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38) 엄마와 교사들이 싫어하는 과학적 발견
'애들이 줄었어요'라는 영화 제목과 혼동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면 백화점 바닥에 주저앉아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아이.

집에는 장난감이 넘쳐나지만 사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심지어는 엄마와 아빠를 때리기도 한다.

달래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지만 소용없다.

아동심리 전문가가 모니터로 아이와 아빠, 그리고 엄마의 오랜 실랑이를 관찰하고 처방을 내린다.

장난감을 사주기 전에 규칙을 정하라.

예를 들면 밥을 세 끼 다 잘 먹고 누나와 싸우지 않으면 장난감을 사주되, 2주에 한 개로 한정해서 본인이 고르게 하라.

또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너저분한 장난감은 모두 버리거나 재활용센터에 보내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떼를 써도 들어주지 말아라 등.

카메라는 한 달이 지나 변화된 아이를 비친다.

원하는 장난감을 갖기 위해 약속을 지키고 여러 장난감을 면밀히 살펴 선택하고 선택한 장난감을 오랫동안 갖고 놀기 시작한다.

해피 엔딩.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겐 복음과 같은 프로그램이다.

⊙ 쌍둥이 괴담

수능 점수를 받고 대학과 전공을 고르는 일은 매우 난해한 퍼즐이다.

다행히 합격해서 신입생 환영회에 나갔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같은 과의 한 해 선배는 누가 봐도 자신과 닮았다.

나중에 알게 된 엄청난 사실은 자신에게는 태어나자마자 헤어진 쌍둥이 동생이 있고 같은 과에서 만난 그 선배가 바로 자신의 일란성 쌍둥이였다.

몇 개의 선택안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고른 대학과 전공이 알고 보니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로 구성된 생명체가 1년 전에 찾아낸 최선의 선택이었다면….

이 괴담은 물론 지어낸 이야기지만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흘러넘친다.

유명 영화배우 말론 브랜도는 한 인터뷰에서 영화배우가 되도록 한 어린 시절의 결정적 경험을 묻는 질문에 "어릴 적 헤어진 자신의 일란성 쌍둥이는 자신과 똑같은 모발 영양제를 쓰고, 똑같은 담배를 피우고, 같은 해수욕장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대답했다.

블랜도는 자신이 영화배우가 된 이유 중 몇 퍼센트가 유전적 특징에서 연유하는지 혹은 어린 시절 경험이나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일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논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게끔 표현했다.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쌍둥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왜 그럴까?

변인(變因)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적으로 동일하다.

일란성 쌍둥이가 동일한 선택을 했다면 유전자 때문일까 환경 때문일까?

그 자체로는 알 수 없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도 동일하지만 어릴 적 환경도 유사하다.

그러나 만약 태어나자마자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라면?

이들이 닮았다면 유전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타당하다.

이란성 쌍둥이는 유전적으로는 보통의 형제와 같지만 환경적으로는 더 유사하다.

첫 아이 때 어려웠던 살림형편이 둘째가 태어날 때는 나아지는 경우가 있듯이, 형제 간에는 시간의 차이 만큼 환경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이 자란 입양된 형제의 경우 환경은 보통 형제만큼 유사하지만 유전자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헤어져 자란 형제는 반대로 유전자는 2분의 1이 유사하지만 환경은 다르다.

IQ, 학업성적, 성향, 적성을 측정하는 기법들은 생각보다 체계적이어서 한 사람에게서 일관성 있는 값이 나온다.

이런 지표로 같이 자란 일란성 쌍둥이와 헤어져 자란 일란성 쌍둥이를 비롯해 위에 나열된 여러 쌍을 조사했다.

각 커플의 형제(쌍둥이 형과 동생의 IQ) 간 유사성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

각각의 쌍 중 가장 닮은 커플에서 가장 다른 커플까지 나열해 보면 △같이 자란 일란성 쌍둥이 △헤어져 자란 일란성 쌍둥이 △같이 자란 이란성 쌍둥이와 같이 자란 형제 △헤어져 자란 이란성 쌍둥이와 헤어져 자란 형제 △같이 자란 입양 형제 순이다.

그런데 같이 자란 일란성 쌍둥이와 헤어져 자란 일란성 쌍둥이의 격차는 크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란성 쌍둥이나 보통의 형제와의 격차도 거의 없다.

헤어져 자란 형제나 같이 자란 형제와의 격차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같이 자란 입양 형제는 무작위로 뽑은 남만큼이나 서로 달랐다.

⊙ 빌어먹을 통계, 아니 유전자

헤어져 자란 쌍둥이 형제가 같이 자란 형제만큼이나 IQ가 유사하다는 통계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입양된 형제는 남과 다름없을 만큼 다를까?

이 통계는 인성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은 일관되게 뒷받침해주고 있지만 형제가 공유하는 환경의 영향은 무시하고 있다.

이 통계들이 악의적이리만큼 무시하는 공유된 환경이란 이런 것이다.

