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지난 10년간 가요계에선 그룹의 멤버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SES가 3명,핑클이 4명이었지만 동방신기·원더걸스처럼 5명은 기본이다.
소녀시대에서 9명으로 불어났고,슈퍼주니어(약칭 슈주)에 이르러선 멤버 수가 무려 13명에 달한다.
그런데 슈주는 참 이상하다.
솔로가수인 이효리나 보아는 혼자 뛰면서 돈도 잘 벌지만,슈주는 넉넉지 않은 방송 출연료를 13명이 나눠야 한다(한 사람 몫은 얼마나 될까?).
슈주를 유지하려면 비용도 많이 든다.
13명을 다 모으기도 쉽지 않고(혹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이동할 때 매니저 코디들까지 합치면 거의 소대 병력인지라 중형버스는 되어야 할 테고.
매끼 식사비만도 장난이 아닐 텐데….
그렇다면 기획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13명짜리 대그룹을 만들었을까?
오늘은 '슈퍼주니어의 경제학'을 통해 많거나 클수록 이익인 경우(규모의 경제)와 적더라도 폭이 넓으면 이익이 되는 경우(범위의 경제)를 알아보자.
⊙ 규모의 경제 vs 범위의 경제
'경제' 수업을 듣는 고교생이면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와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 정도는 다 알 테지만 안 듣는 친구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해 보자.
쉽게 말해,설렁탕 한 가지만 파는 식당이 대형 건물에 주차장까지 갖추었다면 규모의 경제를 노린 것이고,라면과 만두만 팔던 분식점이 메뉴로 만두라면,떡만두국을 추가했다면 범위의 경제를 겨냥한 것이다.
규모의 경제는 많이 생산할수록 평균 생산비(제품 한 개당 원가)가 낮아지는 경우이고,범위의 경제는 한 제품으론 비용을 못 뽑지만 시장이나 사용 범위 등을 널리 확장해 생산비를 낮출 수 있는 경우를 뜻한다.
이때 '경제'라는 말은 이득이 생긴다는 뜻이다.
즉,규모의 경제는 규모가 클수록 이득이고 범위의 경제는 범위가 넓을수록 이득이란 얘기다.
또 기업의 전문화·대형화는 규모의 경제,사업 다각화는 범위의 경제로 볼 수 있다.
기업 간 합병이나 최근 정부 조직개편을 통한 부처 통폐합도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 코카콜라와 LCD
기업의 생산품은 대개 규모의 경제를 갖는다.
자동차회사가 자동차를 몇 백 대 만들려고 공장을 짓지는 않을 것이다.
도요타나 현대자동차는 수백만 대를 만들어 팔아야 이윤을 낼 수 있는 규모이다.
코카콜라 같은 대량 생산제품의 경우 한 병이라도 더 만들어 파는 것이 이득이다.
한마디로 크고 많은 게 좋은 것이다.
반면 범위의 경제에서는 한 아이템을 자동차나 콜라만큼 많이 팔 수는 없지만 활용 범위를 확대하면 규모의 경제에 버금가는 이득을 낼 수 있다.
즉,여러 제품을 생산하는 데 '공통된 투입 요소'가 있을 때 생산 제품의 종류를 확대할수록 유리해진다.
예컨대 GE가 소형 전기모터를 개발해 조리기에 적용한 데 이어 헤어드라이어 선풍기 청소기 믹서 등으로 사용 범위를 넓혀 모터 생산비를 낮춘 사례를 보면 이해가 쉽다.
카지오의 액정화면은 계산기부터 전자시계,전자수첩까지 다양하게 활용된다.
LCD 기술도 일반 컴퓨터 모니터부터 노트북,휴대폰,PMP,MP4 등으로 확장되면서 LG필립스LCD 같은 LCD 전문 생산업체가 생겨난 것이다.
⊙ 슈퍼주니어의 경제학
다시 슈주로 돌아가 보자.
슈퍼주니어는 기획사에 의해 탄생한 아이돌그룹이다.
여기엔 철저히 계산된 경제원리가 숨어 있다.
기획사 입장에서 우선 숫자가 많으니 멤버들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팬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
13명의 미소년들은 제각기 가창력,춤,연기력,말재주,뛰어난 운동능력 등의 개인기를 한두 개쯤은 갖고 있다.
팬들은 취향에 따라 특정 멤버를 점찍어 좋아할 수도 있고,여러 명 또는 전체에 열광한다.
게다가 중국인 멤버까지 포함시켰으니 중국 팬들을 확보하기도 유리하다.
또 TV 프로그램 성격에 맞춰 13명의 멤버를 몇 팀으로 나눠 여러 군데 출연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슈주의 대식구는 경제용어로 설명하면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동시에 꾀하는 것이다.
