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요'는 사투리, '~했고요'라고 해야

[돋보기 졸보기] 38. 중부방언의 위력
비탈 밭에서 일하던 며느리가 산 위에서 돌덩이가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번니임~,독뎅이(돌멩이의 전라/충청 사투리) 굴러 와유~."

그런데 며느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아버지는 돌에 치여 죽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충청도 말은 느리다는 인식에서 나온 과장된 우스갯소리다.

표준어는 지리적으로 서울을 기준으로 삼는 말이지만,서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중부방언의 영향을 많이 받아,때론 무엇이 표준 형태인지 헷갈릴 정도다.

중부방언이란 경기도,충청/강원권 사투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예문에 보이듯이 '굴러 와요' 같은 말을 '굴러 와유'로 하는 것은 대표적인 충청 방언의 형태다.

원래 중부방언에선 일반적으로 첫 음절 뒤에 오는 '오' 계통의 말을 '우'로 발음하는 현상이 있다.

'…하고'를 '…하구' 식으로 많이 쓰는 것이 그런 예다.

'그랬고요→그랬구요,서로→서루,잘났다고→잘났다구,어디로→어디루' 이런 식으로 '오'를 '우'로 발음하는 것이다.

그 영향을 오랫동안,폭넓게 받다보니 서울말에서도 이런 식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요즘 맞춤법이 왕왕 무시되는 인터넷상의 언어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이런 표기는 비표준이므로 허용되지 않는다.

중부방언은 남한의 표준어뿐만 아니라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는 문화어(북한의 표준어)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광범위한 세력을 갖고 있다.

북한의 교과서를 보면 '건느게' '건늘 때' 같은 표현이 눈에 띈다.

북에서는 '건느다'와 '건너다'가 동의어로 함께 쓰이는데,실은 '건느다'를 더 많이 쓴다.

이에 비해 남에서는 '건너다'만 인정한다.

북에서 '건너다' 외에 '건느다'를 인정한 것은 중부방언을 수용한 결과다.

가령 서울말에서도 '없어→읍써,어른→으른,거지→그지,거짓말→그짓말,더럽다→드럽다,정말 짜증나→증말 짜증나,아버지→아브지→아부지' 등에서는 모두 '어'를 '으'로 발음하는 모음상승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중부방언의 특징이다.

'어버지'가 '아브지'를 거쳐 '아부지'로 가는 데서는 원순모음화까지 일어나는데 이 역시 중부방언의 한 형태다.

북한에서는 그 중에서 통속적인 입말체인 '-구/구요'를 '-고/고요'와 함께 복수 문화어로 인정하고 있다.

가령 '간다구?(간다고?),일당백이구말구!(일당백이고말고!),들어 가두(들어가도),속이려구(속이려고),읊는다구요(읊는다고요)'와 같이 나타난다.

특히 격식 없는 문체에서는 '-고/고요'보다 '-구/구요'를 더 많이 쓴다.

최근 남한에서도 방언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등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다.

이참에 북한에서와 같이 방언을 폭넓게 수용하는 태도는 본받을 만하지 않을까.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