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길잡이] 권호걸의 통합논술 뽀개기 ④
논술적 독해란 무엇인가?


- 구조적 독해를 중심으로

1. 들어가며

논술은 어느 정도 패턴이 정해져 있는 영어, 수학과는 달리 끝없는 사고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힘들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과목의 특성이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배우는 사람, 특히 시험을 봐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인식 차이를 종종 수업시간에 느낀다.

대학 논술시험 문제 중 어떤 문제는 필자가 생각해도 '이건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문제를 풀어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예시 답안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답을 써도 이게 과연 맞는 답인가 하는 의문을 갖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필자가 쓴 글이 출제자가 요구한 답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경우는 그 답으로 인해 문제의 논리구조가 드러날 때이다.

제시문이라는 자신의 옷을 모두 벗고,알몸인 출제자의 논리만을 보여줄 때…, 그 느낌이란,참….

'내가 논술선생을 하기 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신이 나서, 수업시간에 아이들한테 그 논리구조를 보여줄 때 필자는 '굉장히 재미있지 않니?'라는 말을 연발한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아이들의 시선은 '당혹, 걱정' 그 자체이다.

그때 비로소 현실을 보게 된다.

내가 느끼는 그 재미는 아이들이 느끼기 힘든 감정이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이걸로 시험을 치러야 하니까.

나하고는 입장이 다르니까.

마치 전쟁 게임은 즐거운데, 실제 전쟁을 하는 것은 힘들고 괴로운 일인 것처럼, 논술도 마찬가지구나…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부담을 갖고 문제를 보면 생각도 잘 안 굴러간다.

더구나 논술은 사고가 생명이다.

어렵다는 부담감만을 느끼지 말고, 오늘도 출제자의 논리에 도전한다는 호승심을 가지고 문제에 덤벼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논술은 껍질을 벗어던진 채,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사설이 길었다.

본론으로 넘어가자.

2.구조적 독해를 중심으로

오늘 살펴볼 문제는 한양대 2008학년도 2차 모의고사 지문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논술 문제를 깔끔하게 만드는 대학들이 몇 군데 있는데, 한양대도 그중 하나다.

문제를 살펴보자.

가] 보스니아와 르완다 등지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할 때처럼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지를 때, 우리는 그들을 짐승이라 부른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거나 가난한 자를 돕는 것과 같은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 그러한 행동이 인간의 고상한 도덕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기독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듯 악마와 천사 사이에 머물고 있는 인간 본성의 이중성이라는 주제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두 친척 동물인 침팬지와 보노보를 살펴봄으로써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침팬지는 폭력적이고 권력에 굶주린 동물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반면, 영장류 세계의 히피족이라 할 수 있는 보노보는 '전쟁이 아니라 섹스'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유인원은 인간과의 유전적 거리가 거의 같지만, 지금까지 언론 매체나 문헌에서는 우리와 침팬지를 비교하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노보의 생활에 대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노보 사회가 보여주는 암컷의 지배, 협력적인 성격,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섹스의 사용 등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인 이론들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인간의 공격성을 발전과 동일시하고, 우리의 친척인 침팬지의 행동에서 폭력성의 뿌리를 찾으려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생물학자들은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를 받으며 그에 따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만 한다는 이미지를 널리 유행시켰다.

이 메시지는 레이건과 대처가 미국과 영국을 통치하던 시절,탐욕을 자유시장 제도의 기초로 여기던 시대정신과 잘 들어맞았다.

그러나 엔론 사태와 그 밖의 기업들의 부정 사례가 터지기 전에도 우리는 이미 도덕적 책임과 공동체를 점점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생물학계에서도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쟁의 기조는 강자의 권리에서 도덕성과 책임감의 진화 쪽으로 급격히 쏠려 왔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본성과 조상에 관해 보다 완전한 그림을 그리기에 아주 적절한 때로 보인다.이 그림은 침팬지와 보노보 모두를 우리의 본성으로 수용하려 한다.

