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규제 혁파가 필요하다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6강 희망의 불씨를 지펴왔던 신세계는 어제 패배로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최근 있었던 TV방송 스포츠 중계의 한 대목이다.
우리가 입말에서 흔히 쓰는 '고개를 떨구다' '눈물을 떨구다'란 말은 규범의 잣대를 들이대면 아쉽지만 우리말 안에서 발붙일 데가 없는 존재다.
1991년 한글학회는 <우리말큰사전>을 펴내면서 표제어 '떨구다'를 '->떨어뜨리다'로 처리했다.
옆에다는 '강원 경남 방언'이란 풀이말을 덧붙였다.
1991년 금성판 국어대사전,올림말 '떨구다'를 찾아보면 역시 '→떨어뜨리다'로 돼 있다.
모두 '떨구다'란 말을 온전한 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1998년 국립국어원은 국가사업으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을 내면서 이번엔 한술 더 떠 '떨구다'를 아예 '떨어뜨리다의 잘못'으로 규정했다.
최근에 나온 동아새국어사전 2007년판에서도 이를 똑같이 따랐다.
그래서 규범적인 글에서는 언제나 고개를 '떨어뜨리는' 것이고 눈물도 '떨어뜨려야만' 한다.
'떨구다'는 아예 못 쓰는 말, '…의 잘못'으로 취급될 뿐이다.
우리 사전에서는 오래 전부터 '떨구다'는 애써 외면하고 '떨어뜨리다'만을 허용해 왔다.
하지만 실제 어감이나 현실적인 쓰임새에서는 여전히 눈물은 '떨궈야' 제 맛이 나고, 고개도 '떨구는'게 자연스러운 게 사실이다.
특히 문학 작품 속에서는 종종 '떨구다'가 '떨어뜨리다'를 밀어내고 생생한 단어로 자리매김해 왔다.
반면에 '체온을 떨구다' '속도를 떨구다' '위신을 떨구다' 식의 표현은 어색하다.
결국 '떨구다'는 '떨어뜨리다'와 미묘한 쓰임새의 차이를 보이면서 '고개를 떨구다, 눈물을 떨구다'라는 게 관용적 표현으로 굳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으로 살아있는 말을 '…의 잘못'이라 규정해 '떨구다'를 버린 것은 현행 표준어 정책의 맹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의 잘못'으로 보는 잣대가 오랫동안 표준어와 비표준어의 관계를 '맞는 것, 틀린 것'이란 그릇된 방향으로 유도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일각에서 나오는 표준어 무용론이 힘을 얻어가는 배경이기도 하다.
말의 힘은 언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인위적으로 규제의 족쇄를 채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떨구다'의 현실적 쓰임새를 인정한 일부 사전에서는 이 말에 합당한 대우를 했다.
기존의 규범적 언어관에서 탈피해 구어체적 용법을 수용한 <연세한국어사전>(1998년)에서 정식 표제어로 올린 것이다.
2002년 민중서림간 <엣센스 국어사전>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떨구다/떨어뜨리다'를 함께 인정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떨구다'를 더 많이 자주 쓴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북한의 문화어에서는 '떨구다'를 '눈물을 흘리다, 머리나 고개 어깨 따위를 아래로 처지게 하다, 눈길을 아래로 내리깔다'라는 뜻 외에도 '물건 값을 떨구다, 위신을 떨구다, 시험을 통해 실력 없는 사람을 떨구다' 식으로 광범위하게 쓰고 있다.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6강 희망의 불씨를 지펴왔던 신세계는 어제 패배로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최근 있었던 TV방송 스포츠 중계의 한 대목이다.
우리가 입말에서 흔히 쓰는 '고개를 떨구다' '눈물을 떨구다'란 말은 규범의 잣대를 들이대면 아쉽지만 우리말 안에서 발붙일 데가 없는 존재다.
1991년 한글학회는 <우리말큰사전>을 펴내면서 표제어 '떨구다'를 '->떨어뜨리다'로 처리했다.
옆에다는 '강원 경남 방언'이란 풀이말을 덧붙였다.
1991년 금성판 국어대사전,올림말 '떨구다'를 찾아보면 역시 '→떨어뜨리다'로 돼 있다.
모두 '떨구다'란 말을 온전한 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1998년 국립국어원은 국가사업으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을 내면서 이번엔 한술 더 떠 '떨구다'를 아예 '떨어뜨리다의 잘못'으로 규정했다.
최근에 나온 동아새국어사전 2007년판에서도 이를 똑같이 따랐다.
그래서 규범적인 글에서는 언제나 고개를 '떨어뜨리는' 것이고 눈물도 '떨어뜨려야만' 한다.
'떨구다'는 아예 못 쓰는 말, '…의 잘못'으로 취급될 뿐이다.
우리 사전에서는 오래 전부터 '떨구다'는 애써 외면하고 '떨어뜨리다'만을 허용해 왔다.
하지만 실제 어감이나 현실적인 쓰임새에서는 여전히 눈물은 '떨궈야' 제 맛이 나고, 고개도 '떨구는'게 자연스러운 게 사실이다.
특히 문학 작품 속에서는 종종 '떨구다'가 '떨어뜨리다'를 밀어내고 생생한 단어로 자리매김해 왔다.
반면에 '체온을 떨구다' '속도를 떨구다' '위신을 떨구다' 식의 표현은 어색하다.
결국 '떨구다'는 '떨어뜨리다'와 미묘한 쓰임새의 차이를 보이면서 '고개를 떨구다, 눈물을 떨구다'라는 게 관용적 표현으로 굳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으로 살아있는 말을 '…의 잘못'이라 규정해 '떨구다'를 버린 것은 현행 표준어 정책의 맹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의 잘못'으로 보는 잣대가 오랫동안 표준어와 비표준어의 관계를 '맞는 것, 틀린 것'이란 그릇된 방향으로 유도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일각에서 나오는 표준어 무용론이 힘을 얻어가는 배경이기도 하다.
말의 힘은 언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인위적으로 규제의 족쇄를 채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떨구다'의 현실적 쓰임새를 인정한 일부 사전에서는 이 말에 합당한 대우를 했다.
기존의 규범적 언어관에서 탈피해 구어체적 용법을 수용한 <연세한국어사전>(1998년)에서 정식 표제어로 올린 것이다.
2002년 민중서림간 <엣센스 국어사전>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떨구다/떨어뜨리다'를 함께 인정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떨구다'를 더 많이 자주 쓴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북한의 문화어에서는 '떨구다'를 '눈물을 흘리다, 머리나 고개 어깨 따위를 아래로 처지게 하다, 눈길을 아래로 내리깔다'라는 뜻 외에도 '물건 값을 떨구다, 위신을 떨구다, 시험을 통해 실력 없는 사람을 떨구다' 식으로 광범위하게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