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셜록 홈즈는 자폐아?

명석한 논리력과 추리력을 갖춘 탐정 셜록 홈즈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감정과 관습에 이끌려 보지 못할 때 셜록 홈즈는 사실들 간의 부자연스런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의심하고 단서를 끄집어낸다.

자폐아 전문가 유타 프리스는 "비록 소설 속의 인물일지라도 셜록 홈즈는 성인이 되어 일반인 속에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자폐아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얼핏 보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성장한 자폐증 성인('아스퍼거'라 한다)은 전통과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고 비정통적이며 '순수'하고 독창적인 두뇌를 소유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위인들의 전기적 기록을 살펴보면 아스퍼거의 특이성이 관찰된다고 하는데 대다수 자폐증 환자들은 아인슈타인도 자신들의 동족으로 간주한단다.

인류는 오랫동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자폐아를 대규모 수용시설에 격리시켜 정신병 환자와 동일하게 취급해왔었다.

자폐아를 위한 특수학교와 캠프가 널리 보급된 건 선진국에서도 채 20년이 넘지 않는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일반인들과 어느 정도 섞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생각의 틀을 바꾼 역사적인 인물들,특히 과학자들 중에서 자폐아가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 템플 그랜딘의 인간관계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40) 아인슈타인도 자폐아였을까?
템플 그랜딘은 자폐아를 둔 부모들 사이에선 유명인이자 우상이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동물과학부 부교수로 일하지만 그녀는 자폐인이다.

생후 6개월부터 어머니의 품에 안기면 뻣뻣하게 굳었고,10개월부터는 '덫에 갇힌 짐승'처럼 어머니를 할퀴었다.

정상적 접촉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분통을 터뜨렸고 잡히는 대로 집어 던졌다.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오직 몰두만이 불안과 혼동, 소음으로부터 그녀를 구원해 주었다고 회고한다.

모래를 한 알 한 알 쳐다보거나 손금을 하루 종일 뜯어보는 일이 바로 그 고마운 몰두였다.

세살 무렵에는 평생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생물학자이자 공학자로 성장했다.

열다섯 살 때 우연히 농장에서 쓰는 기계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 생물학과 공학으로 지평을 넓히게 된 계기였다.

이 역시 그녀에겐 고마운 몰두였다.

특히 반어와 비유,농담을 파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그녀에게 과학과 기술의 언어는 세상으로의 돌파구였다.

과학적 언어는 의미가 분명했고 전제가 단순했다.

학자가 되어 논문도 쓰고 기계도 설계하고 동물도 돌보지만 아직도 인간의 마음만은 그녀에게 신대륙이다.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마음 상태를 알아보거나 반응을 통해 의중을 추리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심지어는 사람의 표정과 말에 담긴 복잡한 의미를 일일이 패턴을 분류하며 학습해 나가기도 한다.

정상인은 그냥 알게 되는 언어와 표정, 몸짓에 담긴 암묵적이며 문화적인 신호들을 그녀는 일일이 학습하지 않으면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그녀에게 정상인들은 텔레파시의 소유자로 보인다.

의미 교환,타협,이해의 속도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부단한 학습을 통해 사람들이 주고받는 사회적 신호의 존재를 알고 있고,추측할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뒤에 숨겨진 수십 가지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자폐증 환자들은 원래 도덕성이 투철하다.

은폐와 위장을 할 만큼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쉽게 사기와 착취의 대상이 되곤 한다. 템플의 경우 고객의 의뢰로 자신이 직접 설계한 기계가 자꾸만 고장나는 사고가 있었다.

템플은 존이라는 남자가 있을 때만 고장이 난다는 상관관계를 발견한다.

상관관계를 관찰하고 분석할 만큼 관찰력과 분석력이 뛰어난 덕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지만 템플이 느낀 것은 자괴감이다.

진작 의심을 했어야 했지만 평소 존의 표정에 드러난 질투심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렬하게 드러내는 적의조차 그녀에게는 표정의 복잡한 패턴변화로만 보일 뿐이다.

⊙ 미적분보다 어려운 얼굴인식

정상적인 갓난아기들은 엄마가 다른 옷을 입고 헤어스타일을 바꿔도 알아본다.

또 엄마 또래의 여자가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난다고 엄마라고 오해하지도 않는다.

정상적인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얼굴인식은 그렇다고 단순한 과업이 아니다.

얼굴인식불능증이라는 신경장애를 앓는 환자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도 낯설어 한다.

