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 심리학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27. 왜 성형수술이 그토록 유행할까
2006년 최대 히트작은 '미녀는 괴로워'였다.

169㎝, 95㎏의 헤비급 주인공 한나(김아중 분)가 전신 성형을 통해 8등신 미녀인 제니로 거듭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다.

성형수술 전후의 '비포-애프터' 변화상은 단순히 한나의 외모가 바뀐 것만이 아니다.

그를 대하는 모든 이들의 태도까지 달라졌다.

얼마 전 국내에선 성형미인 콘테스트까지 열렸다.

방학을 맞아 여학생들의 성형수술은 흔한 일이고, 심지어 남학생들까지 성형을 생각한다.

왜 성형수술이 이렇게 성행할까.

오죽하면 한류 스타들은 모두 얼굴에 칼을 댔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일까.

오늘은 경제학과 심리학이 만나는 접점을 두루 살펴보자.

둘 다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어서인지, 궁합이 잘 맞는다.

⊙ 성형의 비용은 수술비뿐?

성형수술의 비용-편익 분석을 해보자.

한나는 제니로 변신하면서 달라진 세상을 만끽한다.

앞 차를 받았는데 피해 택시기사가 그냥 가라고 할 정도이고, 스타가 되고 사랑도 얻는다.

외모 중시 사회에서 한나는 가장 수익률 높은 투자를 한 셈이다.

전신 성형 수술비가 비용으로 들었지만 한나에게 성형의 편익은 거의 모든 것이었다.

여성들의 성형수술 열풍을 비난만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남성들이 그런 편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처럼 여성에게 성형이 속된 말로 팔자를 고칠 정도, 즉 대박이 난다면 뭘 못할까.

하지만 성형의 비용이 단지 수술비로 끝날까?

수술비 말고도 자칫 얼굴의 조화가 무너져 오히려 외면을 당하거나, 마이클 잭슨처럼 끊임없이 '보수공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극단적으론 '선풍기 아줌마'처럼 될 수도 있다.

또 성형수술을 안 했다고 발뺌하다 뒤늦게 사실이 드러날 경우 거짓말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무엇보다 자연 상태의 신체에 칼을 대는 데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가장 큰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 무를 수 없을수록 자기가 옳다는 심리

미국 심리학자들이 경마장에서 베팅한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했다.

판돈을 걸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과, 막 베팅을 마친 사람을 비교해보니 후자 쪽이 우승마에 대한 확신이 훨씬 강했다.

이는 취소할 수 없는 행위를 했을 때 자기가 옳다는 확신이 더 강해진다는 증거다.

자동차, 아파트 등 비쌀수록 자기가 산 것이(설령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도) 마음에 쏙 든다고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거는 것과 같은 심리다.

아파트나 자동차 광고를 보면 제품의 특성·장점보다는 이미지만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성형이 좋다고 묻는 사람을 설득할 것이다.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합리화 심리가 강한 것이다.

그래서 큰 거래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바로 직전에 그것을 한 사람에게는 조언을 구하지 말라고 한다.

⊙ 여자 옷 치수가 실제보다 큰 이유

로버트 프랭크의 <이코노믹 싱킹>에는 왜 여성복 사이즈가 실제 치수와 다른지에 대한 이유가 재미있게 설명돼 있다.

1960년대나 지금이나 허리 34인치인 남성은 똑같은 치수를 골라야 한다.

하지만 여성복은 같은 치수여도 1960년대보다 지금 옷이 훨씬 크다.

이는 대다수 여성들이 실제보다 작은 사이즈 옷을 선호하기 때문.

자신이 더 날씬해진 듯한 착각을 안겨주니까.

그러나 여성복 사이즈의 수치는 점점 작아지는 반면 여성들의 체중은 꾸준히 늘었다.

지금 미국 여성은 1960년대에 비해 평균 11㎏이 더 나간다.

그렇다면 남성은 몸집이 커졌어도 가짜 사이즈 관행을 선호하지 않으니 남성에게는 허영 마케팅이 안 통하는 것일까.

남성의 성형수술(심지어 복근 성형까지), 피부관리, 화장, 모발이식 등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남녀가 다를 게 없지 않을까.

⊙ 뇌의 실수 : '그들'로 뭉뚱그리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성, 정당, 민족 내부에 편차가 있음을 알면서도 다른 범주의 사람을 몇 명 만나보고는 일반화하여 그 범주에 속한 사람들 모두를 '그들'이란 덩어리로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다.(엘리엇 애런슨 등,<거짓말의 진화>)

우리 사회에서 좌우 논쟁이 치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좋거나 심지어 자신의 의견과 비슷한 아이디어·정책·행동이라도 반대 정견을 가진 사람이 내놓은 것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것이다.

"'그들'이 선의로 그럴 리 없다"고 여긴다.

'그들'의 반대는 '우리'로 뭉뚱그려진다.

미국 연방 대법관을 지낸 올리버 웬들 홈스는 이렇게 말했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을 가르치려 하는 것은 눈동자에 빛을 비추려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수축된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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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그럴 애가 아닌데" … 한국 부모들의 인지 부조화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닌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얘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식에 관해 학교 선생님이나 친지들과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자주 하는 말들이다.

여기엔 자식은 부모가 가장 잘 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자식이 부모가 상상하는 범위를 벗어나는 일탈 행동을 보일 경우 그 원인을 자식 탓이 아니라 타인이나 주변 환경에서 찾는다.

심리학에선 이 같은 자기정당화 심리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른다.

자신이 평소 알던 것과 다른(또는 정반대의) 증거가 주어져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식으로 걸러 듣는 심리적 현상이다.

즉,마음 속 믿음의 필터로 걸러진 정보만 수용한다는 얘기다.

부모들은 자식이 어떤 일탈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우선 자식은 제외하고 공범이나 상대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한다는 것.

그래서 "친구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는 얘기를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그렇다면 '잘못 사귄 친구'의 부모는 어떨까?

그들도 똑같이 "친구 잘못 사귀어서…"라고 말할 것이다.

자식들이 패싸움을 벌였을 때 파출소에서 만난 부모들끼리 싸우는 것도 이런 심리다.

자식을 정당화하고 자신도 그런 잘못된 자식을 키웠을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지부조화에 빠지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을 갖게 된다.

확증편향이란 신념과 실제 간의 조화를 이루려는 욕구가 워낙 강해 부정할 수 없는 증거에 직면해도 기존 신념을 유지하거나 공고히 할 수 있게끔 증거를 비판·왜곡·기각할 방법을 찾는 심리를 말한다.

이 경우 증거 부재는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반증이라고 믿는다.

공부의 경우에도,자녀가 공부를 못할 이유를 찾아 낼 수 없다면 (실제로는 이유가 많더라도) 마지막에 찾는 이유가 '노력을 안 해서'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