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싸가지를 봤나

[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밥맛에서 엉터리까지 ②
참여정부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던 사람을 꼽으라면 유모 의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왕따이면서 동시에 스타였다.

그에겐 별칭이 또 하나 따라다녔는데 그것은 '싸가지'다.

2005년 같은 당의 김모 의원이 그에게 '왜 저토록 옳은 얘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하는 재주를 어디서 배웠을까'라고 공개편지를 보내면서 이른바 '싸가지 논쟁'에 불이 붙기도 했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싸가지다'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버릇이 없거나 예의범절을 차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그냥 '싸가지'라고 한다.

"이런 싸가지를 봤나"처럼 쓰곤 한다.

요즘엔 한술 더 떠 강조하는 말로 "걔 왕싸가지야"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은 사실 완전한 표현은 아니다.

본래 '싸가지 없다'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을 가리켜 '싸가지'라고 하는 것은 '싸가지 없는 사람'이 온전한 표현인데, 여기서 부정어를 생략하고 의인화해 단순히 '싸가지'란 말로 대신하는 것이다.

의미 이동인 셈이다.

하지만 아직 규범적으로는 인정되는 어법이 아니므로 글에서 써서는 안 된다.

'싸가지'는 '싹수'의 강원, 전남 방언이다.

이 '싹수'는 '싹수가 있다/없다' '싹수가 보인다' '싹수가 노랗다'처럼 쓰이는데, 이때 싹수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뜻한다.

그러니 '싹수가 있다/없다'라고 하면 '잘될 가능성이 있다/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특히 '장래성이 없다'는 뜻의 '싹수없다'는 한 단어이므로 항상 붙여 써야 한다.

잘될 가능성이나 희망이 애초부터 보이지 않을 때는 관용어로 '싹수(가) 노랗다'고 한다.

'싹수'는 '싹'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그냥 '싹이 노랗다'라고 해도 같은 말이다.

그런데 그 방언인 '싸가지'를 써서 '싸가지가 없다'라고 하면 뜻이 달라진다.

이는 누군가에게 '버릇없이 아래위도 모른다'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누가 앞으로 잘될 것 같지 않다'는 뜻으로 하는 게 아니다.

물론 긍정적으로 표현할 때는 '싸가지가 있다'라고 한다.

또 '싹수가 노랗다'라는 말 대신에 '싸가지가 노랗다'라고 하지도 않는다.

싸가지가 싹수의 사투리이면서도 두 말은 의미 용법이 매우 다른 셈이다.

따라서 싸가지는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예의범절, 버릇 등 인간의 심성, 품성, 인격의 단면을 나타내는 정신적 요소를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싸가지'는 어원적으로 '싹'에 '-아지'라는 접미사가 결합한 말이다.

이때 '-아지'는 '작은 것'이란 의미를 담은 말로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따위에 붙은 '-아지'와 같은 것이다.

이처럼 항상 부정어와 결합해 쓰이는 말에는 '아랑곳없다'도 있다.

# 지난 한달 동안 야간공사를 자제해줄 것을 수없이 요구했지만 시공사와 강남구청이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랑곳'은 '일에 나서서 참견하거나 관심을 두는 것'을 말한다.

관용적 표현으로 '아랑곳 여기다'라고 하면 '관심 있게 생각하다'란 뜻인데, 실제 언어생활에서 잘 쓰이진 않는다.

이 '아랑곳' 역시 대개 '-하지 않다' '-없다' 꼴을 취한다.

'아랑곳하지 않다' '아랑곳없다'(형용사 : 어떤 일에 참견하거나 관심을 두지 아니하다) '아랑곳없이'(부사)로 쓰인다.

따라서 일부 말투에서, 상대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일 때 이를 힐난하는 어투로 "남들은 정신없이 바쁜데 너는 왜 그렇게 아랑곳이냐?"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이 역시 의미 이동 중인 말로 볼 수는 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너는 왜 그렇게 아랑곳없냐?"라고 해야 바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