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한 사업
불가리아에서는 레슬러(wrestler)라는 말이 한때 폭력집단과 동의어였던 적이 있다.
공산주의 시절 불가리아는 올림픽 레슬링에 집중했었다.
많은 레슬러들이 양성되었지만 공산당이 무너지자 레슬링에 대한 국민적인 열정도 사라졌다.
앞날이 막힌 이들은 타락한 관료집단의 앞잡이가 되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깡패무리가 되었다.
같은 운동을 해서인지 취향까지도 비슷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이들을 알아보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거구의 몸집으로 휴대폰에 최고급 자동차,고급 양복을 입고 양옆에 젊은 여자들을 끼고 다닌다.
여자들은 금발이고 또 빼빼 말랐다.
하나같이 머리는 텅 비어 보이지만 불가리아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여러 가지 합법적인 사업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는데 자동차 보험업이 대표적이다.
소피아 시민들이 자동차를 도난당하지 않는 최선의 전략은 이들이 운영하는 보험회사 중 하나를 선택해 가입하고 그 보험딱지를 차 유리창 앞에 잘 보이게 붙여놓는 것이다.
스티커가 없는 차는 훔쳐가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레슬러들이 만든 이 보험회사의 주 업무는 고객의 차량을 지켜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은 차량을 훔치며 돌아다니는 일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카플란 '타타르로 가는 길')
⊙ 유비의 직업
삼국지는 동양 최고의 고전이다.
삼국지를 관통하는 사실상의 주인공 유비는 동양적 리더십의 상징이다.
유비가 관우,장비와 함께 복숭아 나무 아래서 맺은 형제의 서약은 동양 남성들이 흠모하는 우정의 미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살피면 도원결의는 깡패조직 신입회원 입단식이었을 뿐이다.
도원결의 당시 유비는 저잣거리에서 돗자리를 팔았다.
힘 꾀나 쓰는 장비를 행동대원으로 고용한 유비가 시장에 돗자리를 펴놓고 흥정이나 하며 시간을 보냈을 거라 생각하면 오해다.
돗자리 판 돈만으로는 엄청나게 먹어대는 장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돗자리가 아닌 다른 이유로 이들을 후원하는 부자들이 있었다.
후대의 작가들이 이들의 직업을 미화하기 위해 오묘한 말장난으로 실체를 가리지만 관우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정체가 드러난다.
관우는 말의 매매로 큰돈을 번 거부에게 고용되어 있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자동차회사의 경비부장 비슷하다.
관우가 말떼를 몰고 유비의 관할 지역을 지나게 되면서 시비가 시작되었다.
성질 급한 장비가 감히 세금도 내지 않고 자신들의 영역을 지나가겠다는 '기업'에 본떼를 보여주기 위해 나선다.
정의감이 강했던 관우가 보기에는 관료도 아닌 떨거지들이 통행세를 내라며 덤벼드니 공의를 위해서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관우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회사에 정식으로 고용된 자신과 시골장터에서 상인들에게 보호비나 뜯는 장비 같은 무리와는 격이 달랐다.
엉겨 붙은 두 사내를 뜯어말리는 유비의 자애로움이 묘사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관우가 보기 드물게 싸움을 잘했기 때문이다.
관우가 싸움에서 밀렸더라면 관우는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테고 관우가 호송하는 말들은 모두 압수될 게 뻔했다.
말 주인은 자신의 피고용자를 무단으로 죽인 이들에게 굽실거리며 두둑한 합의금을 주고서야 간신히 말을 빼낼 수 있을 터였다.
관우의 재능이 탐난 유비는 월급쟁이 관우 안에 불타오르는 야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다.
도원결의는 사표를 던지고 협객의 세계로 입문하는 관우를 위로하고자 마련한 가난하지만 포부가 컸던 시골 깡패들의 조촐한 의례였다.
