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길잡이] 권호걸의 통합논술 뽀개기 ②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연세대 예시답안을 중심으로

1. 들어가며

지난주에 연세대 1차 모의고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구체적인 해제를 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 많은 선생님들이 해제를 해 놓았기 때문에 똑같은 말을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이다.

이 강좌의 컨셉트는 남이 하지 않는 나만의 논술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미 공론화된 설명은 가급적 하지 않을 생각이다.

연세대는 이번 수시 2-2 문제 중 의·치대의 문제 1번도 오류 시비가 일어 전원 동점처리를 했다고 한다.

모의고사 문제를 고려할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 측은 문제를 잘못냈다는 것을 시인하지는 않고 '교육부에서 권고하는 통합형 논술문제이기 때문에 설령 문제가 잘못됐을지라도 학생이 조건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원칙적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견해에 동조할 수는 없다.

연세대 측 의견대로라면 수험생들은 앞으로 문제를 풀 때 '문제가 틀릴 수도 있으니 그것까지 고려해서 답을 작성하라'는 말인가?

세 시간 안에 문제가 틀릴 경우까지 고려하라는 건 현실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런 식의 문제는 우리가 믿고 있는 '출제 교수는 문제를 낸 다음 직접 예시답안을 작성한다'라는 명제마저 불신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지성인의 본분은 '거만함'과 '자존심'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한다.

무식하면 모를 일을 지성이 있기 때문에 비춰보고 부끄러워할 수 있는 힘이 '지성'이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적으로 이름을 남긴 지성인들의 모습에는 거만함보다는 부끄러움이라는 정서가 남아 있다.

우리가 윤동주의 시에 감동하며,에밀 졸라의 외침이 아직도 책 한 귀퉁이를 장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연세대뿐 아니라 각 대학 교수님들은 이런 점을 생각하고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셨으면 한다.

서론이 길었다.

예고한 대로 오늘은 연세대 측에서 발표한 예시답안을 중심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논해보자.

2. 다시 한번 문제를 보자

[문제 1] 제시문 (가)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며,이 문제에 대해 제시문 (나)와 제시문 (다)는 각각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지 비교하시오.(배점: 30점)

(가)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이기적이거나 제한된 수준의 관용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상호호혜적인 이익이 예상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쉽게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상호호혜적인 행동이라도 그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친절에 대한 보상은 상대의 관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매우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중략)

당신의 옥수수는 오늘 여물고 내 것은 내일 여물 것이다.

만약 오늘 내가 당신이 추수하는 것을 돕고 내일 당신이 나를 돕는다면,이는 우리 둘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호의도 갖고 있지 않으며,당신 역시 나에게 아무런 호의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단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보상에 대한 기대는 나를 실망시킬 것이며,나로 하여금 헛되이 당신의 호의에 매달리게 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혼자 일하도록 내버려둘 것이며,당신도 동일한 방식으로 나를 대할 것이다.

(나) 미나모토죠에는 선술집과 음식점,가라오케 등이 기미우라 역을 중심으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음식점과 술집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갖추고 있으나,사람들은 자기들이 자주 찾아 가는 곳을 또 찾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약속을 할 경우에 서로가 잘 아는 곳에서 모이고 누구를 만나려면 어디에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이발소를 하는 마에바시를 만나려면 요네다가 하는 장어구이 집에 가야 하고,목수 일을 하는 카미를 찾으려면 마에하라 자매가 운영하는 선술집에 가면 된다.

쯔노다 아줌마는 학부모 모임에서 사람들과 식사를 한 후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어린 시절 친구의 형이 하는 커피숍에 간다.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를 오게 되면, 이사 온 사람들은 바로 조그만 케이크나 '데누구이(수건의 일종)'를 가지고 자신들을 소개하는 인사를 가게 된다.

일종의 공식적인 인사인 셈이다.

이러한 인사는 새로운 가구가 주위의 이웃들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는 시작이다.

사람들은 이웃이 집을 비운 사이 서로의 집을 봐주고,주부들은 특별세일이나 새로 개점한 가게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지방 특산물을 선물로 건넨다.

도쿄 인근 지역에서 야채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한 달에 두서너 차례 미나모토죠를 방문한다.