[나] 심층생태학(deep ecology)에 대한 대안으로 뤽 페리(Luc Ferry)는 민주생태학(democratic ecology)을 제안한다.

이는 인간의 권리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존하는 의무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은 물질이나 기계가 아니며 인간을 위한 도구도 아니다.자연이 보유하고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과 가치는 인정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인간의 최우선 임무는 아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것을 선용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의미이다.

또한 인간은 자연을 개발하더라도 그것을 무한정 소비할 정도로 지성이 부족한 존재는 아니다.

인간의 관심은 자연적 삶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지 자연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아니며, 자연을 남용하는 것이 인간의 자유를 신장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시장주의와 자본주의는 환경론적으로 의식화된 소비자를 길러냄으로써 우리가 우려하는 바와 같은 정도의 환경파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페리의 자유관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한편,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그가 보기에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한가 혹은 악한가라는 질문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본래적으로 인간은 선하며 동시에 악하기도 하다.

동물의 본성도 마찬가지이다.

동물도 때로는 상대방에게 우호적이며 때로는 해를 끼친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선행이든 악행이든 그것을 계획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점과 그럼으로써 극도로 선하거나 극도로 악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페리는 고문 도구를 전시한 벨기에의 박물관을 예로 들면서, 세상에 다른 사람을 저토록 괴롭힐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계획적으로 고안해낸 종은 오직 인간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자유로운 인간은 동물이 저지르는 악행보다 훨씬 더 강도가 세고 극단적인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얼마든지 계획을 세워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란 자신의 삶을 자연이나 선과 같은 자신의 외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조직하는 존재이다.

이런 조직의 결과가 바로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가 때로는 훌륭하고 때로는 수치스럽기도 한데, 이는 모두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인간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다.

인간은 본래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선행과 악행은 역사를 만들며,그 역사에 대한 책임은 자유로운 선택을 했던 인간에게 귀속된다.

이것이 바로 자유가 책임을 동반하는 이유인 것이다.

[문제] 제시문 (가)를 참조하여 제시문 (나)의 주장을 설명하시오.(500~600자,25점)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차근차근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

우선 문제 해결의 일반적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①문제 분석

②제시문 독해

③문제에서 묻는 내용을 가지고 제시문 독해 완성하기

④답안 구조 짜기

⑤답안 작성

이 프로세스를 가지고 오늘 과제를 해결해 보자.

⊙ 문제 분석

'문제'를 제대로 독해하면 논술의 반은 풀리는 경우가 있다.

이번 논제가 그런 형식이다.

이번 문제는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제시문 (나)의 주장을 파악해야 한다.

둘째, 그 주장을 제시문 (가)를 참조로 설명해야 한다.

때문에 우선 알아야 할 내용은 제시문 (나)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 주장을 (가)가 어떻게 도와주는지 생각해야만 한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가 '참조'이다.

'참조'라는 뜻이 독해되어야만 우리가 (가)와 (나)를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조'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참조(參照) ; 참고로 비교하고 대조하여 봄"

즉, 문제는 제시문 (가)의 내용을 파악한 뒤, 그 내용과 비슷하거나 다른 점을 이용해 제시문 (나)를 설명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시문 (가)의 역할은 '제시문 (나)의 주장의 근거로서 작용하든가.

반증사례로서 작용하든가' 둘 중 하나이다.

⊙ 제시문 독해

먼저 제시문 (나)의 내용을 살펴보자.

제시문은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는 '심층 생태학∼환경 파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까지, 둘째는 '페리의 자유관은∼이유인 것이다'까지다.

첫째 부분은 환경에 관한 내용이다.

환경에 접근하는 방식은 '심층생태학'과 '민주생태학', 두 가지가 있는데 저자는 민주생태학을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신뢰이다.

정리하자면 제시문 (나)의 전반부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민주생태학을 지지한다는 것이며, 이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낙관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부분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에 관한 내용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반부의 페리의 주장은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로운 주장을 함축한다.

인간은 본성이 정해져 있지 않은 존재이고, 선과 악 어느 쪽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 점은 동물과도 비슷하다.

