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역사에 남은 거짓말쟁이들

최근 연예인과 사회저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자신의 학력을 속였다가 뒤늦게 발각된 이들은 저마다 눈물을 쏟거나 회한에 찬 얼굴로 '의도하지 않은 거짓말이었다'고 변명했다.

학력이 능력보다 우선시되는 그릇된 사회 풍조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동정론도 제기됐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참작하더라도 이들이 '거짓말쟁이'의 불명예를 벗어날 길은 없어보였다.

'톰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모든 사람들은 깨어있을 때나 잠잘 때,꿈을 꿀 때도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짓말 한 마디쯤이야' 하고 생각하다가 큰코 다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의 속임수는 더욱 그 파장을 감당하기 어렵다.

속임수 하나가 기업이나 정치인을 무너뜨리고 심지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역사적으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세기의 거짓말들을 소개했다.

⊙ 전쟁 일으킨 히틀러의 거짓말

WP가 꼽은 '최악의 거짓말쟁이'는 2차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리다.

1938년 동유럽 점령에 나선 히틀러는 전쟁 발발을 우려하던 네빌 챔벌린 당시 영국 총리를 만나 "(독일이 차지한) 체코슬로바키아 일부 지역의 점령을 인정해주면 전쟁은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평화주의자였던 챔벌린 수상은 안심한 채 영국 의회에 이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공포로 몰아넣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평화조약을 산산조각내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히틀러의 거짓말과 그를 믿은 사람들의 판단 착오가 유대인 대학살 등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것이다.

책 '거짓말하기'의 작가 폴 에크먼은 "히틀러는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며 "그의 거짓말이 즉각 탄로나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Global Issue] 역사에 남은 거짓말쟁이들
⊙ 대통령 퇴진 불러온 워터게이트 사건

최악의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도 거짓말의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보여줬다.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사임하기 2년 전인 1972년 6월,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괴한들이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다 발각됐다.

이들이 공화당 닉슨의 측근이며 그의 재선을 꾀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1973년 미 상원의 청문회가 시작됐고 닉슨 대통령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본인이 사건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범죄의 실행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백악관 녹취 기록에서 드러나면서 큰 망신을 사게 됐다.

1974년 결국 그는 미국 사상 최초로 임기 중에 물러난 대통령이 됐다.

벨라 디폴로 심리학 교수는 "정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산산조각난 사건"이라며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Global Issue] 역사에 남은 거짓말쟁이들
⊙ 사회 투명성 계기 된 엔론 사태

미국 사회를 뒤흔든 대형 회계부정 사건인 엔론 사태(2001년)도 빼놓을 수 없다.

거대 에너지회사였던 엔론은 회계 장부를 거짓으로 조작해 부실한 기업 현황을 건실한 것처럼 꾸몄다.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자금을 상원의원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고위 경영진들이 파산 신청 전에 보유 주식을 고가로 팔아 넘겨 큰 이득을 보는 동안,엔론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투자자들은 쪽박을 찼다.

엔론 사태는 기업을 책임지는 여러 사람들이 여러 거짓말을 꾸며내면서 눈덩이처럼 커진 사례다.

회계 부정의 결과는 책임자들의 법적 심판으로 그치지 않았다.

기업 운영의 도덕성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자 미국은 기업 활동에서 엄격한 투명성을 강조한 사베인스-옥슬리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 기업의 거짓말이 사회 투명성을 진전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된 셈이다.

디폴로 교수는 엔론 사태를 두고 죄책감 없이 용의주도하게 꾸며낸 거짓말의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클린턴의 거짓말,탄핵 위기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8년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 추문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는 TV 회견을 통해 백악관 인턴사원이었던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며 강력히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특별검사팀의 조사 결과 스캔들이 사실임이 드러났고 클린턴은 대국민연설을 통해 "르윈스키와 관계를 가졌으며 이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클린턴의 거짓말은 그를 탄핵위기까지 몰고 갔다.

워싱턴포스트는 그의 거짓말보다 그가 어떻게 거짓말로 인한 궁지에서 벗어났는가가 더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위기에서 벗어나 지금은 가장 대중적인 정치인 중 한명으로 남았다.

장기적으로는 남긴 사회적 파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 기사 대신 소설 쓴 기자들

사실을 전해야 할 기자들도 거짓말의 유혹을 비껴가지 못했다.

1981년 재닛 쿡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8살짜리 마약 중독 소년의 이야기를 가상으로 지어내 기사로 썼다.

이 기사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쿡 기자는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 소년을 마약 중독에서 구제하기 위해 신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기자는 위기에 몰렸다.

결국 모든 것이 기사가 아닌 소설로 드러나면서 쿡은 기자직을 잃어야 했다.

이외에도 뉴욕타임스의 제이슨 블레어 등 독자를 상대로 사기친 기자들은 명성과 돈에 대한 욕심이 속임수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덧붙였다.

신문은 '진실은 너무나 귀중해서 가끔 거짓을 경호원으로 대동한다'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총리의 말이 있지만 명사들의 거짓말 대부분은 이처럼 죄질이 무거울 뿐 아니라 그 결과도 좋지 않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양심에 남은 거짓말의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는 법이다.

자기에게 무엇이 거짓말인지는 자신은 너무도 잘 아는 일일 테고….

김유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