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길잡이] 권호걸의 통합논술 뽀개기 ⑥
'구체적인 사실을 일반화시켜라'


1. 들어가며

이 코너를 연재한 지도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나름대로 기존의 논술 지면 해제강의와는 다른 글을 쓰려고 하는데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가르쳐 주고 싶은 내용이 100이라면 공개하고 있는 내용은 1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들도 이 지면 강의를 힌트삼아 자신만의 논술 비법을 만들어 나간다면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사실 연일 난리다.

대입 자율화 방안을 놓고 온갖 말들이 난무한다.

각 대학은 '자율화'라는 난생 처음의 경험을 하면서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동상이몽'이라는 사자성어가 각 대학 측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이 나라에서 교육의 의미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생님이 본 현실이 무엇이냐는 강의의 주제와는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장황하게 쓸 수는 없지만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사상 없는 숫자 놀음=대한민국 고등교육'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울해지는 얘기다.

각설하고,오늘 문제를 보자.

다음 제시문을 읽고 주어진 문제에 대해 논술하시오. (20점,600±60자)

착함대학교 학생인 금자는 한 여행 동아리의 회원이었다.

그는 동아리의 임원도 아니고 공식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은 것도 아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다른 회원들이 하기를 꺼리는 세세한 뒤치다꺼리를 챙겨서 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회원들 사이에서 귀찮은 일은 당연히 금자의 몫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생겨났으며, 금자에게는 '친절한 금자씨'라는 별명까지 붙여졌다.

사실 금자가 이런 귀찮은 일을 좋아서 떠맡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른 회원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기대하는 역할이 금자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미 정형화되어 버린 마당에, 그것을 새삼스럽게 부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회원들이 자신을 '친절한 금자씨'라고 치켜세워 주는 것도 그리 기분 나쁜일은 아니었으므로, 별다른 불평없이 해오던 일을 계속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금자에게 피치 못할 다급한 일이 생겼다.

금자가 지금까지 동아리에서 관습적으로 해오던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누군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할 상황이었다.

금자는 자신이 모임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관습적으로 해온 일이 자신의 공식적 업무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에게 그 일을 맡기거나 지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자리를 비운다면 동아리의 구성원 가운데 어떤 사람이 당연히 그 일을 하리라고 여겼다.

그래서 다른 회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수련회에 불참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동아리의 여타 구성원들은 금자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

금자의 역할을 대신한 사람이 동아리 회원 가운데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동아리의 수련회 일정에 큰 차질이 빚어져 버렸다.

사소한 뒤치다꺼리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음으로 해서 벌어진 결과는 매우 심각했다.

동아리 회원들은 모두 금자를 비난하며 사고의 책임을 금자에게 전가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충실하게 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금자는 억울했다.

자신은 동아리의 임원이 아니고 공식적인 역할을 맡은 적도 없는 평범한 회원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해온 일은 선의에 따라 대가를 받지 않고 해온 자발적인 봉사였다.

따라서 상황이 이렇게 된 데 대해 정작 비난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그동안 귀찮은 일을 금자에게 떠넘기고 모른 척했던 동아리의 여타 회원들이라고 생각했다.

[문제] 위의 지문에 제시된 '친절한 금자씨'의 사례를 통해서,여행 동아리의 사고에 대한 금자의 책임 여부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2. 구체적인 사실을 일반화시켜 생각하라.

이 문제는 현재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의 에세이 문제 형태하고도 비슷하다.

깔끔하면서도 논증능력을 효과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실 오늘 실은 문제는 원래 대학 측에서 물어본 것을 약간 변형한 형태다.

그 이유는 원래보다 이렇게 문제를 수정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논증 훈련을 하는데 더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래 문제는 논점 두 개를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논증을 펼칠 것을 요구하는 형태였다.

대학 측에서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해 구체적인 논점을 만들어 준 듯하다.

물론 채점의 객관성과 편이성도 고려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위의 변형한 문제를 푸는 것이 더 낫다.

자신의 논증 능력을 테스트하기에 더욱 좋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지 한번 살펴보자.

오늘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구체적인 사실을 일반화시켜라'라는 것이다.

제시문의 내용은 굉장히 단순하다.

굳이 요약할 필요는 없다.

바로 논점을 생각해보자.

제시문은 굉장히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답해야 할 내용은 하나다.

여행 동아리가 겪은 사고에 대해 금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의 여부만 답해주면 된다.

어떤가?

쓸 말이 생각나는가?

만일 여러분들이 이 문제를 답하는 과정에서 금자의 사례에 치중하면서 글을 쓴다면 굉장히 진부한 글이 되기 십상이다.

약간 빗나가는 감이 없지 않지만,예를 들어보자. 다윈의 진화론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내용으로 압축된다.

① 생물들은 서로 다르고,이러한 변이(變異:variation)는 (적어도 그 일부는) 자손에게 유전된다.

② 생물들은 환경과 식량이 부양해줄 수 있는 개체수보다 더 많은 개체수를 낳는다.

③ 같은 종 내의 생존경쟁이 불가피하다.

④ 그 과정에서 환경에 보다 유리한 개체들은 살아남아 자신의 뛰어난 형질들을 자손들에게 전달한다. (자연선택)

⑤ 이 과정이 오래 계속되면 불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은 멸종하고 유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은 하나의 종으로 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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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자신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무려 490쪽에 걸쳐 이 내용을 증명하였다.

물론 책 내용의 대부분은 각종 사례이다.

허무하지 않는가? 490쪽에 걸친 내용 전부가 고작 위의 다섯 줄이라는 사실이….

따라서 오늘날 「종의 기원」은 상상을 초월하게 지루한 책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다윈 당시에는 어떠했을까?