13명의 멤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솔로가수보다 훨씬 클 테지만,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합치면 전체 파이를 키워 충분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
더 많이,더 넓게,더 다양하게 멤버들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멤버 개개인이 솔로 가수보다 더 벌지는 못하겠지만…).
여러분이 좋아하는 슈주도 그렇듯이 세상만사는 이렇듯 경제원리에 파묻혀 감춰진 부분이 많다.
그 밑뿌리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기른다면 논술이 뭐 대수이겠는가.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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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제 … 金보다 시간이 더 가치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이나,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빌 게이츠나 똑같이 갖고 있는 게 있다.
바로 하루가 24시간이란 사실이다.
과거 서울서 부산까지 걸어서 한 달씩 걸리던 시절엔 시간의 가치가 크지 않았지만,KTX로 3시간 이내면 도착하는 현대사회에선 시간이 금(金)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시간을 줄이거나 보장함으로써 이득을 창출하는 '시간의 경제(economy of time)'란 개념이 부각되고 있다.
도미노피자는 어디든 '30분 내 배달'을 내걸고 단기간 내 급성장했다.
신속한 배달을 싫어할 사람이 없고 갓 구워낸 피자가 맛있는 게 당연하니까.
도미노피자는 고객에게 피자와 함께 시간이라는 가치를 배달한 셈이다.
각종 '24시간 영업'도 마찬가지다.
편의점,사우나·찜질방,감자탕·설렁탕집 등 24시간 영업점은 업주가 자신의 시간을 희생(투자)해 고객의 시간 가치를 높여준다는 점에서 시간의 경제를 도모하는 것이다.
여가산업도 시간과 밀접하다.
바쁜 직장인들이 모처럼 낸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재미있고 짜릿한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바쁘면 바쁠수록 여가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것은 여가 시간의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의미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시간의 가치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폰 등의 경우 처음 개발된 제품에 비해 요즘 제품들은 성능 면에서 비교가 안 될 만큼 뛰어나지만 가격은 오히려 더 싸다.
나온 지 3~4년 지난 구 모델이 처음 출시 가격의 10분의 1로 떨어지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반도체 분야의 '황의 법칙''무어의 법칙'도 IT 분야가 빌 게이츠 말마따나 '생각의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음을 웅변한다.
IT 제품 사용자 중에는 이른바 '얼리 어답터(early adaptor)'들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품 가격이 떨어질 것을 뻔히 알지만 새로운 기기나 기능이 강화된 신제품이 나오면 당장 사서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얼리 어답터들에게 시간은 돈보다 훨씬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가요계에선 그룹의 멤버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SES가 3명,핑클이 4명이었지만 동방신기·원더걸스처럼 5명은 기본이다.
소녀시대에서 9명으로 불어났고,슈퍼주니어(약칭 슈주)에 이르러선 멤버 수가 무려 13명에 달한다.
그런데 슈주는 참 이상하다.
솔로가수인 이효리나 보아는 혼자 뛰면서 돈도 잘 벌지만,슈주는 넉넉지 않은 방송 출연료를 13명이 나눠야 한다(한 사람 몫은 얼마나 될까?).
슈주를 유지하려면 비용도 많이 든다.
13명을 다 모으기도 쉽지 않고(혹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이동할 때 매니저 코디들까지 합치면 거의 소대 병력인지라 중형버스는 되어야 할 테고.
매끼 식사비만도 장난이 아닐 텐데….
그렇다면 기획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13명짜리 대그룹을 만들었을까?
오늘은 '슈퍼주니어의 경제학'을 통해 많거나 클수록 이익인 경우(규모의 경제)와 적더라도 폭이 넓으면 이익이 되는 경우(범위의 경제)를 알아보자.
⊙ 규모의 경제 vs 범위의 경제
'경제' 수업을 듣는 고교생이면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와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 정도는 다 알 테지만 안 듣는 친구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해 보자.
쉽게 말해,설렁탕 한 가지만 파는 식당이 대형 건물에 주차장까지 갖추었다면 규모의 경제를 노린 것이고,라면과 만두만 팔던 분식점이 메뉴로 만두라면,떡만두국을 추가했다면 범위의 경제를 겨냥한 것이다.
규모의 경제는 많이 생산할수록 평균 생산비(제품 한 개당 원가)가 낮아지는 경우이고,범위의 경제는 한 제품으론 비용을 못 뽑지만 시장이나 사용 범위 등을 널리 확장해 생산비를 낮출 수 있는 경우를 뜻한다.
이때 '경제'라는 말은 이득이 생긴다는 뜻이다.
즉,규모의 경제는 규모가 클수록 이득이고 범위의 경제는 범위가 넓을수록 이득이란 얘기다.
또 기업의 전문화·대형화는 규모의 경제,사업 다각화는 범위의 경제로 볼 수 있다.
기업 간 합병이나 최근 정부 조직개편을 통한 부처 통폐합도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 코카콜라와 LCD
기업의 생산품은 대개 규모의 경제를 갖는다.