자폐증 환자들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얼굴을 인식하듯이 수학적 패턴을 통해 인지한다.

즉 사물을 구별할 때의 방식으로 얼굴을 지각하려고 한다.

물론,자폐아들은 사람의 얼굴에 흥미를 느끼지도 않는다.

이에 비해 정상인들은 갓난아기 때부터 사람의 얼굴에 관심을 가지며 이 관심은 평생 이어진다.

정상적인 사람의 뇌가 얼굴을 알아보는 과업이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발전단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컴퓨터공학자나 프로그래머들은 동영상으로 얻은 사람의 얼굴을 구별하는 컴퓨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갓난아기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미적분을 척척 해결하는 컴퓨터가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은 미적분보다 친구의 얼굴을 알아보는 게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할 탁월한 능력이라는 뜻이다.

대다수 학생들은 이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더라도 말이다.

왜,사람의 아기는 태어나서 1년이 지나 미적분을 풀게 되어있지 않을까?

대신 그보다 훨씬 복잡한 사람의 얼굴을 척척 구별하도록 설계되어 있을까?

학생들로서는 이 뒤바뀜에 불만이 많겠지만 조물주는 가장 적절한 능력을 인간의 아기에게 선물했다고 보아야 한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과 낯익은 사람을 구별해야 했을 것이다.

이 능력은 때로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또 모둠생활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인간들은 사람의 표정을 통해 여러 가지 신호를 읽어낼 수 있어야 했다.

분노,적의,사랑,동정 같은 의미를 바로 바로 읽어 내지 못하면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템플이 텔레파시라고 말한 그 능력은 무리생활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미적분을 못한다고 해서 화가나 씩씩거리는 우두머리에게 농을 걸다가 분노의 표적이 될 위험은 없다.

⊙ 의도에 치우친 해석

대한민국은 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을까?

대회 당시 여론조사에서 상당수의 국민은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마지막 대(對) 스위스전(戰)의 패배는 심판의 오심 때문이라고 믿었다.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사람들로서는 심판의 판정에 억울한 것이 당연하다.

같은 상황에서 심판이 오프사이드를 인정했다면 경기의 내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16강 좌절이 심판의 오심 때문이라는 생각은 지나치다.

주심이 오프사이드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점이 없지만 역시 오프사이드가 아니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당시 상황은 이견이 가능할 만큼 모호했고 심판은 짧은 순간에 판단을 해야만 했다.

인간이 심판을 보는 것을 인정하고 게임에 임하는 한 주심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구나 애매한 상황이라면 주심의 판단이 곧 룰이다.

쌍방이 다투는 그라운드에 그보다 더 객관적인 권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판정이 없었더라면 남은 시간 동안 두 골을 몰아넣어서 결국 경기를 이기고 16강에 진출했으리라는 희망은 신념으로 굳어져선 곤란한 억측에 불과하다.

문제의 심판 오라시오 엘리손도는 그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와 상관없이 이탈리아 대 프랑스의 결승경기 심판으로 발탁된다.

경기운영과 객관성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심판의 오심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스위스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언론들은 심판의 편파 가능성을 보도했었다.

우리와 싸우는 스위스가 FIFA 블레터 회장의 고국이기 때문이다.

심판이 우리 대표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편파적인 오심이라 단정하고 비난할 준비를 미리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심은 있다.

그러나 모든 오심이 의도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경기도 있기 전에 오심을 점친 언론은 모든 일의 배후에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전제에 서 있는 셈이다.

주로 의도로 얼개가 짜인 인과론을 특별히 음모론이라고 부른다.

⊙ 과학은 멀고 의도는 가깝다

템플 교수라면 엘리손도 주심의 판정패턴을 따져 당시의 판단이 평소의 패턴에 어긋났는지를 물었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서는 오프사이드를 선언했지만 그 경기에서만은 유독 달리 행동했다면 심상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아스퍼거가 아닌 우리는 엘리손도의 호각소리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다.

저 사람이 지금 한국팀을 도우려고 하는지 훼방하려 하는지를 말이다.

적과 아(我)가 명확한 스포츠경기에서 의도에 기반을 둔 음모론이 활개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눈빛 하나만 보아도 상대방의 의도를 점치고야 마는 그 능력은 적과 아가 명쾌한 전장에서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냉랭한 과학은 낯설고,뜨거운 의도는 가깝기만 하다.

적어도 텔레파시를 소유한 우리에게는 말이다.

■ 참고도서

▷올리버 색스 「화성의 인류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 「개성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