다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어느 쪽을 택하든 계획을 세워서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크게 어렵지 않은 내용이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갑자기 결론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이다.

이 부분의 연결이 어려웠다.더구나 '결국'이라는 단어가 독해의 어려움을 더욱 초래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제시문 (나)에서 주장하는 바를 후반부, 즉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라는 걸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는 잘못된 독해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선 제시문 (나)에 쓰인 '자유'라는 단어의 쓰임새에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의 뜻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 또는 그런 상태'이다.

그러나 제시문 (나)의 전반부에는 자유의 뜻이 문맥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해져 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것을 선용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의미이다.'

여기서의 '자유'는 우리가 평소 알고 쓰는 의미의 뜻이 아니다.

문맥적으로 정해진 새로운 뜻이다.

그리고 후반부(페리의 자유관∼ 이하)에 나오는 '자유'는 평소에 알고 쓰는 의미의 '자유'이다.

같은 단어를 다르게 정의하는 부분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정리하자면 전반부의 '자유'는 '자연을 선용'하는 의미의 자유이다.

그러나 선용한다는 것이 그냥 마음대로 자연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선용한다'는 '책임있게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자유'를 아무리 문맥적으로 새롭게 정의했다고 해도 '자유' 자체에 '선용'의 의미는 없다.

그래서 글의 후반부에서 '자유'에 책임의 의미가 있음을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즉,글의 후반부는 새로운 주장을 하는 부분이 아니라 전반부의 '자유'의 성격을 논증하기 위한 근거 단락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의 논의를 가지고, 다시 글의 흐름을 추적해 보자.

페리는 민주생태학을 지지한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유(자연을 선용한다는 의미)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환경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친다.

그러나 단순히 자유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는 환경에 대한 낙관론을 펼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시점에서 저자는 후반부에 자유란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고 그 결과가 인간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결국 인간이 행사하는 자유는 본질적으로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경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일 것이고 이는 환경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가능케 하는 원인이 된다고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내용이다.

때문에 (나)의 주장은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다'가 아닌 '인간은 환경을 선용할 것이다'가 된다.

제시문 (가)는 인간 본성의 두 가지 모습을 말하고 있다.

하나는 침팬지의 본성이고, 다른 하나는 보노보의 본성이다.

생물학자들은 과거에는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침팬지만을 본성으로 수용했었는데, 최근에는 평화 지향적 성격을 나타내는 보노보도 인간의 본성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 스스로 도덕적 본성을 중요시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 문제에서 묻는 내용을 가지고 제시문 독해 완성하기

우리가 애초에 검토하고자 했던 것은 '제시문 (가)가 (나)의 어떠한 성격의 근거로 쓰일 것인가'였다.

전술한 바를 검토해 볼 때, 반증사례는 아니다.

때문에 제시문 (가)는 (나)의 입증사례라는 하나의 선택지만이 남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개의 제시문을 하나로 묶어 설명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가)는 '인간의 본성은 이중적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인간의 의지라는 것'과 '최근에 인간의 도덕적 책임이 자연스럽게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이 자신들의 본성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나)의 환경에 대한 낙관적인 주장을 어떻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가를 풀어낸다면 제시문을 완벽하게 독해한 것이 된다.

여러분들이 남은 부분은 완성하기 바란다.

3. 예시 답안

다음은 한양대에서 공개한 예시 답안이다(교수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가]는 영장류 원숭이들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을 통해 같은 영장류인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공격적이며 권력 지향적이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고문 도구들을 개발하기도 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량 학살을 자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협력적이며 사회적 조화를 중요시하기도 하여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거나 가난한 자를 돕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은 따라서 인간에 있어 선에 대한 선택과 의지가 중요함을 암시한다.

[나]는 인간의 본성 자체가 선악 양자 중의 하나라는 논쟁적 논의 구도를 넘어선다는 입장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의지, 계획성이 오히려 더 인간 존재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 논의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과 달리 계획적인 행위를 할 수 있으며,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자유 의지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역사는 인간이 선택한 결과물이며 인류의 미래도 우리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환경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이러한 선에 대한 의지와 계획성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다.