다만 후세가 그 예식을 특별히 미화하게 된 건 이들이 결국 촉이라는 나라를 세워 합법적이자 본격적으로 세금을 수금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공하지 못했다면 도원결의는 복숭아 꽃잎이 꼴사납게 흩날리는 학교 담벼락 아래서 만화책에나 나올 법한 낯간지러운 대사를 읊조리며 신입회원에게 돌아가며 막술을 먹이는 '꼴통'들의 회합과 다를 바 없다.
⊙ 코즈의 정리
톰은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다.
이웃한 브라운은 목장을 운영한다.
그런데 브라운의 소들이 톰의 옥수수 밭에 들어가 뜯어먹는다.
톰은 브라운에게 목장 주변에 울타리를 치라고 항의한다.
브라운은 오히려 톰에게 당신의 밭이니 지키고 싶으면 당신이 울타리를 치라고 한다.
누가 울타리를 쳐야 할까?
불행하게도 톰과 브라운을 중재할 정부나 법이 없다면 이 분쟁은 해결될 수 없을까?
브라운의 소들이 톰에게 끼치는 피해가 연간 200만원이라 하자.
브라운이건 톰이건 울타리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 연간 150만원이 든다.
이 경우 법원의 간섭이 없어도 울타리가 만들어진다.
톰이 울타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억울하긴 해도 50만원이 이득이다.
울타리의 유지비용이 300만원이라면 어떨까?
브라운으로서야 울타리를 세우려 하지 않겠지만 톰도 울타리를 만들지 않는다.
울타리를 만들어 300만원을 쓰느니 매년 200만원씩 손해를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정의감으로는 브라운이 울타리를 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울타리를 유지하는 비용이 울타리가 없을 때 끼치는 손해보다 크다면 정부가 브라운에게 울타리를 치라고 명령해도 결국 울타리는 세워지지 않는다.
법원의 명령을 받은 브라운이 톰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매년 200만원씩 보상할 테니 그냥 울타리 없이 살자고 말이다.
톰이 거부하면 보상금을 250만원으로 늘린다.
톰으로서도 울타리가 있을 때보다 50만원 이득이지만 브라운도 50만원 이득이다.
이 간단한 수식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Ronald Coase)의 이름을 따서 코즈의 정리라고 한다.
코즈의 천재성은 애초에 권리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최종적인 결과는 결국 이해당사자들 간 이익의 합이 가장 큰 쪽으로 수렴된다.
만약 위층 집 음대 지망생의 피아노소리 때문에 자신이 독서실을 끊어야 한다면 거래를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까운 피아노 학원의 연습실을 이용하는 비용과 자신이 독서실을 이용하는 비용을 비교해 더 적은 쪽이 연습실이나 독서실을 이용하고 상대편이 그 비용을 대신 내주면 코즈의 정리가 말하는 균형에 속한다.
⊙ 권력의 기원
많은 학생들은 코즈의 정리가 비현실적이라는 데 주목한다.
실제로 현실에서는 언제나 최적의 합의에 이르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는 늘 최적의 상태로 합의되지 않는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점이 코즈의 또 다른 위대함이다.
톰과 브라운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유의지로 계산하고 합의한다.
옥수수나 소에 대해서는 소유가 명쾌하다.
또 둘 사이이의 거래에는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거나 매우 저렴하다.
이 세 가지가 최적의 합의가 가능한 전제조건이다.
소유권이 명쾌하지 않거나 행위주체들에게 자유가 없거나 둘 사이의 거래에 많은 비용과 불확실성이 존재하면 코즈가 말한 최적의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다.
세 가지 조건은 질서와 관련 있다.
즉 자유롭고 안정된 사회질서는 구성원들이 각자에게 유리한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고 그 합의점은 사회 전체적으로도 가장 최선이다.
질서가 파괴되면 사회의 부는 급격히 감소한다.
코즈가 말한 최적상태와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즈적 최적은 힘이기도 하다.
어떤 상태에서도 코즈적 최적을 향한 강력한 힘이 저절로 작동한다.
불가리의 자동차 보험 사업도 매우 부당하지만 나름대로 코즈의 최적이다.
