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외고 시험문제 유출 일파만파
학원-교사간 부적절한 유착에


열심히 공부한 수험생만 피해

교육당국 관리 소홀이 문제 키워

2008학년도 입시 특별전형에서 15 대 1 이상의 높은 경쟁력을 기록해 경기도권 외국어고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김포외고의 간부급 교사가 입학시험 문제를 돈을 받고 입시학원과 수험생 학부모 등에게 유출한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김포외고의 관할 관청인 경기도 교육청은 김포외고뿐 아니라 입학 시험문제를 공유하고 있는 경기도 전체 외고입시를 다시 치를지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학원과 교사의 부적절한 유착 때문에 열심히 공부한 수험생만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부정비리가 김포외고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경기도뿐 아니라 서울지역 외고들도 돈을 받고 시험문제를 빼돌려 왔다는 뜻이 된다.

성실하게 입시를 준비한 학생과 학부모들을 한숨짓게 하는 입시 부정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 외고와 입시학원 간 유착은 오래된 관행

사건은 서울 목동에 위치한 특목고 입시학원 종로엠스쿨에서 시작됐다.

이 학원의 곽모 원장은 지난 9월께 김포외고 입학홍보 담당자인 이모 교사로부터 38문항을 넘겨받았다.

그는 이 중 13문항을 골라 A4 용지에 앞뒤로 프린트한 뒤 이 학원에 다니는 김포외고 응시생 120명이 탄 버스에서 "잘 기억해두라"며 시험 문제를 나눠줬고 이 문제는 그대로 시험에 출제됐다.

유출된 문제 덕에 종로엠스쿨은 전체 합격생의 4분의 1가량인 47명을 합격시킬 수 있었다.

곽모 원장이 유출한 시험지는 김포외고 뿐 아니라 명지외고 안양외고 응시생들에게도 전달됐다.

경기도 지역 외고들은 문제은행을 만들어 놓고 입학시험 문제를 공유한다는 점에 착안,이 두 학교 시험에도 김포외고와 같은 문제가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곽모 원장이 빼돌린 시험 문제는 명지외고 입학시험 문제 중 5개,안양외고 문제 중 1개와 일치했다.

한편 경찰 수사결과 이모 교사는 곽모 원장 외에 김포외고 응시생을 둔 학부모인 박모씨에게도 문제를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모씨는 김포외고에 교복을 납품하며 학교 관계자들과 친분을 맺었고 박모씨의 딸은 이번 입시에서 김포외고에 합격했다.

현재 곽모 원장은 경찰에 체포된 상태며 이모 교사에게는 수배령이 내려져 있다.

박모씨는 불구속 입건(집에 머무르며 경찰 수사를 받아야 함) 상태다.

이번 사건을 놓고 학원 관계자들은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남 대치동의 외고입시 전문학원 관계자는 "돈으로 유출된 시험문제를 사들이는 것은 학원업계의 오랜 관행"이라며 "오히려 이렇게 늦게 문제가 된 것이 이상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 교육당국의 허술한 관리체계가 '화(禍)' 불러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학원의 명성을 부정한 방법으로 높이려고 한 학원장,돈에 매수돼 시험지를 빼돌린 비리 교사 등 일부 개인의 부정부패다.

하지만 1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문제를 유출할 만큼 관계당국의 관리가 소홀했다는 점도 짚고넘어가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실제로 이모 교사가 시험지를 유출한 과정을 보면 입학시험 문제의 관리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 수 있다.

경기도 교육청은 시험지 문제의 원본을 USB(PC에 연결하는 휴대용 저장장치)와 CD에 담아 경기도 지역 9개 외고로 전달했다.

복사가 가능한 컴퓨터 파일로 일찌감치 문제를 받아 본 교사 입장에서는 유출하면 바로 돈이 될 수 있는 시험문제를 들고 '견물생심'이 됐을 수 있다.

고교별로 보안시스템은 갖춰졌는지, 공정한 관리감독을 위해 감독관 교육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에 대해 정확히 점검도 하지 않고 학교에 맡긴 것이 화를 부른 셈이다.

실제 시험이 치러질 때도 경기도 교육청은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수험생들에 따르면 일부 고사장에서는 수험생의 휴대폰을 수거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OMR 카드를 임의로 교체해주거나 정해진 시간이 지났음에도 답안지 작성을 용인하는 시험 관리관이 있었다.

원칙을 지킨 수험생이 피해를 보는 불공정 시험을 교육당국이 방치한 꼴이다.

그동안 학원가에서 '어느 전문학원이 어느 학교 입시에 족집게다'는 식의 소문이 그치지 않았던 만큼 문제 인식을 가지고 접근했다면 환부를 일찍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족집게 학원수업'만 고집하는 학부모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종로엠스쿨과 같은 학원들의 부정은 "내 아이만 합격할 수 있다면 시험문제 유출이 무슨 대수겠느냐"라고 생각하는,어쩌면 소박하기까지 한 개개인의 이기주의가 모여 생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송형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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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시험점수 조작 등 끊이지 않는 입시부정

김포외고 사태를 계기로 과거에 일어났던 입시부정 사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1989년 발생했던 '동국대 입시비리'는 건국 이래 최악의 입시부정 사례로 꼽힌다.

당시 학교 측은 컴퓨터를 조작해 청탁받은 응시생의 점수를 지원학과 커트라인보다 4∼5점씩 높게 올려주는 수법을 썼다.

동국대는 학생 46명으로부터 1인당 3000만원에서 1억원씩 총 21억3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나타났다.

특히 당시 총장과 재단이사장 등도 조직적으로 사건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던져줬다.

이 사건은 검찰이 사학재단의 부정입학에 대한 본격적 수사를 벌이는 계기가 됐다.

1990년 검찰에 적발된 한성대도 컴퓨터로 기부금 입학자의 성적을 조작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들은 1인당 3000만∼4000만원씩 총 32억8000만원을 거둬들였다.

학교 직원들은 이 돈을 위로금 명목으로 1억원씩 나눠가졌다.

1992년에는 최근 김포외고 사건처럼 시험지가 사전에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후기시험을 하루 앞둔 1월21일 부천시에 위치한 서울신학대학에서 대입시험 문제지가 도난당해 후기시험이 그해 2월10일로 연기됐다.

이 사건은 사상 처음으로 대입시험지가 도난당한 사건으로 기록돼 있으며 끝내 범인은 검거되지 않았다.

당시 교육부장관은 사건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대리시험을 치렀다가 적발된 사례도 많다.

1993년에는 고교 교사가 포함된 입시 브로커 4명이 명문대생 5명을 고용한 뒤 3000만∼1억5000만원씩 낸 수험생들 대신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가 경찰에 구속됐다.

1992년 입시에서는 한 브로커가 1300만원을 받고 대리 시험을 알선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휴대폰이나 무선호출기(삐삐)를 이용한 비리도 끊이지 않았다.

1993년에는 한 수험생이 학력고사시험 도중 시험장을 빠져나와 가져온 답안 번호를 삐삐로 다른 수험생들에게 전송해준 사건이 있었다.

2004년에는 학생들이 수능시험장에서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답을 주고 받았다 적발됐다.

광주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조사가 확산된 이 사건에 연루된 학생은 300명이 넘었으며 감사원은 교육부의 수능시험 관리 전반에 대해 특별 감사에 착수하기까지 했다.