과연 오늘날처럼 저 책을 사람들이 지루하게 읽었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그 당시 굉장한 반향을 일으킨 책이었다.

그 차이가 무얼까? 바로 새로움과 익숙함의 차이다.

그 당시에는 창조론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종교를 떠나서라도 창조론이 훨씬 과학적인 근거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당시의 일반 상식이었던 '창조론'을 뒤집는 다윈의 '진화론'은 상당한 흥미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일 어떤 사람이 검정색 차를 가리키면서 '저 차는 검은색이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 시간 동안 설명을 한다고 해보자.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그 이유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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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음 그림은 어떤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다.

그림 속의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선언을 함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움을 주고 있다.

이 그림은 엉뚱하긴 해도 지루하지 않다.

도대체 이 얘기들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문제로 돌아가보자.

만일 학생이 답안을 단순히 금자씨의 행동여부에 대한 찬반 논의로만 글을 쓴다면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사례에 치중하면서) 그 글은 진부한 글이 되기 쉽다.

왜냐하면 이미 제시되어 있는 사례만을 가지고 그 안에서만 맴돌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례를 일반화시켜 주는 것이 좋다.

즉 이 문제를 가지고 어떠한 일반적인 문제를 도출해낼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문제가 떠오르면 그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구체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새로움'을 도출하는 것이 훨씬 더 깊은 논의를 가능케 한다.

그리고 더 쓸 거리도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일반화를 일단 시켜놓으면 다양한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고 생각도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두 학생이 싸웠다'라는 사례를 가지고 글을 쓴다고 해도,단순히 두 사람에만 이야기를 국한시킨다면 글 자체의 수준이 낮아진다.

그러나 사례를 가지고 (논점일탈이 아니라면) '학교폭력'이라든지 '청소년 시기의 특징'이라든지 등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 낸다면 훨씬 더 다양하고 심도깊은 논의를 할 수 있다.

이것이 '수평적 사고법'의 한 예이다.

그리고 논술시험 영역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래의 답을 보기 전에 먼저 여러분들이 논점을 추출해보기를 바란다.

오늘 문제에서 추출할 수 있는 논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 개인에 대해 집단의 여타 구성원들(가족, 친구, 동표 등)이 생각하는 모습과 기대하는 역할이 그 개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만들어져서 계속 유지되어 왔다면, 그 개인은 집단 구성원들의 그런 시각이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책임이 있는가, 없는가?

둘째,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공식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나 정상적인 협의를 거치지 않고 암묵적·관습적으로 인정되어 온 일들은 어느 정도까지 유효하며 또 구속력이 있는가?

그리고 전술했듯이 원래 대학이 낸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문제] 위의 지문에 제시된 '친절한 금자씨'의 사례를 통해서 아래의 두 가지 논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논점을 바탕으로 여행 동아리의 사고에 대한 금자의 책임 여부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아래의 두 가지 논점에 관한 자신의 의견이 서술 속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 600±60자)

어떤가?

막연히 금자씨가 져야 할 책임의 내용에 대해 글을 쓰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쓴다면 훨씬 더 좋은 글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 문제는 본래 묻는 것 자체가 이런 식으로 미리 논점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한 형태이고 중요한 사고법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문제를 다소 변형시켜 설명한 것이다.

또한 위에서 설명한 내용이 출제자가 문제를 구성하면서 여러분들에게 묻고자 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부디 잘 활용하길 바란다.

3. 마치며

오늘 살펴 본 것은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어떻게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가 논술 문제를 풀 때,하나의 사례를 보고 그 속에서 어떤 일반적인 원리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건 곧 출제자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열쇠일 가능성이 높다.

다음은 오늘 살펴 본 사고법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문제이다.

한 번 풀어보길 바란다.

제시문을 읽고 해삼,멍게,말미잘,해파리의 의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다음,나머지 세 의견을 적절히 비판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의견의 정당성을 보완 설명하시오.(600±60자)

바다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해삼, 멍게, 말미잘, 해파리는 기말시험을 앞두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이들은 각각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과목을 집중적으로 준비해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꼴뚜기가 자기도 스터디 그룹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꼴뚜기는 위의 네 명이 모두 자신 없다고 생각하는 한 과목을 아주 잘 하는 학생이었다.

꼴뚜기가 스터디 그룹에 들어온다면 그 과목의 시험공부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다만 꼴뚜기가 평소 이기적인 성격으로, 규칙을 마음대로 무시하는 행동을 보여서 여러 학생들로부터 배척을 당해온 점이 문제되었다.

네 학생들은 고민에 빠졌다.

이들의 의견은 각각 다음과 같이 나누어졌다.

해삼=꼴뚜기가 비록 문제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스터디 그룹에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점이 있다고 해서 친구를 배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설령 꼴뚜기가 잘하는 과목이 없다고 해더라도, 친구로서 그를 스터디 그룹에 받아들여 함께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멍게=꼴뚜기는 상습적으로 규칙을 어기는 학생이다.

따라서 그가 잘하는 과목이 있거나 없거나, 스터디 그룹의 구성에 도움이 되거나 안 되거나 상관없이 그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말미잘=우리 스터디 그룹은 꼴뚜기가 잘하는 그 과목에 결정적으로 취약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만이 있더라도 참고 꼴뚜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어차피 이 모임은 기말시험을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목적을 위해서라면 불편함을 잠시 감수할 필요가 있다.

해파리=구성원 네명의 의견이 이렇게 갈라지는 상황에서 꼴뚜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꼴뚜기를 받아들이게 되면 스터디 그룹 구성원의 화합이 깨지게 된다.

스터디 그룹도 규모는 작지만 하나의 공동체이고,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 간의 화합니다.

권호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통합논술연구위원 mega@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