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속 제시문 100선] (69) 제레미 캠벨 ‘거짓말쟁의 역사’
거짓은 인간의 진화에 필수적인 요소


거짓이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그 다채로운 빛깔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 제레미 캠벨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일간지 '이브닝 스탠더드(The Evening Standard)'의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Grammaticalman: Information, Entropy, Language, And Life」가 있다.

캠벨은 「거짓말쟁이의 역사」에서 "좋든 싫든 간에 인간의 삶에서 거짓이나 허위는 인위적이고,비정상적이며,불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인류는 진리와 같이 빈약하고 불충분한 음식으로는 진화 사다리에서 현재의 높은 자리까지 오는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거짓은 인간의 진화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진실의 빛에 가려 외면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상이던 거짓의 가치를 밝혀내는 캠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원문 읽기

모든 동식물 사이에 광범위하게 속임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연이 부정직한 지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자극한다.

또한 인간의 속임수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며 생물학의 기본 요소인 것처럼 비약하도록 자극한다.

▶ 해설=교활한 속임수의 진화

거짓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도 온갖 거짓이 난무한다.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무단 침입하여 둥지 주인이 낳아 놓은 알과 흡사한 알을 낳는 것이나 거미들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실을 자아 먹잇감들을 죽음의 함정으로 유인하는 것은 자연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거짓이다.

심지어 꼬마물떼새는 자신의 알을 보호하기 위해 날개에 상처를 입은 듯이 뛰어다니면서 포식자들을 유혹해 시선을 돌리기도 한다.

이러한 동물들의 거짓은 사실 본능에서 비롯하는 것이지만 '생존 수단으로서의 거짓말'이 자연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간의 세계에도 거짓이 생존 수단인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이 존재한다.

학력 위조를 해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통계자료나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학력 위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유명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거짓을 개인의 도덕성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노력과 실력이라는 진실이 통하지 않을 때 겉모습을 화려하게 포장해서라도 인정받으려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 원문 읽기

고대 철학자들은 진리를 인간 정신의 표준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밖의 것은 무엇이든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거짓을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거짓을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독창적인 사색을 자극하는 수수께끼였다.

거짓말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지시하는데 이것은 단연코 괴상해 보였다.

거짓말은 일탈적이었고,기묘했으며,수수께끼였다.

그리스인들에게,특히 사람들이 언제나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과 어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던 플라톤에게 거짓말은 설명될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거짓말은 논의될 만한 가치가 있었다.

▶ 해설=진리를 위협하는 거짓?

대략 기원전 5세기 중반 그리스에는 돌아다니며 궤변을 통해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유행처럼 등장했다.

바로 '소피스트'들이다.

그들은 진리가 권력을 얻거나 권력을 행사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더 나아가 그들은 간단한 편법을 써서 진리를 '거짓'으로 교묘하게 전도하기도 했다.

그 편법이란 다름 아닌 설득의 기술로,사실보다 매혹적인 거짓으로 청중을 유혹하는 언어의 유희였다.

그러나 궤변의 가치는 사실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그것을 증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해 주는 데 그 가치가 있다.

거짓은 진리의 반대가 아니라 진리의 그림자로 진리가 실체를 갖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 원문 읽기

행복의 근원으로서의 진리는 예술의 거짓말을 포함하여 특정 형태의 거짓말들보다 덜 효과적일지 모른다.

진리는 인간의 성미에 맞지 않다.

왜냐하면 자연은 진정성과 개방성이 아니라 생존과 힘의 관점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니체가 전하는 메시지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진리용 '기관'은 없지만 아마도 거짓말용 기관은 물려받는 것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 천성적으로 진리와 살기엔 부적합하다.

그들은 진리를 아주 소량 복용하고 다량의 환상으로 중화할 수 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진리를 직접 들이마실 만큼 그렇게 튼튼하지 않다.

▶ 해설=거짓말과 행복

사람들은 진실만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을 듣고 싶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그래서 '하얀 거짓말'로 포장된 다양한 거짓말들을 별 가책 없이 오히려 호의를 담아 하게 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너를 딸처럼 생각한단다'라고 말하는 것이 시어머니들이 꼽은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라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사람들의 진심을 보여주는 안경이 있다면 그것을 쓴 사람은 수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진실은 차갑고 냉정한 것일 수 있다.

오히려 거짓은 따듯하고 부드러운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진리를 아주 소량 복용하고 다량의 환상으로 중화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삶을 견딜 수 없을지 모른다.

또한 사람들은 달갑지 않은 사실들을 외면함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도 한다.

흔히 '신포도 컴플렉스'로 잘 알려진 자기합리화는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다.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인 것이다.

자기 기만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의 요소인지도 모른다.

재밌는 것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남에게 하는 거짓말보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 원문 읽기

거짓말의 역사는 다윈의 세계에서,즉 동물 왕국에서 나타나는 교활함과 속임수의 놀라울 정도로 '자연발생적인' 진화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역사는 문화의 승리로 끝난다.

다름아닌 언어·예술·정치학·사회 이론의 승리로,지금 이것들은 모두 의미의 원천들로 간주되고 가능성들을 증대시키며 유익한 거짓말들을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수단과 전통적 장치들을 제거하고 토대들을 분해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수단으로 간주된다.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언제나 진실을 말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 해설=거짓의 풍요로움

이제 거짓은 다양한 분야에서 그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수많은 관객과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도 결국 상상력의 발현이자 거짓의 변형인 것이다.

예술에서도 자연의 미를 그대로 담으려는 경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고 작품 자체의 창조된 진실을 중시하는 경향이 자리잡고 있다.

거짓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언제나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진리는 인간에게 중요한 존재다.

진리를 통해 우리는 불확실함과 모호함에서 벗어나 안정과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의 경직성과 고지식함은 자칫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거짓이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그 다채로운 빛깔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박상철 S·논술 선임연구원 ace@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