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경제신문 2월21일자 A39면

영어교육 강화에 대한 논쟁이 다시 일고 있다.

과거에도 이런 논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은 특히 중요하다.

새정부에서 이러한 논쟁의 결과를 상당부분 정책에 반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엔 영어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잘못된 시각이 퍼져있다.

하나 하나 따져보자.

첫째, 영어가 경쟁력 강화에 그렇게 중요하다면 필리핀의 경우 영어를 잘하는데 왜 못살고, 일본은 영어를 못하는데 왜 잘사는가?

이런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영어가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매우 중요하지만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필리핀의 경우 영어는 잘하지만 다른 면에서 취약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일본은 영어는 못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강점이 있기 때문에 잘사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논리에 의한 질문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필리핀이 영어를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일본이 영어까지 잘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러한 논리를 한국에 적용해 보자.

"한국의 경우 영어를 잘 못해도 이 정도로 발전해왔다"는 주장은 소극적이다.

적극적으로 "우리가 영어를 잘한다면 훨씬 더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실제로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영어를 지금보다 훨씬 잘한다면 경쟁력이 어떻게 될 것인지 가정해 보라.

둘째,한국어가 훨씬 훌륭한 언어인데 왜 영어를 잘해야 하나?

한국어가 훌륭한 언어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한글은 가장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문자다.

그런데 글로벌 언어의 조건은 언어 자체의 우수성이 아니라 그 언어에 대한 수요의 크기다.

현재로선 영어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잘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정작 영어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몇인가? 몇 명만 영어를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영어는 현재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배적인 언어다.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의 80%가 영어이고 인터넷 메일은 90%가 영어다.

국제기구의 85%가 영어를 업무용으로 사용하고 유럽기구에서는 99%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식 창조의 중심에 있는 세계 100대 대학 중 영어권에 속한 대학이 75개이고 나머지 대학들도 영어 수업을 늘려가고 있다.

영어를 안 해도 버틸 수 있는 여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넷째,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어야지 영어만 잘하면 뭐하나?

미국 영국 등 영어권 국가 사람들이 깊이 없는 사고를 한다고 할 수 없다.

비영어권에서도 예외는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못하는 사람들보다 사고의 깊이가 얕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우려는 현 상태에서 갑자기 영어를 강요하면 일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고, 수준 높은 영어교육이 정착되면서 자연히 해결될 문제다.

마지막으로 영어를 많이 하면 우리의 민족혼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민족혼을 지키려면 더 적극적으로 세계화에 동참해야 한다.

일본 극우파의 행동으로 일본의 혼을 지킬 수 있는가?

특정 인종주의자나 교조주의자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행동으로 혼을 지킬 수 있는가?

우리말을 보호한다고 라디오를 '소리상자'로 바꾸거나 골키퍼를 '문지기'로 표현하기보다는 우리말을 지키면서 외국어를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글로벌화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게임이다.

외국 문화를 잘 안다고 우리 문화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문화를 더욱 아끼고 전향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영어를 더 잘한다면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고, 우리의 혼(魂)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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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도 심층 영어교육이 필요하다

해설

새 정부가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는 몰입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아직도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 심층적인 영어 교육의 필요성은 영어 공용화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이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있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제도 개편 작업의 일환으로 영어 몰입교육 정책을 내세우면서 이제는 현실의 문제로 대두됐다.

영어 몰입교육과 영어 공용화가 그 내용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좀 더 어린 나이부터 말하기 위주로 학습해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연스럽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만들자라는 면에서는 같은 내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이 같은 실사용 위주의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영어를 10년 가까이 배우고도 영어 방송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며, 영어로 편지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은 한국의 영어교육에 메스를 대는 것이 불가피함을 잘 보여준다.

어떤 제도나 정책도 도입 초기에는 부작용이 없을 수 없으며 이해집단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낳게 마련이다.

반대론자들이 영어 몰입교육에 대해 '한글을 무시하고 영어만을 강조하는 사대주의'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이 그런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런데 길거리에 나가면 온통 영어로 된 간판 천지이고, 신생기업 이름의 90% 이상, 그리고 신제품 이름의 절반 이상을 영어로 짓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같은 주장은 곧 설득력을 잃는다.

문휘창 교수가 칼럼을 통해 영어 몰입교육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종종 내세우는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런 반대를 위한 반대가 갖고 있는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것처럼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서도 집중적인 영어교육은 필요하다.

하다 못해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고 동해가 일본해가 아닌 동해라고 지도에 표기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우리의 입장을 외국인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선 심도 있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에 대해 외국인들이 갖고 있는 오해의 상당 부분이 언어 차이에 따른 불명확한 의사소통 때문임을 이해한다면 심층적인 영어교육이 '우리 것'을 버리는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우리의 문화며 전통이며 사상을 좀 더 정확하게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며, 이것이 바로 우리문화를 제대로 외국에 알리고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는 길이 된다.

우리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심층적인 영어교육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