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밥맛에서 엉터리까지①
"걔는 밥맛이야."

"에이 얌통머리 같으니…."

"너 왜 그렇게 아랑곳이야?"

"이런 터무니를 봤나."

"걔 싸가지야."

"에이 칠칠맞게스리…."

"이런 어처구니를 봤나."

"꽤나 안절부절이네."

"이런 채신머리하곤…."

"그이는 하는 짓이 주책이야."

"그 사람 참 엉터리야."

살아가면서 이런 말을 흔히 듣기도 하고 직접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에는 함정이 있다.

이 가운데 어법적으로 허용되는 표현은 맨 뒤의 "엉터리야"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아직까지는 잘 못 된 표현이다.

이들은 본래 '-없다'란 부정어와 함께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두고 아니꼬워 상대하기 싫을 때 쓰는 "걔 밥맛이야"란 표현은 어디서 왔을까.

'밥맛'은 글자 그대로 '밥에서 나는 맛'이지만 대개는 의미가 조금 확장돼 '밥을 비롯한 음식이 입에 당기어 먹고 싶은 상태'를 나타내는 뜻으로 쓰인다.

당연히 '밥맛이 있다/없다' 식으로 쓰인다.

'밥맛(이) 없다'라고 하면 말 그대로 '입맛이 없거나 해서 음식 먹을 맛이 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때는 단어 각각의 의미가 살아 있으므로 '밥맛 없다'라고 띄어 써야 한다.

하지만 '밥맛없다'라고 붙여서 한 단어로 쓰면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뜻을 담은 말이 된다.

이때는 '아니꼽고 기가 차서 정이 떨어지거나 상대하기가 싫다'란 뜻의 합성어가 되는 것.

이는 사전에 오른 말이다.

결국 "걔 밥맛없어"라고 하는 게 원래 용법인데, 이 말이 점차 뒤의 부정어가 떨어져 나가면서 단순히 "밥맛이야"라는 표현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밥맛'이 '밥맛없다'를 대체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이런 표현이 문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글에서 써서는 안 된다.

'염치'나 '얌치' '얌통머리'의 쓰임새도 비슷하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이다.

그러니 '체면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염치없다'이다.

'얌치'는 염치가 변한 것이고 이를 더 속되게 이르는 말이 얌치머리, 얌통머리이다.

따라서 '염치없다, 얌치없다, 얌통머리없다'가 모두 같은 말이고 실제로 그렇게 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일상적으로 뒤의 부정어를 생략하고 그냥 "이 얌통머리야!" "에이~, 얌통머리 같으니…." "이런 얌통머리를 봤나"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얌치'가 다시 변한 말 '얌체'는 얌치가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서,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얌통머리는 얌치를 단지 속되게 이르는 말일 뿐이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므로 당연히 바른 표현이 아니다.

결국 "에이, 얌통머리 같으니…"라는 말은 얌통머리의 의미가 얌체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러 차례 말했듯이 단어의 의미는 한번 형성되면 고정 불변인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때론 의미가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하며 다른 뜻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이 중 의미 이동은 확대도 축소도 아닌, 단순한 이동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가령 옛말에서 '어리석다(愚)'를 나타내던 '어리다'가 지금은 '나이가 어리다(幼)'란 뜻으로 변하고, '불쌍하다'란 뜻의 '어엿브다'가 요즘의 '예쁘다'란 말의 이전 형태였던 것 등이 그런 예이다.

'밥맛없다'나 '얌통머리없다' 따위를 부정어를 생략하고 단순하게 '밥맛이다' '얌통머리다'라고 말하는 것 역시 의미 이동의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완전히 이동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