자동차 소유주들은 차를 도난당하는 것보다는 보험에 가입하는 게 낫다.
그 보험회사가 바로 자신의 차를 훔치려고 하는 이들의 집단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부조리한 상황을 막아줄 국가 권력이 없거나 부패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를 훔치는 이들이 운영하는 보험이라 더 믿을 수 있다.
당사자들 간의 직접적인 협상처럼 거래비용이 매우 저렴하고 불확실성이 낮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세금을 낼 테니 내 차는 훔치지 말라는 협상과 다름없다.
보험 가입자는 잠재적인 강도들을 일일이 만나가며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없다.
아름다운 도원결의를 비하하긴 했지만 권력의 기원을 그보다 잘 보여주는 장면도 드물다.
유비가 깡패와 다른 건 질서를 파괴하고 상인들을 복속시킨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미 질서가 무너진 시골 장터는 누군가 거래의 안정성을 뒷받침해 주어야 했다.
당시 한(漢)나라의 정부 시스템은 질서의 보호자가 아니라 질서의 파괴자였다.
유비형제들은 불확실성과 거래의 비용을 낮추기는커녕 스스로 거대한 도적의 집단이 되어버린 합법적인 정부에 대항해 나라를 세운다.
그 길은 기나긴 폭력과 투쟁,그리고 모험이다.
유비나 코즈나 좋은 정부에 대한 시각에는 차이가 없다.
소유권을 지켜주고 백성의 의사를 존중하고 거래비용을 낮추어 최적의 합의가 꽃피우도록 한다.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이익의 일부를 수금하는 건 전혀 흠이 아니다.
삼국지는 정부란 합법적으로 돈을 뜯는 깡패가 될 수도 있지만 깡패무리가 비록 불법적으로 수금해도 훌륭한 정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정부와 깡패를 가르는 기준은 합법성의 여부가 아닐지 모른다.
도원결의와 코즈의 정리는 세대와 문명을 뛰어넘어 동일한 교훈을 일깨운다.
불가리아에서는 레슬러(wrestler)라는 말이 한때 폭력집단과 동의어였던 적이 있다.
공산주의 시절 불가리아는 올림픽 레슬링에 집중했었다.
많은 레슬러들이 양성되었지만 공산당이 무너지자 레슬링에 대한 국민적인 열정도 사라졌다.
앞날이 막힌 이들은 타락한 관료집단의 앞잡이가 되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깡패무리가 되었다.
같은 운동을 해서인지 취향까지도 비슷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이들을 알아보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거구의 몸집으로 휴대폰에 최고급 자동차,고급 양복을 입고 양옆에 젊은 여자들을 끼고 다닌다.
여자들은 금발이고 또 빼빼 말랐다.
하나같이 머리는 텅 비어 보이지만 불가리아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여러 가지 합법적인 사업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는데 자동차 보험업이 대표적이다.
소피아 시민들이 자동차를 도난당하지 않는 최선의 전략은 이들이 운영하는 보험회사 중 하나를 선택해 가입하고 그 보험딱지를 차 유리창 앞에 잘 보이게 붙여놓는 것이다.
스티커가 없는 차는 훔쳐가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레슬러들이 만든 이 보험회사의 주 업무는 고객의 차량을 지켜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은 차량을 훔치며 돌아다니는 일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카플란 '타타르로 가는 길')
⊙ 유비의 직업
삼국지는 동양 최고의 고전이다.
삼국지를 관통하는 사실상의 주인공 유비는 동양적 리더십의 상징이다.
유비가 관우,장비와 함께 복숭아 나무 아래서 맺은 형제의 서약은 동양 남성들이 흠모하는 우정의 미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살피면 도원결의는 깡패조직 신입회원 입단식이었을 뿐이다.
도원결의 당시 유비는 저잣거리에서 돗자리를 팔았다.
힘 꾀나 쓰는 장비를 행동대원으로 고용한 유비가 시장에 돗자리를 펴놓고 흥정이나 하며 시간을 보냈을 거라 생각하면 오해다.