이들은 주로 할머니들인데 자신들이 가져올 수 있는 만큼의 야채를 가지고 와서는 거리에서 팔기보다 벌써 수년 째 방문해온 미나모토죠의 가정을 한 집 한 집 찾아간다.

쯔노다 아줌마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집에 찾아온 야채 파는 할머니에게서 야채를 사는데,자신이 필요한 것보다 좀 더 사서 아이를 시켜 이웃에도 나눠준다.

지난번에 이웃이 보낸 선물에 대한 보답이다.

미나모토죠의 사람들은 도쿄시내 어딘가에 사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자신들의 집에서 장례식을 치른다.

그렇다고 해서 장례식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장례식의 많은 부분은 장의사의 협조로 이루어진다.

장례에 필요한 제단,향로,제등,관 등은 모두 장의사가 준비한다.

장례식에서는 초등학교 근처에 사는 모리구치 씨가 염과 같은 전문적인 일을 담당한다.

대신에 미나모토죠의 주민과 이웃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한다.

특히 죽은 이가 마지막 헤어짐의 인사를 하는 고구베쯔시키(告別式) 바로 전날에는 밤을 새워 쯔야(通夜)를 하면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접대를 한다.

(다) 어디서 왔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야옹 울고 있었다.

어둠이 밀려왔을 때 손에 장갑을 쥔 여자가 다가와서 고양이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면서 자루에서 먹이를 꺼내주었다.

그때 사르트르가 이렇게 제안해 왔다.

'2년 동안 나는 파리에서 살 수 있도록 손을 쓰면 되는 것이고,우리는 가능한 한 친밀한 생활을 하자.

2,3년 동안 헤어져 살게 되더라도 어딘가 세계의 한 모퉁이에서,예를 들면 아테네 같은 곳에서 재회하여 다시 얼마 동안 공동생활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하자.우리는 결코 완전히 남남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둘 중에 어느 쪽인가가 상대를 찾을 때 반드시 응할 것이며 우리 두 사람의 결합 이상 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속박과 습관이 되지 않도록 온힘을 다하여 그런 부패에서 우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동의했다.

나는 사르트르가 예정하고 있는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득한 미래의 일같이 생각되어 미리부터 마음을 쓰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도 가끔 두려움이 내 마음을 스쳐갈 때 나는 그것이 나 자신의 허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극복하기 위해 애썼다.

사르트르가 약속에 철저하다는 점을 나는 이미 체험하고 있었으며,그 점은 내 마음의 버팀목이 되었다.

그의 경우,하나의 계획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고 현실의 어떤 순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22개월 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위에서 오후 5시에 만나자"고 했다면,나는 정확히 22개월 후 오후 5시에 아크로폴리스 위에서 그를 재회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나는 사르트르가 나보다 먼저 죽지 않는 한 그가 내게 불행을 안겨줄 리 없다는 것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 2년의 계약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가 이론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자유를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이 새로운 관계에 주저 없이 모든 것을 쏟을 작정이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약속을 했는데,그것은 둘 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서로 숨기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약속이었다.

3. [문제 1] 해설

간단히 정리해 보자.

제시문 (가)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인간의 이기심이 아니다.

만일 문제가 인간의 이기심이라면,제시문 (나)와 (다)는 이기심을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이어야 한다.

하지만 두 제시문 다 이기심을 해결하는 방식은 아니다.

사실 (가) 역시 인간의 이기심 자체를 문제 삼고 있지는 않다.

문제 삼는 것은 '인간이 상호 호혜적인 행동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요소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는 공동체의 오랜 관습 혹은 정서적 유대,(다)는 계약을 들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답해줘야 할 내용은 두 가지이다.

첫째,제시문 (가)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를 밝혀주어야 한다.

둘째,(나)와 (다)가 제시하고 있는 해결책을 비교해 주어야 한다.

그럼 연대 측에서 발표한 학생의 우수 답안을 살펴 보자.

우수 답안을 살펴 보는 이유는 대학들이 좋아하는 답안의 유형을 공부하기 위해서이다.

[우수답안 A]

제시문 (가)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인간이 서로 협력했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개개인이 더 효율적이고 유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인간 생래의 이기적인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비록 그에게 제한적인 관용이 있더라도 자신의 이익과 관계 있을 때에만 발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관용도 이기심에서 파생된 것일 뿐이다.

