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의 심리학
백화점이나 할인점 매장에 가보면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창문이 없고, 시계가 없고, 1층에 화장실이 없다.
또 백화점에선 엘리베이터를 찾기가 어렵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어느 층에서건 반 바퀴를 돌아야 내려올 수 있다.
백화점의 여성용품은 아래층에, 남성용품은 위층에 배치하고 입구에는 값싼 잡화를 늘어놓고 판다.
할인점에도 창문이나 시계를 찾기 어렵고 쇼핑카트는 갈수록 커진다.
의류 매장에서 새옷을 입고 전신 거울에 비춰보면 대개 다리가 길어보인다.
백화점 할인점들은 이렇듯 판촉을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감춰놓고 있다.
경영학에선 이 같은 심리마케팅 장치들이 중요한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고객의 심리를 이용해 더 오래 매장에 붙잡아 놓고 구매를 부추기려는 것인데, 오늘은 세일즈의 심리학을 들춰보자.
⊙ 백화점과 카지노의 공통점
백화점에는 창문이 없다.
자연채광은 최대한 피하고 대낮에도 전등을 환하게 밝혀놓는다.
창문을 내지 않아야 조금이라도 더 매장을 확보할 수 있고, 햇볕이 들었을 때 제품이 바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계를 걸어두지 않는 것도 시간을 의식하지 말고 쇼핑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창문과 시계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층에 화장실이 있다면 볼일만 보고 나갈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백화점 1층엔 화장실이 없어 2층이나 지하 1층으로 가야 한다.
2층까지 가는 길에 충동구매를 유발할 상품들이 대거 전시돼 있고, 지하 1층에는 음식코너가 있어 구미를 당긴다.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갔다 내려오려면 빙 돌아가게끔 만든 것이나, 엘리베이터를 찾기 어려운 구석에 설치한 것도 조금이라도 더 매장에 손님을 묶어두려는 의도다.
손님이 조금이라도 더 머물게 할수록 매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 알고 보면 속 보이는 상술
백화점의 여성용품을 아래층에, 남성용품을 위층에 배치하는 것은 남녀의 심리 차이를 반영한 것.
대개 남성이 필요한 물건을 해당 매장으로 직행해 바로 사가지고 나가는 반면, 여성은 맨 위층부터 차례로 내려오면서 천천히 쇼핑한다.
그래서 쇼핑시간이 가장 짧은 여성은 (빨리 가자고 보채는) 남편이나 남자친구와 함께 온 경우라고 한다.
백화점 입구에 값싼 잡화를 내놓고 파는 것은 싼 물건도 많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장치다.
이마트 홈플러스 등 할인점들은 초기엔 대개 100ℓ 정도 크기의 쇼핑카트에다 장바구니도 많이 비치했다.
하지만 요즘엔 장바구니는 눈에 잘 안 띄고 쇼핑카트는 거의 두 배인 180ℓ로 커졌다.
빈 카트가 있으면 채우고 싶어하는 사람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다.
심지어 미국의 일부 대형 할인점은 계산대 쪽 바닥을 약간 높여놨다.
물건을 담은 카트를 끌고 계산대로 가기가 힘들게 만들어 하나라도 더 팔려는 의도다.
반면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쪽은 내리막으로 되어 있어 빨리 나가게끔 하는 효과를 낸다.
⊙ 백화점에선 누구나 롱다리(?)
많은 여성들이 백화점에서 입어볼 때는 멋있게 보이던 것이 집에 돌아와서 입어보면 영 그 느낌이 안 난다고 의아해한다.
이는 거울에도 묘한 상술을 숨겨 놨기 때문이다.
백화점 거울은 일반 거울에 비해 아래 쪽이 길게 보인다.
웬만한 사람도 백화점에서 새옷을 입어보면 롱다리가 된다.
게다가 조명색이나 조도는 제품을 최대한 고급스럽게 보이게끔 맞춰져 있다.
일부 백화점은 여성복 드레스룸에 은은한 분홍빛 조명을 해놓았다.
그러면 옷이나 자신이 더 예쁘고 만족스럽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백화점만 그런 게 아니고, 이발소나 미용실의 거울도 잘 들여다보라.
머리를 손질한 직후에 거울을 보면 얼굴이 보통 때보다 좀 더 갸름해 보인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면 뭔가 다른 느낌이 든다.
그 이유 역시 좌우는 좁고 상하가 길게 보이는 거울에 있다. 한국인들은 서구인들에 비해 얼굴이 둥근 편인데 이를 거울이 커버해주는 것이다.
이렇듯 심리학을 이용한 세일즈 기법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상당한 수준에 와 있다.
모르고 가면 충동구매하기 일쑤고, 알고 가면 왠지 씁쓸한 게 바로 세일즈의 심리학이 아닐까.
백화점·할인점뿐 아니라 생활 곳곳에서 교묘하게 숨어 있는 심리마케팅 장치를 찾아보라.
어쩌면 논술시험에서 출제자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좋은 연습이 되지 않을까.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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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음악, 소리, 스토리도 모두 마케팅 수단
맥도널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점의 의자는 깔끔하고 앙증맞게 생겼다.
어린이나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갖춘 것.
하지만 의자는 한결같이 작거나 딱딱해 엉덩이가 큰 어른들은 30분만 앉아있어 보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빨리 먹고 빨리 가도록 재촉하는 장치인 셈이다.
고급 음식점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등에서 트는 음악도 잘 들어보면 시간대별로 차이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에는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틀어 빨리 먹고 가도록 만든다.
반면 한가한 시간대에는 편안한 음악을 틀어 천천히 먹고 오래 앉아 있도록 해준다.
이는 손님이 없어 파리 날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대형 모터사이클의 대명사인 미국 할리데이비슨은 모터사이클의 우렁찬 엔진소리를 특허 등록했다.
웬만한 승용차보다 가격이 훨씬 비싼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의 '부릉∼부릉∼'하는 힘찬 엔진소리는 자유와 남성의 꿈의 상징이 됐다.
에어조던 운동화로 유명한 나이키는 신발보다 마이클 조던의 도전정신을 강조해 세계 스포츠화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봉제완구 제조업체인 우리나라 오로라월드가 곰인형 '위시 윙'으로 국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곰인형에 재미난 스토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날고 싶은 귀여운 곰인형 이야기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동화적 상상력을 일깨워줬다.
이 같은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제품의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켜 판매효과를 극대화한다.
우리나라의 마시마로, 뽀로로, 뿌까 등의 캐릭터와 미국의 테디베어, 바비인형 등 그 사례는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