돗자리 판 돈만으로는 엄청나게 먹어대는 장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돗자리가 아닌 다른 이유로 이들을 후원하는 부자들이 있었다.
후대의 작가들이 이들의 직업을 미화하기 위해 오묘한 말장난으로 실체를 가리지만 관우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정체가 드러난다.
관우는 말의 매매로 큰돈을 번 거부에게 고용되어 있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자동차회사의 경비부장 비슷하다.
관우가 말떼를 몰고 유비의 관할 지역을 지나게 되면서 시비가 시작되었다.
성질 급한 장비가 감히 세금도 내지 않고 자신들의 영역을 지나가겠다는 '기업'에 본떼를 보여주기 위해 나선다.
정의감이 강했던 관우가 보기에는 관료도 아닌 떨거지들이 통행세를 내라며 덤벼드니 공의를 위해서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관우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회사에 정식으로 고용된 자신과 시골장터에서 상인들에게 보호비나 뜯는 장비 같은 무리와는 격이 달랐다.
엉겨 붙은 두 사내를 뜯어말리는 유비의 자애로움이 묘사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관우가 보기 드물게 싸움을 잘했기 때문이다.
관우가 싸움에서 밀렸더라면 관우는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테고 관우가 호송하는 말들은 모두 압수될 게 뻔했다.
말 주인은 자신의 피고용자를 무단으로 죽인 이들에게 굽실거리며 두둑한 합의금을 주고서야 간신히 말을 빼낼 수 있을 터였다.
관우의 재능이 탐난 유비는 월급쟁이 관우 안에 불타오르는 야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다.
도원결의는 사표를 던지고 협객의 세계로 입문하는 관우를 위로하고자 마련한 가난하지만 포부가 컸던 시골 깡패들의 조촐한 의례였다.
다만 후세가 그 예식을 특별히 미화하게 된 건 이들이 결국 촉이라는 나라를 세워 합법적이자 본격적으로 세금을 수금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공하지 못했다면 도원결의는 복숭아 꽃잎이 꼴사납게 흩날리는 학교 담벼락 아래서 만화책에나 나올 법한 낯간지러운 대사를 읊조리며 신입회원에게 돌아가며 막술을 먹이는 '꼴통'들의 회합과 다를 바 없다.
⊙ 코즈의 정리
톰은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다.
이웃한 브라운은 목장을 운영한다.
그런데 브라운의 소들이 톰의 옥수수 밭에 들어가 뜯어먹는다.
톰은 브라운에게 목장 주변에 울타리를 치라고 항의한다.
브라운은 오히려 톰에게 당신의 밭이니 지키고 싶으면 당신이 울타리를 치라고 한다.
누가 울타리를 쳐야 할까?
불행하게도 톰과 브라운을 중재할 정부나 법이 없다면 이 분쟁은 해결될 수 없을까?
브라운의 소들이 톰에게 끼치는 피해가 연간 200만원이라 하자.
브라운이건 톰이건 울타리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 연간 150만원이 든다.
이 경우 법원의 간섭이 없어도 울타리가 만들어진다.
톰이 울타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억울하긴 해도 50만원이 이득이다.
울타리의 유지비용이 300만원이라면 어떨까?
브라운으로서야 울타리를 세우려 하지 않겠지만 톰도 울타리를 만들지 않는다.
울타리를 만들어 300만원을 쓰느니 매년 200만원씩 손해를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정의감으로는 브라운이 울타리를 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울타리를 유지하는 비용이 울타리가 없을 때 끼치는 손해보다 크다면 정부가 브라운에게 울타리를 치라고 명령해도 결국 울타리는 세워지지 않는다.
법원의 명령을 받은 브라운이 톰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매년 200만원씩 보상할 테니 그냥 울타리 없이 살자고 말이다.
톰이 거부하면 보상금을 250만원으로 늘린다.
톰으로서도 울타리가 있을 때보다 50만원 이득이지만 브라운도 50만원 이득이다.
