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졸보기] 35. 표준어 다시보기 ; 여태-입때-여직-여적
해가 중천에 떴잖아


"여직껏 뭐해?"

"그는 여태 무얼 하고 안 오는 것일까?"

"입때 그것밖에 못 했어?"

"해가 중천에 떴는데 여직 자고 있느냐."

"여적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

이 문장들에는 공통적인 단어가 하나 들어 있다.

'지금까지' 또는 '아직까지'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여태,입때,여직,여적'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어떤 행동이나 일이 이미 이뤄졌어야 함에도 그렇게 되지 않았음을 불만스럽게 여기거나 또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나 일이 현재까지 계속돼 옴'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비슷한 분포로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말 속에서의 지위는 똑같지 않다.

'여태'와 '입때'는 단어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지만 '여직'이나 '여적'은 '(무엇의)잘못'이라 하여 단어 취급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전들은 '여태'와 '입때'만을 표준어라 해서 인정할 뿐 '여직' '여적'은 '여태의 잘못'으로 처리하고 있다.

'여태껏'은 '여태'를 강조해 쓰는 말인데, '이제껏, 입때껏'과 함께 표준어로 사전에 올랐다.

이에 비해 '여직'을 강조한 말은 '여직껏'('여지껏'이라 하기도 한다)인데 이 역시 '여태껏'의 잘못으로 풀이된다.

'여적'은 '여태'의 중부 방언으로 처리됐다.

일부에서는 이를 강조해 '여적지'라고도 하지만, 이 말은 아예 사전에서 찾아 볼 수도 없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는 '여태''입때'와 함께 '여직''여적'을 표준어(북의 용어로는 문화어)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에서는 단어의 인정을 우리보다 훨씬 폭넓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전에서 '(무엇의)잘못'으로 풀이돼 있는 것은 많은 경우 시급히 시정해야 할 대상이다.

표준어란 알려져 있듯이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그 정의의 타당성 여부는 또 다른 논쟁의 대상으로 치더라도 표준어는 단지 대표성 있는 말일 뿐이다.

표준이 아니면 하다못해 그냥 비표준이면 족한 것이지 그것이 '잘못'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릇된 언어 정책으로 인해 우리가 규범적 글에서 쓸 수 있는 단어를 '여태'와 '입때'로 제한하는 것은 스스로 우리말에 굴레를 씌우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