결손 가정이냐 부모가 다 있느냐, 부모의 사이가 원만하냐 아니냐, 부모가 대학을 졸업했느냐 고등학교 중퇴자냐, 육아철학이 독재적이냐 자유방임적이냐, 엄마가 아이를 유아원에 맡기고 회사를 다녔는지 아니면 하루 종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유치원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맞아 주는지 등을 포함한다.

이런 환경은 한집에서 자라는 형제들이 대체로 공유하며 쌍둥이들에겐 거의 동일하다.

30년 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여러 통계는 이런 환경이 장기적으로 미치는 일관성 있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인성에 미치는 유전자의 비율이 대체로 40~50%인 반면, 육아법이나 육아 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많아 봐야 10%이며 일관되게는 '0'에 가깝게 나온다.

입양 형제의 IQ는 언제 측정하느냐에 따라 상관 정도가 다른데, 청소년기 이전에는 같이 자란 형제와 유사성이 보이다가도 성인이 된 이후 측정해 보면 유사성이 실종된다.

육아나 육아법이 청소년기에는 어느 정도(대략 10% 미만) 영향을 미치다가 성인이 되면 의미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학교 선생님들에게 이 이야기는 혐오스럽게 들린다.

심지어 학생들도 거부감을 드러낸다.

하물며 아이 도시락에서부터 학원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엄마들에게야!

이 글이 읽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미국의 중산층 엄마들에게 격한 반발을 일으켰던 과학자들의 발견은 사실 유전자의 강력한 영향 때문이 아니었다.

엄마의 육아법이 아이에게 미치는 장기적으로 일관된 영향이 전무하다는 사실은 현대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전제들을 부정하듯이 보인다.

가정과 학교는 내일의 건강한 시민을 키워내는 중요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미치는 영향이 유전자보다 적고 심지어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과학자들의 발견은 '무의미하다'가 아니지만 통계의 미묘한 의미를 구별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그게 그 뜻이라고 생각한다.사실은 이런 시스템들의 한계적인 영향이 미미할 뿐이다)

⊙ 과학은 사례들의 패턴

엄마들은 당장이라도 사례를 들어 반박한다.

말이 늦었던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었더니 말문이 트였던 경험에서부터 수학에 취미가 없던 아이가 과외선생님을 잘 만나 수학성적이 오른 이야기까지.

육아에 부지런한 엄마들일수록 엄마의 관심과 선택이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엄마의 육아법이 미치는 영향이 제로라니.

그럼 아이를 막 키워도 된다는 말인가?

이 이야기들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사실 오래전부터 증거는 쏟아졌다.

그러나 이를 찾아낸 과학자들조차도 이 증거의 의미를 믿지 못했다.

그들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계속 나오고 있으며 반대 사례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엄마가 책을 많이 읽어주는가는 아이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집에 책이 있는가는 영향을 미친다.

학생의 폭력 성향과 부모가 정기적으로 체벌했는가는 별로 관계가 없다.

그러나 부모의 범죄경력은 영향을 미친다.

부모가 무엇을 했는가는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보다 훨씬 영향이 적었다.

그리고 유전자의 영향을 빼고 나면 일란성 쌍둥이도 남만큼이나 달랐다.

유전자를 압도해서 사람을 각기 다르게 만드는 영향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 일란성 쌍둥이나 형제들이 공유했던 부모가 제공한 육아나 성장환경은 분명히 아니다.

⊙ 아이는 그냥 나둬도 달라진다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아동심리학자 어느 누구도 엄마나 아빠의 성향을 문제 삼지 않는다.

짜증이 많은 아이의 아빠가 알고 보니 '왕짜증'이다.

아빠가 성격을 고친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냥 그 성향이 유전되었으며 아이도 아빠처럼 평생 안고 가야 할 문제다.

이게 방송의 결론이라면 시청자의 항의는 물론이거니와 당장 광고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잘못된 교육보다는 부모의 성향을 닮았기 때문일 확률이 10배는 더 높다.

그래도 전문가의 처방으로 아이가 변하지 않았느냐고?

학생들은 누구보다 답을 잘 알고 있다.

관대한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통사정을 해도 조용히 하지 않던 껄렁한 친구들이 무서운 그 선생님만 들어오면 거의 부동자세다.

껄렁한 친구들의 성향이 바뀐 걸까?

TV는 한 달을 문제 삼지만 과학은 10년, 20년의 추세를 관찰한다.

한 달 만에 고쳤다는 아이의 버릇은 아무 조치가 없어도 1년 안에 없어졌을지 모르며, 또 고친 듯이 보이지만 언제고 다시 튀어 나올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10년을 기다려 그 아이들을 다시 찾아 전문가의 예언이 그동안에도 유효했다는 걸 증명한다면 그거야말로 세계적인 과학적 발견이다.

역시 TV는 드라마가 숨겨진 오락에는 적합하지만 냉냉한 과학적 성찰에는 젬병이다.

■ 참고서적

▷스티븐 핑거 '빈 서판'

▷주디스 리치 해리스 '개성의 탄생','The Nurture Assumption'

▷스티븐 레빗 외 '괴짜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