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모든 활동 목표는 국익의 극대화"
국제정치는 국가들의 끝없는 권력투쟁,
이타적인 상호 관계란 그야말로 헛된 희망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화두는 단연 세계화이다.
세계화라는 한국어도 이제는 촌스럽다는 느낌인지 여기저기에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라는 영어가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조급히 들여다보고 그토록 간절히 참여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세계' 그 본연의 모습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정작 세계화라는 시끌벅적한 담론에 묻혀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시선을 조금만 널리 두면 세계의 진정한 실체를 가늠하기 위해 예전부터 꾸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 즉 국제사회의 진면목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대립하는데, 그 하나가 이상주의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주의적 관점이다.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들이 지나치게 위악적이라고 비난하고, 현실주의자들은 이상주의 세계관을 뜬구름이나 좇는 소리라고 치부한다.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고전이라고 평가되는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hau)의 <국가 간의 정치(Politics Among Nations)>이다.
1948년 출간된 이 책은 판쇄를 거듭하면서 높은 명성 혹은 악명을 쌓아 왔는데,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에게는 진리의 복음이 되었고, 이상주의 국제정치학자들에게는 사악한 마키아벨리의 부활을 알렸다.
1904년 독일에서 태어난 모겐소(1904~1980)는 히틀러 정권의 출현으로 미국으로 망명한다.
미국에 정착해 국제정치학의 대부로 커 가면서 모겐소는 국제정치를 권력 다툼의 경합장으로 파악하는 철저한 현실주의적 관점을 설파하였다.
<국가 간의 정치>에서 모겐소는 인간은 이기적이고 권력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우선 밝힌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근대 유럽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깊은 신뢰와 이타적 발전 가능성에 관한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모겐소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냉정하게 반박하는데, 쉬운 한국 속담으로 옮기자면 "개 꼬리 삼 년 묻어놓아도 여우 꼬리 되지 않는다"라는 요지이다.
즉, 인간의 본성은 어디까지나 이기적이고 권력추구적이며, 이는 문명이 발달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또는 최소한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모든 활동 목표는 자국 국익(National Interest)의 극대화라고 천명한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해타산을 추구하는,영원불변한 인간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국가들의 끝없는 권력투쟁이 곧 국제정치인데, 이타적인 상호 관계란 그야말로 헛된 희망이다.
⊙ 원문 읽기
권력투쟁은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경험적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를 통틀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황에 관계 없이, 국가들은 권력을 다투어 왔다.(중략)
국제정치는 모든 정치와 마찬가지로 권력을 위한 투쟁이다.
국제정치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권력은 항상 직접적인 목표이다.
정치가와 국민들은 궁극적으로 자유, 안보, 번영, 혹은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할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종교적, 철학적, 경제적, 혹은 사회적 이상의 관점에서 정의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러한 이상이 그 자체의 내적인 힘에 의해, 신성한 개입에 의해, 혹은 인간사의 자연적인 발전에 의해 실현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들은 또한 다른 나라 혹은 국제적인 조직들과의 기술적인 협조와 같은 비정치적 수단들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국제정치를 수단으로 삼아 그들의 목표를 실현하려고 노력할 때는 언제나 권력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십자군은 성지를 이교도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기를 원하였다.
우드로 윌슨은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했다.
나치는 동유럽을 독일의 식민지로 만들고 유럽을 지배하고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권력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국제정치의 무대 위에 있는 행위자들이었다.
▶해설=모겐소의 눈에 비춰지는 이상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달콤하기는 하나 실체가 없는 솜사탕을 손에 들고 떼쓰는 철부지에 지나지 않았다.
이상주의 국제정치론이 듣기에는 그럴 듯하게 기분 좋을지 몰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이지 '현실'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겐소는 '실재'하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이론은 '몽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국가 간의 정치> 제1장에는 '현실'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한스 모겐소는 어휘 선택 하나에도 큰 의의를 부여하며 무척 까다롭고 신중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저자는 단순히 '현실주의적(realistic)'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현실 (real)'이라는 표현을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모겐소는 '현실'이라는 말을 할 때 독자에게 조용한 응시를 주문한다.
<국가 간의 정치>는 행간을 읽는 묘미가 색다른 책이다.
특히 'real'이라고 모겐소가 써 놓은 구절에서는 그 행간의 폭이 갑자기 넓어져 행간에 새로운 세계가 입을 벌리고, 그 안으로 빠져들어서 유영하는 느낌마저 든다.