자동차회사가 자동차를 몇 백 대 만들려고 공장을 짓지는 않을 것이다.
도요타나 현대자동차는 수백만 대를 만들어 팔아야 이윤을 낼 수 있는 규모이다.
코카콜라 같은 대량 생산제품의 경우 한 병이라도 더 만들어 파는 것이 이득이다.
한마디로 크고 많은 게 좋은 것이다.
반면 범위의 경제에서는 한 아이템을 자동차나 콜라만큼 많이 팔 수는 없지만 활용 범위를 확대하면 규모의 경제에 버금가는 이득을 낼 수 있다.
즉,여러 제품을 생산하는 데 '공통된 투입 요소'가 있을 때 생산 제품의 종류를 확대할수록 유리해진다.
예컨대 GE가 소형 전기모터를 개발해 조리기에 적용한 데 이어 헤어드라이어 선풍기 청소기 믹서 등으로 사용 범위를 넓혀 모터 생산비를 낮춘 사례를 보면 이해가 쉽다.
카지오의 액정화면은 계산기부터 전자시계,전자수첩까지 다양하게 활용된다.
LCD 기술도 일반 컴퓨터 모니터부터 노트북,휴대폰,PMP,MP4 등으로 확장되면서 LG필립스LCD 같은 LCD 전문 생산업체가 생겨난 것이다.
⊙ 슈퍼주니어의 경제학
다시 슈주로 돌아가 보자.
슈퍼주니어는 기획사에 의해 탄생한 아이돌그룹이다.
여기엔 철저히 계산된 경제원리가 숨어 있다.
기획사 입장에서 우선 숫자가 많으니 멤버들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팬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
13명의 미소년들은 제각기 가창력,춤,연기력,말재주,뛰어난 운동능력 등의 개인기를 한두 개쯤은 갖고 있다.
팬들은 취향에 따라 특정 멤버를 점찍어 좋아할 수도 있고,여러 명 또는 전체에 열광한다.
게다가 중국인 멤버까지 포함시켰으니 중국 팬들을 확보하기도 유리하다.
또 TV 프로그램 성격에 맞춰 13명의 멤버를 몇 팀으로 나눠 여러 군데 출연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슈주의 대식구는 경제용어로 설명하면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동시에 꾀하는 것이다.
13명의 멤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솔로가수보다 훨씬 클 테지만,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합치면 전체 파이를 키워 충분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
더 많이,더 넓게,더 다양하게 멤버들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멤버 개개인이 솔로 가수보다 더 벌지는 못하겠지만…).
여러분이 좋아하는 슈주도 그렇듯이 세상만사는 이렇듯 경제원리에 파묻혀 감춰진 부분이 많다.
그 밑뿌리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기른다면 논술이 뭐 대수이겠는가.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
시간의 경제 … 金보다 시간이 더 가치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이나,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빌 게이츠나 똑같이 갖고 있는 게 있다.
바로 하루가 24시간이란 사실이다.
과거 서울서 부산까지 걸어서 한 달씩 걸리던 시절엔 시간의 가치가 크지 않았지만,KTX로 3시간 이내면 도착하는 현대사회에선 시간이 금(金)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시간을 줄이거나 보장함으로써 이득을 창출하는 '시간의 경제(economy of time)'란 개념이 부각되고 있다.
도미노피자는 어디든 '30분 내 배달'을 내걸고 단기간 내 급성장했다.
신속한 배달을 싫어할 사람이 없고 갓 구워낸 피자가 맛있는 게 당연하니까.
도미노피자는 고객에게 피자와 함께 시간이라는 가치를 배달한 셈이다.
각종 '24시간 영업'도 마찬가지다.
편의점,사우나·찜질방,감자탕·설렁탕집 등 24시간 영업점은 업주가 자신의 시간을 희생(투자)해 고객의 시간 가치를 높여준다는 점에서 시간의 경제를 도모하는 것이다.
여가산업도 시간과 밀접하다.
바쁜 직장인들이 모처럼 낸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재미있고 짜릿한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바쁘면 바쁠수록 여가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것은 여가 시간의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의미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시간의 가치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폰 등의 경우 처음 개발된 제품에 비해 요즘 제품들은 성능 면에서 비교가 안 될 만큼 뛰어나지만 가격은 오히려 더 싸다.
나온 지 3~4년 지난 구 모델이 처음 출시 가격의 10분의 1로 떨어지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반도체 분야의 '황의 법칙''무어의 법칙'도 IT 분야가 빌 게이츠 말마따나 '생각의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음을 웅변한다.
IT 제품 사용자 중에는 이른바 '얼리 어답터(early adaptor)'들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품 가격이 떨어질 것을 뻔히 알지만 새로운 기기나 기능이 강화된 신제품이 나오면 당장 사서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얼리 어답터들에게 시간은 돈보다 훨씬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