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일 < 서강대 경제대학원장·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3월 5일자 A39면

히말라야는 역시 높고 아름다웠다.

해발 4130m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힘겹게 도착한 순간 순백의 설산과 태고의 정적이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벤치에 앉아 가쁜 숨을 진정하고 좀 더 찬찬히 주변을 돌아보는데 발 밑에 무언가 눈에 띈다.

선명한 한글로 '들기름…김'이라 쓰여진 김 봉지다.

자연의 순수를 여지없이 깨뜨리는 쓰레기가 딱 하나 눈에 띄는데 하필 한국인의 손으로 버려진 것이다.

참 부끄러웠다.

비단 여기뿐 아니다.

이곳 트레킹 루트는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깨끗함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간간이 길바닥에 버려진 사탕껍질 등 쓰레기를 줍다 보면 대부분 한글로 쓰인 것이어서 어쩌다 한자로 쓰인 것이 나타나면 반가울 정도다.

말이 나온 김에 이번 트레킹에서 겪은 부끄러운 자화상을 한 가지 더 보자.

비행기가 네팔의 카트만두 공항에 착륙해 계류장으로 아직 이동 중인데 스튜어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리 급한지 일어나서 선반을 여는 사람은 하나같이 서로 '김 사장님', '이 사장님' 하고 부르는 한국인들이었다.

반면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가는 네팔 근로자들은 여느 선진국 여행객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러고도 우리가 그들보다 선진국민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금년을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진 숨가쁜 역사를 매듭 짓고 이제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과 세계 7대 경제 강국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하자는 말이다.

반가운 말이고 당연히 그렇게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국민소득이 선진국 수준으로 오른다 한들 그것만으로는 선진화를 이룬다 할 수 없다.

경제적 선진화 못지 않게 우리의 의식과 제도 전반에 걸친 선진화가 필요하다.

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계발하도록 교육제도의 선진화가 필요하며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에서 벗어나 갈등을 통합하는 정치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질서에 대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의식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선진화된 사회는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한다.

그러기에 획일적 규제는 사라지지만 그 대신 자율적 질서의 형성이 요구된다.

자율적 질서는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산다는 공동체의식과 내 자유가 중요한 만큼 타인도 생각해야 한다는 배려의식에 의해 이뤄진다.

선진화된 시민은 공동체의식과 배려의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공질서에 대해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그러기에 쓰레기를 스스로 처리하며 순서를 알아서 지킨다.

우리는 그동안 좁은 땅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습관 때문인지 공공질서를 머릿속으로는 이해해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자발적으로 질서를 만들어가는 모습들이 자주 목격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가면 이전과 달리 한 줄로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는 곳으로 나누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0년 전과 비교해 확실히 발전한 모습이고 앞으로 10년 후면 좀 더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나쁜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의식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또 모르는 것은 알려주면 고치게 된다.

그러기에 정부가 아닌 비정부기관들이 질서 만들기 캠페인을 벌였으면 좋겠다.

각급 학교는 당연히 참여하고 국민이 매일 접하는 언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에도 언론사가 개별적으로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으나 이번에는 여러 언론사가 의논해 돌아가면서 캠페인을 벌인다면 지속적인 캠페인에 따른 효과가 훨씬 클 것이다.

아울러 항공사들은 인천공항 출구에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이 지켜야 할 에티켓 북을 만들어 비치해 두는 것은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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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시민의식은 기초질서 지키기부터

해설

해외 여행을 하다 보면 현지 안내원이나 호텔 직원들로부터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같은 동양인 관광객이라도 행동을 보면 국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요.

특히 공공질서를 지키는 자세를 보면 일본인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대체로 일본인은 줄을 잘 서고 복도를 걸을 때 떠들지 않고 조용조용 다니지요.

퇴실할 때 침대의 이불도 가지런히 정리해 두고 나갑니다."

우리로서는 듣기 싫은 말이지만 미국 유럽 사람들이 일본인 여행객을 다른 동양인 여행객과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기초질서 등 몇 가지 측면에서 일본은 우리가 배워야 할 대상이다.

필자가 1989년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거리 신호등 앞에 가지런히 줄지어 선 차량들이었다.

요즘은 정차질서가 많이 개선됐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정지선에 정확히 서는 차량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도쿄의 차량들은 마치 육상 100미터 출발선에 선 선수들처럼 정지선 앞에 정확히 정차해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이 다산칼럼에서 지적하듯이 우리는 아직도 거리 산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등 선진 시민의식이 부족한 편이다.

또 외국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배타적 민족의식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업과 기업인을 무조건 나쁘게 보는 시각도 남아 있다.

학교 사회도 그런 경향이 있다.

필자가 얼마 전 서울 인근의 한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했을 때 학생들이 너무 떠들어 행사 진행 상황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선생님들이 식장에 앉은 학생들 사이를 다니며 주의를 주었지만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었다.

학부형을 비롯한 참석한 외부 손님들은 그들의 안중에 아예 없는 듯했다.

학교의 수준은 학생들의 행동에서 결정되고 사회는 그에 맞춰 그 학교 출신들을 대접한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선진 의식을 갖지 못하는 국가일수록 국제 사회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세계적 국가위험 분석기관인 폴리티컬 리스크 서비스 그룹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법질서 준수 정도(2005년도)는 OECD 30개국 중 27위에 머물렀다.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들이 선진 의식을 가져야 한다.

기초질서를 지키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갈 생글이 여러분!

학교 행사에서부터 기초질서를 지키는 등 선진 시민의 자세를 익힙시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