일단은 객관적 국제 상황을 주관적인 욕망을 덜어낸 초연한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무언의 요청이 심대한 행간에 첫 발을 내디디게 한다.
자신이 보고 싶은 바대로 현실을 뜯어고치지 말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책의 제1장에서 느끼는 이 행간의 깊이는 '현실'이라는 표현이 따로 등장하지 않는 다른 장의 논변과 맞물린다.
모겐소는 국제정치론에서 현실적 실효성을 중시하였다.
그래서 근거 없는 선험적이거나 추상적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역사적 선례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공고히 한다.
<국가 간의 정치>의 부제는 '힘과 평화를 위한 투쟁(struggle for power and peace)'인데, 이는 힘의 법칙에 따르는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의 추구는 '현실'에서 수많은 참극을 불러 일으키고야 말았다는 모겐소의 주장이 한껏 반영된 제목이다.
모겐소는 '현실의 평화'는 '현실'에서 실제로 통용되는 진리를 따를 때에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즉, 모겐소가 바라보는 국제정치 세계에서 진리와 의견은 별개이다.
진리는 객관적이며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해명되는 반면, 의견은 단지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동떨어진 편견에 불과하다.
<국가 간의 정치>에서 현실의 평화는 인간의 이기적 권력 추구와 국가의 국익 극대화라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때 성취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여러 역사 연구를 통해 입증되어 있다.
<국가 간의 정치>는 그 뚜렷한 색깔로 인해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 찬반이 확연히 갈린다.
그런데 저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쓰이는 '국익'의 의미가 애매모호하다는 비판은 현실주의자들도 비껴나가기 힘들다.
이는 '국가 권력'를 비롯한 다른 개념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모겐소의 동지와 후학들은 그의 이론을 여러 구체적인 그래프와 수치로 무장시켰다.
하지만 장미빛 환상을 걷어내고 세계의 혼돈스러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모겐소의 날카로운 일갈은 <국가 간의 정치>가 세상에 등장한 지 60년이 된 지금까지도 변함 없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렇다'라는 것과 '그러하고 싶다'라는 것을 제대로 구별해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성숙한 자세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끔 해 준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
국제정치는 국가들의 끝없는 권력투쟁,
이타적인 상호 관계란 그야말로 헛된 희망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화두는 단연 세계화이다.
세계화라는 한국어도 이제는 촌스럽다는 느낌인지 여기저기에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라는 영어가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조급히 들여다보고 그토록 간절히 참여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세계' 그 본연의 모습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정작 세계화라는 시끌벅적한 담론에 묻혀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시선을 조금만 널리 두면 세계의 진정한 실체를 가늠하기 위해 예전부터 꾸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 즉 국제사회의 진면목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대립하는데, 그 하나가 이상주의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주의적 관점이다.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들이 지나치게 위악적이라고 비난하고, 현실주의자들은 이상주의 세계관을 뜬구름이나 좇는 소리라고 치부한다.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고전이라고 평가되는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hau)의 <국가 간의 정치(Politics Among Nations)>이다.
1948년 출간된 이 책은 판쇄를 거듭하면서 높은 명성 혹은 악명을 쌓아 왔는데,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에게는 진리의 복음이 되었고, 이상주의 국제정치학자들에게는 사악한 마키아벨리의 부활을 알렸다.
1904년 독일에서 태어난 모겐소(1904~1980)는 히틀러 정권의 출현으로 미국으로 망명한다.
미국에 정착해 국제정치학의 대부로 커 가면서 모겐소는 국제정치를 권력 다툼의 경합장으로 파악하는 철저한 현실주의적 관점을 설파하였다.
<국가 간의 정치>에서 모겐소는 인간은 이기적이고 권력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우선 밝힌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근대 유럽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깊은 신뢰와 이타적 발전 가능성에 관한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모겐소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냉정하게 반박하는데, 쉬운 한국 속담으로 옮기자면 "개 꼬리 삼 년 묻어놓아도 여우 꼬리 되지 않는다"라는 요지이다.
즉, 인간의 본성은 어디까지나 이기적이고 권력추구적이며, 이는 문명이 발달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또는 최소한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모든 활동 목표는 자국 국익(National Interest)의 극대화라고 천명한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해타산을 추구하는,영원불변한 인간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국가들의 끝없는 권력투쟁이 곧 국제정치인데, 이타적인 상호 관계란 그야말로 헛된 희망이다.