또한 인간이 협력하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그 제한된 관용마저도 그것에 대한 상대방의 보상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발현되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인간이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면,인간은 협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문 (나)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하는 인간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 신뢰는 사회구성원 간의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약속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관용에 대한 보상의 불확실성을 오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한 신뢰를 통해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미나모토죠의 사람들이 자기가 자주 가는 선술집에 가고, 몇 년째 같은 농민에게서 야채를 사고,이웃의 장례를 돕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시문 (다) 또한 ⑤관용에 대한 보상의 불확실성을 극복함으로써 문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으나,그 극복 방법이 보다 합리적이고 분명한 사회구성원 간의 계약이라는 점에서 제시문 (나)와 차이가 있다.

여기서의 계약은 앞서 언급한 신뢰가 관습적이고 암묵적인 오랜 협력관계에 의지하는 것과 달리, ⑥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성에 의지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며 보다 나은 효용과 이익을 위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전제가 이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나'가 사르트르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는 것은 그것이 합리적인 인간들의 합리적인 계약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번호를 하나 하나 살펴 보면서 이 답안이 왜 좋은지 또한 문제점은 무엇인지 알아 보자.

①=참 좋은 도입 부분이다.

가장 좋은 답안 중의 하나는 채점하기 편한 답안이다.

(가)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를 군더더기 없이 정확히 밝힘으로써 채점자를 편하게 해 주었다.

일단은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답안이다.

다음 답안과 비교해 보자.

[우수답안 B]

제시문 (가)에 나타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이익을 돕는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로,서로 나서서 남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호의가 베풀어지기는 어렵고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먼저 주어야 비로소 상호 호혜적인 행동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상을 기대하고 베푼 친절도 상대방의 자신에 대한 관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결국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여길 때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기대하고 먼저 호의를 베풀게 된다.

하지만 제시문 (가)에 따르면 인간은 상대방에 대한 제한된 수준의 관용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는 서로 도움을 줌으로써 상호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음에도 서로 제한적인 관용 때문에 먼저 호의를 베풀지 않으며 자신에게 돌아올 보답도 기대하지 못한다.

위의 답안도 연대 측에서 밝힌 우수답안 중 하나이다.

그러나 보자. '문제'가 처음의 답안처럼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여러분들이 판단해 보라.두 답안 중 어느 답안이 눈에 더 잘 들어오며 채점위원들이 더 좋은 점수를 줄지를.

②=역시 좋은 부분이다.

제시문 (가)의 문제의식을 자신의 문제의식으로 변환시키는 부분이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칠 때 '미드 식'으로 글을 쓰라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가 '프리즌 브레이크'를 재미있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 한 편 한 편이 완결 구조이면서 각 편을 관통하는 중심축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감옥 이야기이면 재미없지 않겠는가? 주인공이 탈출하는 중심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각 이야기가 빛나는 것이다.

여러분 글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묻는 바에 답하기만 급급해서는 좋은 답안이 될 수 없다.

'여러분'이 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다시 말하면 글의 중심축이 '나'라는 점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나'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단락단락 연결 부위에 신경을 써야 한다.

단락끼리 분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 말고,하나의 완결된 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가)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문제 1]의 문제 제기인 셈이다.

이 점을 잘 살린 답안이다.

때문에 다음 단락의 '이러한 문제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는~'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③,④=이 답안에서 가장 빛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필자가 만든 논술 20계명 중 '논지는 세세하게,사실은 간략하게'라는 부분이 있다.

제시문의 내용을 답안에 써주어야 할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하다.

제시문이 의미하는 바만 정확하게 써주는 것이 좋다.

다음 답안과 비교해 보자.역시 연세대가 좋은 답안이라고 공개한 답안이다.

[우수답안 C]

이에 대해 제시문 (나)는 인간 스스로 제한된 관용의 범위를 넓히길 요구한다.

미나모토죠의 주민들은 쉽게 서로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해 준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은 이러한 일을 조그만 선물을 통한 인사로 시작한다.

이사 온 사람은 자신에게 돌아올 보상을 기대하며 공식적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에 대해 집을 봐주거나 선물을 나눠주는 것으로 보상해 준다.

