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정부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국정브리핑' 사이트에 한 국정넷포터의 글이 올라왔다.

"한명숙 의원이 총리로 지명됐습니다.

언론에서 총리 지명자, 총리 후보자, 총리 후보 지명자, 총리 피지명자로 부르고 있는데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로 한명숙 의원을 지명하자 언론에서 그를 여러 가지로 지칭한 데 따른 표기상의 혼란을 지적한 것이다.

▶2007년 12월 말.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정부조직 개편안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들은 다시 새 대통령의 각료 임명 과정을 보도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총리 지명자의 추천을 거쳐 각료 지명에 들어가고,인사 청문 절차가 시작된다."

여기서도 '총리 지명자'란 표현은 여전히 등장한다.

우리가 어느새 익숙해져 무심코 쓰고 있지만 정색하고 들여다보면 아주 이상하게 쓰이는 말 가운데 하나가 '지명자'이다.

총리를 '지명하는' 사람은 대통령임을 누구나 알 수 있겠는데, 그러면 '총리 지명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대통령?

아니면 지명 받는 당사자?

이 역시 당연히 대통령이 되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익히 아는 상식으로서의 판단과 말의 과학적 쓰임새를 토대로 하는 판단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이다.

가령 '국무총리 지명자 한명숙 의원'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한명숙 의원이 국무총리에 지명됐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우리 어법상으로는 '국무총리를 지명하는 사람이 한명숙 의원'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통사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지명(指名)이란 것은 '여러 사람 가운데 누구의 이름을 지정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면 지명자는 어떻게 될까.

'지명'은 할 수도 있고 될(받을) 수도 있다.

지명자는 '지명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것인가 '지명 받는 사람'을 뜻하는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영어에선 주체와 객체가 nominator와 nominee로, 행위의 농동과 피동은 nomiante와 nominated로 간명하면서도 엄격히 구분해서 쓰는 말이지만 우리말에서는 아쉽게도 잘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말 자체가 뒤섞여 쓰이기도 하고 개념도 모호해져 결국 '대충' 뜻이 통하는 선에서 어정쩡하게 쓰고 있는 실정이다.

'지명'은 '임명'과 그 쓰임새가 같다.

임명(任命)이란 '일정한 지위나 임무를 남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 역시 임명할 수도 있고 임명될(받을) 수도 있다.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명하는 것이고,국무총리는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는 것이다.

이 말은 비교적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분명해 임명자라고 하면 대통령임이 드러난다.

그런데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는 아쉽게도 정작 관계설정이 분명한 임명자란 말은 올리지 않고 지명자만 올려놨다.

지명자의 풀이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지명자란 '여러 사람 가운데 누구의 이름을 지정하여 가리키는 자'로 돼 있다.

이 풀이는 모국어 화자라면 얼핏 보아 지명자가 '지명하는 사람'임을 나타낸다.

하지만 문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가리킴을 받는 자'로 해석될 수도 있게 풀어놨다.

더욱 문제인 것은 용례에서는 지명자를 '지명 받는 사람'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료 지명자 임명 동의안/ 대법관 지명자에 대한 자격 심사를 하다/ 지명자 없이 경선을 치르다' 따위가 그것이다.

'지명자'의 풀이도 어정쩡하게 해놓은 데다, 통상적인 언어 관념과는 다른 용례의 제시 등으로 인해 이 단어의 쓰임새는 급격히 한쪽으로 쏠림현상을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이 단어를 일반적인 관념의 잣대로 보면 '지명하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동시에 특수한 시사적 쓰임새로 말할 때는 '지명 받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모순적 구조로 머릿속에 담아두게 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