이 간단한 수식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Ronald Coase)의 이름을 따서 코즈의 정리라고 한다.
코즈의 천재성은 애초에 권리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최종적인 결과는 결국 이해당사자들 간 이익의 합이 가장 큰 쪽으로 수렴된다.
만약 위층 집 음대 지망생의 피아노소리 때문에 자신이 독서실을 끊어야 한다면 거래를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까운 피아노 학원의 연습실을 이용하는 비용과 자신이 독서실을 이용하는 비용을 비교해 더 적은 쪽이 연습실이나 독서실을 이용하고 상대편이 그 비용을 대신 내주면 코즈의 정리가 말하는 균형에 속한다.
⊙ 권력의 기원
많은 학생들은 코즈의 정리가 비현실적이라는 데 주목한다.
실제로 현실에서는 언제나 최적의 합의에 이르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는 늘 최적의 상태로 합의되지 않는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점이 코즈의 또 다른 위대함이다.
톰과 브라운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유의지로 계산하고 합의한다.
옥수수나 소에 대해서는 소유가 명쾌하다.
또 둘 사이이의 거래에는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거나 매우 저렴하다.
이 세 가지가 최적의 합의가 가능한 전제조건이다.
소유권이 명쾌하지 않거나 행위주체들에게 자유가 없거나 둘 사이의 거래에 많은 비용과 불확실성이 존재하면 코즈가 말한 최적의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다.
세 가지 조건은 질서와 관련 있다.
즉 자유롭고 안정된 사회질서는 구성원들이 각자에게 유리한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고 그 합의점은 사회 전체적으로도 가장 최선이다.
질서가 파괴되면 사회의 부는 급격히 감소한다.
코즈가 말한 최적상태와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즈적 최적은 힘이기도 하다.
어떤 상태에서도 코즈적 최적을 향한 강력한 힘이 저절로 작동한다.
불가리의 자동차 보험 사업도 매우 부당하지만 나름대로 코즈의 최적이다.
자동차 소유주들은 차를 도난당하는 것보다는 보험에 가입하는 게 낫다.
그 보험회사가 바로 자신의 차를 훔치려고 하는 이들의 집단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부조리한 상황을 막아줄 국가 권력이 없거나 부패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를 훔치는 이들이 운영하는 보험이라 더 믿을 수 있다.
당사자들 간의 직접적인 협상처럼 거래비용이 매우 저렴하고 불확실성이 낮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세금을 낼 테니 내 차는 훔치지 말라는 협상과 다름없다.
보험 가입자는 잠재적인 강도들을 일일이 만나가며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없다.
아름다운 도원결의를 비하하긴 했지만 권력의 기원을 그보다 잘 보여주는 장면도 드물다.
유비가 깡패와 다른 건 질서를 파괴하고 상인들을 복속시킨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미 질서가 무너진 시골 장터는 누군가 거래의 안정성을 뒷받침해 주어야 했다.
당시 한(漢)나라의 정부 시스템은 질서의 보호자가 아니라 질서의 파괴자였다.
유비형제들은 불확실성과 거래의 비용을 낮추기는커녕 스스로 거대한 도적의 집단이 되어버린 합법적인 정부에 대항해 나라를 세운다.
그 길은 기나긴 폭력과 투쟁,그리고 모험이다.
유비나 코즈나 좋은 정부에 대한 시각에는 차이가 없다.
소유권을 지켜주고 백성의 의사를 존중하고 거래비용을 낮추어 최적의 합의가 꽃피우도록 한다.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이익의 일부를 수금하는 건 전혀 흠이 아니다.
삼국지는 정부란 합법적으로 돈을 뜯는 깡패가 될 수도 있지만 깡패무리가 비록 불법적으로 수금해도 훌륭한 정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정부와 깡패를 가르는 기준은 합법성의 여부가 아닐지 모른다.
도원결의와 코즈의 정리는 세대와 문명을 뛰어넘어 동일한 교훈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