 두루 거쳐 지냄'으로 풀이하고 있다.

'정부 요직을 역임하다,그는 주요 관직을 역임한 매우 청렴한 사람이다,그는 신문사에서 편집국장,주필 등을 역임하면서 많은 공을 세웠다'처럼 과거 거쳐 온 직위를 나타낼 때 쓰인다.

용례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말의 초점은 '여러 직위를 거치다'라는 데 있다.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직위가 나열되거나 복수의 직위가 함의될 때 '역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앞의 예문에서와 같은 상황에서는 '역임하고 있다'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역임'을 '거침''지냄'으로 순화했다.

어떤 직위를 굳이 '역임했다'라고 하기보다는 시제에 따라 '맡았다''맡고 있다'라고 하면 말도 부드럽고 뜻도 쉽고 분명해진다.

정확한 용법을 지키지 못할 바에는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기보다 '지냈다, 거쳤다, 맡았다' 등으로 다양하게 말을 풀어 쓰는 게 요령이다.

"지금 이 정권은 국정운영 책임을 포기하고 재집권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상식과 금도를 벗어난 극단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2001년 7월 야당 총재가 당시 정부에 던진 비난의 말이다.

'금도를 벗어나다' '금도를 넘어서다'란 표현도 단어의 본래 뜻과는 거리가 먼,정체불명의 말이다.

문맥을 통해 보면 이때의 '금도'는 한계,한도,또는 금지선(禁止線) 정도의 뜻으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말에 그런 뜻의 '금도'는 없다.

본래 쓰이던 '금도(襟度)'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을 가리키는 말이다.

'병사들은 장군의 장수다운 배포와 금도에 감격했다'처럼 쓰인다.

금(襟)은 '옷깃,가슴,마음'을 뜻하는 말이다.

도(度)는 '법도 도,정도 도'다.

두 말이 합쳐져 '남을 용납하는 아량'이란 뜻의 단어가 됐다.

옷깃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들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을 가리킨다.

우리가 순국선열을 모신 경건한 곳에 들어설 때 옷을 가지런히 해 자세를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옷깃을 여미다'라고 하는 것처럼 '옷깃'은 사람의 마음가짐을 상징한다.

그러니 '금도'란 말은 '금도를 보이다,금도를 베풀다,금도가 있다' 식으로 써야 할 말이다.

이를 '금도를 넘어서다'와 같이 근원도 없는 말로 만들어 쓰는 것은 1990년대 후반 신문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니 그 오용의 역사가 꽤나 오래 된 듯싶다.

특이한 것은 그 용례를 대부분 정치권의 볼썽사나운 공방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언제부턴가 정치권에서 한자어인 이들 말의 정확한 의미와 용법을 모르고 쓰기 시작한 데서 지금의 오류가 비롯된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