마을 주민들 모두 이렇게 서로 보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러한 보상은 나중에 상대방에 대한 친절로 다시 이어진다.

먼저 상대방에게 베푼 호의에 대해 상대방도 자신에게 관용으로 답을 해주는 것이다.

미나모토죠의 주민들은 스스로 넓은 관용을 베풀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베푼 친절에 대한 보상을 쉽게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미나모토죠를 서로 돕고 돕는 상부상조의 사회로 만든다.

줄친 부분이 제시문의 내용을 요약한 부분이다.

똑같은 내용을 [답안 A]는 184자에 기록한 것에 비해 [답안 C]는 277자에 걸쳐 묘사하고 있다.

둘 다 이미 제시문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이다.

사실 이 문제의 핵심은 '비교'였다.

두 제시문의 차이를 잘 드러내면 그뿐이다.

[답안 C]처럼 일일이 제시문의 내용을 열거하는 것보다 그 예를 통해 추출할 수 있는 의미만을 밝히고 나머지 예는 간략하게 처리하는 [답안 A]의 방식이 좀 더 세련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연세대 교수들이 쓴 [답안 A] 총평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제시문의 내용을 적절한 수준에서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분석과 해석을 뒷받침했다.'

자, 이만하면 필자의 말이 믿을 만하지 않은가?

⑤=이것도 역시 좋다.

'비교하라'는 말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라'는 말과 뜻이 같다.

하지만 중심축은 차이점에 놓여 있다.

제시문 (나)와 (다)의 공통점은 한두 가지 정도이다.

이 경우 '공통점은 ~'으로 서술하는 것보다 ⑤번처럼 간단히 다뤄주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어차피 채점의 기준은 차이점을 얼마나 잘 서술하는가에 놓여 있다.

공통점을 간단히 다뤄 줌으로써 차이점을 쓸 공간이 더욱 많아졌다.

⑥=나름대로 논리 구성은 치밀하게 했지만 잘못 쓴 부분이다.

하지만 지난번 지면에서 밝혔듯이 제시문 자체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에 학생의 잘못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논리적인 잘못을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답안은 제시문 (다)의 계약이 합리적인 이성에 의지한 계약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정서를 바탕으로 한 제시문 (나)의 협력관계와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논리가 엉성하다.

말했듯이 제시문 (다)의 계약의 전제는 서로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제시문에 나타난 계약 결혼의 전제는 상대방에 대한 정서적 친밀성이다.

더구나 답안에 나타난 이 부분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성에 의지한다고 할 수 있다'는 부분은 억지다.

확신한다는 건 무조건 이성에 의한 것밖에는 없는가?

정서적 친밀성을 바탕으로 확신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더구나 다음 제시문을 보자.

'그래도 가끔 두려움이 내 마음을 스쳐갈 때 나는 그것이 나 자신의 허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극복하기 위해 애썼다.

사르트르가 약속에 철저하다는 점을 나는 이미 체험하고 있었으며,그 점은 내 마음의 버팀목이 되었다. (…)

나는 사르트르가 나보다 먼저 죽지 않는 한 그가 내게 불행을 안겨줄 리 없다는 것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화자('나')가 사르트르를 신뢰하는 이유는 경험에 의존한 신뢰다.

그리고 결혼할 사이의 남녀가 느끼는 정서적 믿음이 오히려 그 바탕에 있다.

답안의 견해와는 정반대이다.

4. [문제 1] 해설을 마치며

이런 식의 첨삭 강의는 처음 접해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신문에 나온 첨삭 강의를 보면 대개 문장 첨삭이나 내용 첨삭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큰 도움이 안 되는 내용이다.

오늘 첨삭은 일명 '구조 첨삭'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글이 이루어진 구조와 방식을 중심으로 첨삭한 내용이다.

다음에는 [문제 2]와 [문제 3]에 관한 답을 해설한다.

마찬가지로 답의 내용보다는 구조를 중심으로 첨삭하면서 글을 쓰는 방식을 연구해 보자.

이 강의는 이미 현장 강의시간에 많은 학생들의 지지를 받은 내용이다.

잘 읽어 두면 유익할 것이다.

권호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통합논술연구위원 mega@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