⊙ 원문 읽기
권력투쟁은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경험적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를 통틀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황에 관계 없이, 국가들은 권력을 다투어 왔다.(중략)
국제정치는 모든 정치와 마찬가지로 권력을 위한 투쟁이다.
국제정치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권력은 항상 직접적인 목표이다.
정치가와 국민들은 궁극적으로 자유, 안보, 번영, 혹은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할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종교적, 철학적, 경제적, 혹은 사회적 이상의 관점에서 정의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러한 이상이 그 자체의 내적인 힘에 의해, 신성한 개입에 의해, 혹은 인간사의 자연적인 발전에 의해 실현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들은 또한 다른 나라 혹은 국제적인 조직들과의 기술적인 협조와 같은 비정치적 수단들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국제정치를 수단으로 삼아 그들의 목표를 실현하려고 노력할 때는 언제나 권력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십자군은 성지를 이교도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기를 원하였다.
우드로 윌슨은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했다.
나치는 동유럽을 독일의 식민지로 만들고 유럽을 지배하고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권력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국제정치의 무대 위에 있는 행위자들이었다.
▶해설=모겐소의 눈에 비춰지는 이상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달콤하기는 하나 실체가 없는 솜사탕을 손에 들고 떼쓰는 철부지에 지나지 않았다.
이상주의 국제정치론이 듣기에는 그럴 듯하게 기분 좋을지 몰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이지 '현실'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겐소는 '실재'하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이론은 '몽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국가 간의 정치> 제1장에는 '현실'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한스 모겐소는 어휘 선택 하나에도 큰 의의를 부여하며 무척 까다롭고 신중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저자는 단순히 '현실주의적(realistic)'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현실 (real)'이라는 표현을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모겐소는 '현실'이라는 말을 할 때 독자에게 조용한 응시를 주문한다.
<국가 간의 정치>는 행간을 읽는 묘미가 색다른 책이다.
특히 'real'이라고 모겐소가 써 놓은 구절에서는 그 행간의 폭이 갑자기 넓어져 행간에 새로운 세계가 입을 벌리고, 그 안으로 빠져들어서 유영하는 느낌마저 든다.
일단은 객관적 국제 상황을 주관적인 욕망을 덜어낸 초연한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무언의 요청이 심대한 행간에 첫 발을 내디디게 한다.
자신이 보고 싶은 바대로 현실을 뜯어고치지 말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책의 제1장에서 느끼는 이 행간의 깊이는 '현실'이라는 표현이 따로 등장하지 않는 다른 장의 논변과 맞물린다.
모겐소는 국제정치론에서 현실적 실효성을 중시하였다.
그래서 근거 없는 선험적이거나 추상적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역사적 선례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공고히 한다.
<국가 간의 정치>의 부제는 '힘과 평화를 위한 투쟁(struggle for power and peace)'인데, 이는 힘의 법칙에 따르는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의 추구는 '현실'에서 수많은 참극을 불러 일으키고야 말았다는 모겐소의 주장이 한껏 반영된 제목이다.
모겐소는 '현실의 평화'는 '현실'에서 실제로 통용되는 진리를 따를 때에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즉, 모겐소가 바라보는 국제정치 세계에서 진리와 의견은 별개이다.
진리는 객관적이며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해명되는 반면, 의견은 단지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동떨어진 편견에 불과하다.
<국가 간의 정치>에서 현실의 평화는 인간의 이기적 권력 추구와 국가의 국익 극대화라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때 성취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여러 역사 연구를 통해 입증되어 있다.
<국가 간의 정치>는 그 뚜렷한 색깔로 인해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 찬반이 확연히 갈린다.
그런데 저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쓰이는 '국익'의 의미가 애매모호하다는 비판은 현실주의자들도 비껴나가기 힘들다.
이는 '국가 권력'를 비롯한 다른 개념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모겐소의 동지와 후학들은 그의 이론을 여러 구체적인 그래프와 수치로 무장시켰다.
하지만 장미빛 환상을 걷어내고 세계의 혼돈스러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모겐소의 날카로운 일갈은 <국가 간의 정치>가 세상에 등장한 지 60년이 된 지금까지도 변함 없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렇다'라는 것과 '그러하고 싶다'라는 것을 제대로 구별해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성숙한 자세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끔 해 준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