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고려해야" 對 "인류 보편적 가치 외면 곤란"

우리 정부가 유엔 총회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한 것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지난해에는 북한의 핵실험,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차원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찬성했지만 이번에는 '남북관계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기권을 결정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한마디로 남북 정상회담 등 최근의 남북관계 진전 상황을 고려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반론도 거세다.

보수진영 등에서는 다른 문제도 아닌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에 대해 이처럼 아무런 원칙도 없이 오락가락하면 되겠느냐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의 기권 결정은 북한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는 불의나 반인권적 행위를 보고도 잠자코 있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물론 남북 간 긴장 완화와 상호 협력 강화가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이 반인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묵과하면서까지 우리가 남북관계 개선에만 집착하고,혹시나 북한이 남북 대화를 단절할까봐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느냐는 점이다.

⊙ 찬성 측,"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개선 위한 환경 조성 중요"

정부 측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어느 때보다 진전되고 있고,북핵 폐기를 위한 2단계 조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북한을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남북 정상선언에 '내정 불간섭'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점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정부 입장이 1년 만에 바뀐 데 대한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진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기권을 했다고 해서 정부의 인권 정책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기본적 인권 중시 정책은 지속적으로 견지하면서 국제사회의 인권 문제에 대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북한 측은 한국의 기권에 대해 "민족은 민족 아니겠느냐"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북남관계를 뒤집어 엎는 용납 못할 반통일적 책동으로,북남관계에 또 하나의 장애를 조성한 범죄행위로 인해 초래될 모든 결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던 지난해 반응과는 판이하다.

⊙ 반대 측,"남북대화 단절 우려해 인류 보편가치 외면해선 안돼"

이에 대해 대부분 언론과 보수진영 등에서는 "이번 기권으로 한국의 대외 신뢰도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며 "북한에 할 말은 하면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문제를 놓고 북한이 남북 대화를 단절할까봐 아무런 말도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입만 열면 인권을 내세운 이 정권이 북한 인권에 대해선 임기 내내 비겁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국격에도 엄청난 손상을 끼쳤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게다가 북한 인권 상황에 별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1년 만에 태도를 바꾼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는다.

지난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선 확정 이후 실시된 표결에서는 '인권 문제의 인류적 가치'를 내세워 결의안에 찬성했다가 올해 다시 정치적 잣대에 따라 기권한 것은 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 당국은 북한의 인권 유린 행위를 더 이상 두고만 볼 게 아니라 이러한 문제에 일관성 있게 접근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 반인륜적 행위 묵과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시도 안될 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타결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 유린 상황이 달라진 게 없는데도 한국 정부가 인권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이번 기권 결정은 고문과 공개처형,수용소 강제노역 등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 사태를 그냥 지켜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북한도 중요하지만 인권을 존중하는 수많은 우방 국가들도 있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이들 국가와 보조를 맞추는 것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협력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반인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묵과하면서까지 남북관계 개선에 목을 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눈치 살피기에 급급한 모습을 이제 더 이상 보여선 안 된다.

우리가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따질 것은 따지는 것이야말로 남북관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유엔 인권위원회=인권 보호와 신장을 위해 1946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에 설립된 보조기관이다.

세계 각지의 인권을 비롯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및 여성·아동·노인 등 취약 계층의 권리에 관한 국제적 선언 또는 협약을 검토하고 소수민족과 이주노동자 보호,인종·성·언어·종교에 의한 차별 금지 및 기타 인권에 관한 사항에 대해 경제사회이사회에 제안,권고하고 보고서를 체출하며 인권 문제에 관한 조사와 연구 등을 한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유엔 인권위가 2003년부터 채택한 것으로,2005년에 처음으로 총회에서 가결됐다.

고문,공개처형,정치범수용소 운영,영아살해,외국인 납치 등 북한에서 빚어지고 있는 광범위하고 중대한 인권 침해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우리나라는 '인권 문제의 인류적 가치'를 내세워 지난해 처음으로 찬성했다가 올해는 다시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기권했다.


-------------------------------------------------------------

☞연합뉴스 11월21일자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을 촉구하는 유엔 총회의 대북 인권결의안이 20일(현지시간) 우리 정부의 기권 속에 제3위원회를 통과했다.

유엔 총회 제3위원회는 이날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에서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제출한 대북 인권결의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찬성 97표,반대 23표,기권 60표로 3년 연속 결의안을 채택했다.

우리 정부는 이날 투표에서 기권을 선택,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선 확정 이후 실시된 지난해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지 1년 만에 다시 기권으로 돌아섰다.

표결에 앞서 정부 당국자는 "남북관계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기권하기로 했다"고 기권 배경을 설명했지만 지난해와 북한 인권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은 가운데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 '남북관계의 특수한 상황'을 근거로 입장을 바꾼 데 따른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유엔의 수장으로써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 총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찬성표를 던진 뒤 유엔대사를 통해 정부 입장을 설명했던 것과는 달리 올해는 기권에 따른 입장 설명을 하지 않았다.

표결에 앞서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의 박덕훈 차석대사는 발언을 신청,인권결의안이 잘못된 정보를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며 문제들을 전혀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번 결의안이 주권 국가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 대북결의안 표결에 불참한 데 이어 2004~2005년 유엔 인권위원회 표결과 2005년 유엔 총회 표결에서 내리 기권한 바 있다.

총회 제3위원회를 통과한 대북 인권결의안은 다음 달 총회 본회의에서 채택 여부가 최종 결정되지만 위원회가 192개 회원국들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채택한 것이어서 본회의에서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