사실 이 답안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실망스럽다'이다.

분명히 문제에서는 (가)의 주장을 참조해서 설명하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답안은 제시문별로 요약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좀 더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밑줄 친 부분은 환경문제를 낙관하는 데 별다른 도움을 못주고 있다.

단순히 미래가 우리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서 그것이 환경문제를 낙관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또한 답안지에서 (가)가 주장한다고 보는 '인간의 선에 대한 선택과 의지가 중요하다'는 내용 자체만으로는 '인간이 환경을 선용할 것이다'라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우리의 생각과 의지가 올바른 쪽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입증해주어야만 밑줄 친 부분과 (가)를 근거로 환경문제를 낙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입증해줄 수 있는 내용이 제시문 (가)의 내용이었다.

두 개의 본성이 있는데도 인간이 자유롭게 도덕적인 책임을 중시하는 선택을 한다는 점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의 신뢰성을 높이는 근거로서 작용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설명이라는 느낌을 살리고, (가)를 참조하는 것을 좀 더 명시적으로 드러내서 (나)의 주장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예시 답안을 쓸 수 있다.

뤽 페리는 극단적인 방식인 심층생태학보다 인간의 자유를 긍정하는 민주생태학을 주장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용할 것을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는 그것이 좋든 싫든 인간에게 모두 귀속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져 왔듯이 환경에 대한 책임도 질 것임을 뤽 페리는 긍정한다.

이 주장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최근의 생물학적 입장을 고려할 때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생물학의 최근 연구 결과는 인간사회의 공격성을 대변하는 침팬지뿐만 아니라 도덕성과 책임감의 진화를 설명해주는 보노보도 인간의 본성으로 수용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은 두 가지 본성 중 보노보의 본성을 중요시하는 추세이다.

이를 환경 분야에도 적용해 본다면 인간은 보노보의 본성을 발휘해 환경과 공존하는 것을 모색할 것이다.

때문에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긍정하며 책임을 주장하는 뤽 페리의 주장은 인간의 본성에도 부합하는 주장이다.

4. 마치며

사실 예시 답안을 비판하기는 했지만 위험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답안은 출제교수의 답안이니까.

아니 최소한 시험 출제 대학이 인정한 답안이니까.

그 답안을 공격하는 것은 무리한 시도일 것이다.

그러나 논술은 논리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면 출제자의 답안일지라도 그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더구나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지상 강의를 하는 필자의 입장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문제에 쫄지 말고, 너희들의 논리를 마음껏 펼쳐라."

필자는 선생님이니까 한 술 더 떠, "예시 답안에 쫄지 말고, 자신의 논리를 마음껏 펼쳐라"를 보여준 것이다.

논술은 논리다.

논리만 완벽하면 출제자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주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논점 일탈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은 필수다.

여러분들이 판단해보기 바란다.

여러분이 채점 교수라면 필자의 답안과 학교 측의 예시 답안 중 어느 쪽에 점수를 더 주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문제에 대한 대학 측의 출제의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판단에 참고하시길….

인간의 본성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를 담고 있는 제시문 (가)는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영장류들이 폭력적 성향과 도덕적 성향 모두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제시문 (나)는 심층생태학과 민주생태학을 대비하면서 자연을 보호하고 인간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은 반드시 심층생태학이 요구하는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자율적인 선택에 입각한 새로운 역사의 창조라는 점을 강조한다.

[문제 1]은 제시문 (나)가 강조하는 인간의 자율적 선택이 실은 인간의 본성에 의해서도 뒷받침되는 것임을 수험생이 깨닫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 문제를 정확히 이해한 수험생은 제시문 (나)에서 제안하고 있는 인간의 자율적 선택에 의한 바람직한 세계의 구성이 실은 생물학의 최신 연구 결과에 의해서도 지지되는 것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답안을 작성하게 될 것이다.

권호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통합논술 연구위원 mega@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